1954년 남도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났으며 근래에 본적을 독도로 옮겼다. 문자에만 얽매인 학문과 인연을 끊고서 입산한 속리산 법주사에서 1978년 혜정(慧淨) 큰스님으로부터 득도(법명:鐵牛)한다. 산사에서 체험한 산매(山魅)현상에서 산을 헤메이다 1980년 초에 화두인 풍수를 걸머지고 하산하였다. 오로지 현장을 중시하는 철학으로 풍수현장과 조선왕조실록에 몰두하다 1993년 부산일보와의 인연을 시작으로 국제신문까지 매주 1회씩 3년 동안 풍수연재를 하게 된다. 연재하던 당시 산중에서의 험한 생활로 인해 ‘야전작가’ 혹은 ‘빨치산’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현장풍수 전문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6년 동아대학교 사회교육원에 초빙되어 본격적으로 시작한 풍수강의와 월간 『건축세계』에 연재한 ‘한국의 풍수지리와 건축’을 통해 현장조사를 병행한 풍부한 현장자료와 경험 등을 토대로 풍수이론을 전개함으로써 그의 명강의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1998년도에는 동아대학교 사회교육원 제1호 외래교수로 자리잡게 된다.
최초의 풍수사진전과 함께 대학강의용 풍수교재 발간 등, 풍수를 현장에서 학문으로 접근시키려는 일련의 의지로 부산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건축사 및 고건축 석·박사과정을 대상으로 ‘건축풍수’를 강의하였으며, 부산대학교 전학부 학생을 상대로 한 교양강좌(3학점) ‘풍수미학’을 개설, 동대학교 대학원 석박사과정(3학점)과 함께 문화유산풍수를 강의했었다. 애석하게도 2008년 9월 29일 별세하셨다.
1954년 남도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났으며 근래에 본적을 독도로 옮겼다. 문자에만 얽매인 학문과 인연을 끊고서 입산한 속리산 법주사에서 1978년 혜정(慧淨) 큰스님으로부터 득도(법명:鐵牛)한다. 산사에서 체험한 산매(山魅)현상에서 산을 헤메이다 1980년 초에 화두인 풍수를 걸머지고 하산하였다. 오로지 현장을 중시하는 철학으로 풍수현장과 조선왕조실록에 몰두하다 1993년 부산일보와의 인연을 시작으로 국제신문까지 매주 1회씩 3년 동안 풍수연재를 하게 된다. 연재하던 당시 산중에서의 험한 생활로 인해 ‘야전작가’ 혹은 ‘빨치산’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현장풍수 전문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6년 동아대학교 사회교육원에 초빙되어 본격적으로 시작한 풍수강의와 월간 『건축세계』에 연재한 ‘한국의 풍수지리와 건축’을 통해 현장조사를 병행한 풍부한 현장자료와 경험 등을 토대로 풍수이론을 전개함으로써 그의 명강의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1998년도에는 동아대학교 사회교육원 제1호 외래교수로 자리잡게 된다.
최초의 풍수사진전과 함께 대학강의용 풍수교재 발간 등, 풍수를 현장에서 학문으로 접근시키려는 일련의 의지로 부산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건축사 및 고건축 석·박사과정을 대상으로 ‘건축풍수’를 강의하였으며, 부산대학교 전학부 학생을 상대로 한 교양강좌(3학점) ‘풍수미학’을 개설, 동대학교 대학원 석박사과정(3학점)과 함께 문화유산풍수를 강의했었다. 애석하게도 2008년 9월 29일 별세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