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쇼(大正), 쇼와(昭和) 시대의 극작가, 소설가, 저널리스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구메 마사오(久米正雄) 등과 제3차, 제4차 『신사조(新思潮)』 동인. 소설에 『원수의 저편에(恩讐の彼方に)』, 『도주로의 사랑(藤十?の?)』, 『진주부인(?珠夫人)』, 희곡 『옥상의 광인(屋上の狂人)』, 『아버지 돌아오다(父?る)』 등이 있음. 문예가협회를 설립하고, 잡지 [문예춘추(文芸春秋)]를 창간하였으며, 아쿠타가와상(芥川賞)과 나오키상(直木賞), 기쿠치간상(菊池?賞)을 설치하였을 뿐 아니라, 다이에이(大映) 사장으로 영화사업에도 관여하는 등 ‘문단의 거물’로 불리었다. 조선과 관련해서는, 1920년대부터 [경성일보]에 자주 소개되었으며, 1930년 9월 남만주철도 초청 강연과 1940년 8월 ‘문예총후운동대강연회(文芸銃後運動大講演?)’를 위해 경성을 방문하였다. 1939년에는 ‘조선예술상’을 설치, 조선 문단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제2차세계대전 후에는 공직추방을 당한 상태에서 1948년 협심증으로 사망하였다.
다이쇼(大正), 쇼와(昭和) 시대의 극작가, 소설가, 저널리스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구메 마사오(久米正雄) 등과 제3차, 제4차 『신사조(新思潮)』 동인. 소설에 『원수의 저편에(恩讐の彼方に)』, 『도주로의 사랑(藤十?の?)』, 『진주부인(?珠夫人)』, 희곡 『옥상의 광인(屋上の狂人)』, 『아버지 돌아오다(父?る)』 등이 있음. 문예가협회를 설립하고, 잡지 [문예춘추(文芸春秋)]를 창간하였으며, 아쿠타가와상(芥川賞)과 나오키상(直木賞), 기쿠치간상(菊池?賞)을 설치하였을 뿐 아니라, 다이에이(大映) 사장으로 영화사업에도 관여하는 등 ‘문단의 거물’로 불리었다. 조선과 관련해서는, 1920년대부터 [경성일보]에 자주 소개되었으며, 1930년 9월 남만주철도 초청 강연과 1940년 8월 ‘문예총후운동대강연회(文芸銃後運動大講演?)’를 위해 경성을 방문하였다. 1939년에는 ‘조선예술상’을 설치, 조선 문단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제2차세계대전 후에는 공직추방을 당한 상태에서 1948년 협심증으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