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에 헌신한 독일의 사회사상가 칼 카우츠키
그 이론적 헌신의 원석 『에르푸르트 강령』
“전 세계는 카우츠키를 통해 마르크스를 배웠다.”
『에르푸르트 강령』은 1891년 에르푸르트에서 개최된 독일 사회민주당 당대회에서 채택된 강령으로, ‘기본원리’와 ‘당면 요구’라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전반부는 칼 카우츠키가 마르크스주의 경향의 혁명이론을 초안 작성한 것이다. 후반부는 베른슈타인이 실용주의 경향의 정치적 실천에 대해 작성했다. 『에르푸르트 강령』은 순수 마르크스주의적 강령이라고 할 수 있다.
카우츠키는 ‘마르크스주의의 교황’이라고 불릴 만큼 마르크스주의에 헌신했으며, 『에르푸르트 강령』은 그 원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보조하면서 사회주의에 있어 본질적이고, 사회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내용을 알기 쉽게 서술했다. 본문은 제1장 소경영의 몰락, 제2장 프롤레타리아, 제3장 자본가 계급, 제4장 미래국가, 제5장 계급투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서 마르크스주의와 독일의 사회사상, 또한 현시대의 ‘자본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제4장 | 미래국가
제1절 사회개혁과 혁명 · 141
제2절 사유재산과 조합 재산 · 148
제3절 사회주의적 생산 · 152
제4절 국가의 경제적 의의 · 161
제5절 국가사회주의와 사회민주당 · 167
제6절 미래국가의 건설 · 170
제7절 소위 ‘가족의 폐지’ · 183
제8절 재산 몰수 · 186
제9절 미래국가의 생산물 분배 · 192
제10절 사회주의와 자유 · 204
제5장 계급투쟁
제1절 사회주의와 유산계급 · 217
제2절 비복과 가노 · 223
제3절 룸펜 프롤레타리아 · 227
제4절 임금 프롤레타리아의 시초 · 230
제5절 임금 프롤레타리아의 성장 · 232
제6절 프롤레타리아를 상향시키는 경향과 하향시키는 경향과의 충돌 · 240
제7절 자선과 노동자 보호입법 · 243
제8절 노동조합운동 · 249
제9절 정치적 투쟁 · 260
제10절 노동당 · 269
제11절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 276
제12절 사회민주주의 -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의 종합 · 284
제13절 사회민주주의의 국제성 · 289
제14절 사회민주당과 국민 · 297
연보 307
Author
칼 카우츠키,서석연
독일 마르크스주의 학자·역사가·사상가.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이론적 지도자. 프라하 출생. 빈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으며, 재학 중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에 입당하였다. 초기에는 다윈주의 영향이 강했으나 1879년경 E. 베른슈타인과 알게 되면서 열렬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1881년 런던으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찾아갔으며 1883년에는 이후 독일 사회민주당의 이론기관지誌가 된 『노이에 차이트(Die Neue Zeit, 신시대)》를 창간해 편집을 맡았다. 1885년 탄압을 피해 런던으로 옮겨 엥겔스의 보호를 받으면서 편집을 계속했으며, 사회주의자 진압법이 폐지된 뒤 1891년에는 독일 사회민주당 에르푸르트대회에서 〈에르푸르트 강령〉의 기초자가 되어 이론적 지도자로서 지위를 확립하였다.
1890년대 중반 이후 당내에 대두한 베른슈타인 등의 수정주의에 대해 『농업문제』『베른슈타인과 사회민주주의 강령』등 저작으로 맞서 정통파를 대표하는 이론가가 되었다. 1917년 사회민주당을 떠나 후고 하제 등과 함께 독립사회민주당을 창립한 그는, 레닌이 지도하는 러시아 혁명에 대해 볼셰비즘을 반마르크스주의라 하여 비난했는데 그 때문에 레닌으로부터 배교자背敎者라고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박학다재함과 왕성한 문필활동으로 마르크스 사상 보급에 큰 업적을 남겼다. 저서로 『자본론 해설』『윤리와 유물사관』『권력으로의 길』『경제학 비평서설』등이 있다.
독일 마르크스주의 학자·역사가·사상가.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이론적 지도자. 프라하 출생. 빈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으며, 재학 중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에 입당하였다. 초기에는 다윈주의 영향이 강했으나 1879년경 E. 베른슈타인과 알게 되면서 열렬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1881년 런던으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찾아갔으며 1883년에는 이후 독일 사회민주당의 이론기관지誌가 된 『노이에 차이트(Die Neue Zeit, 신시대)》를 창간해 편집을 맡았다. 1885년 탄압을 피해 런던으로 옮겨 엥겔스의 보호를 받으면서 편집을 계속했으며, 사회주의자 진압법이 폐지된 뒤 1891년에는 독일 사회민주당 에르푸르트대회에서 〈에르푸르트 강령〉의 기초자가 되어 이론적 지도자로서 지위를 확립하였다.
1890년대 중반 이후 당내에 대두한 베른슈타인 등의 수정주의에 대해 『농업문제』『베른슈타인과 사회민주주의 강령』등 저작으로 맞서 정통파를 대표하는 이론가가 되었다. 1917년 사회민주당을 떠나 후고 하제 등과 함께 독립사회민주당을 창립한 그는, 레닌이 지도하는 러시아 혁명에 대해 볼셰비즘을 반마르크스주의라 하여 비난했는데 그 때문에 레닌으로부터 배교자背敎者라고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박학다재함과 왕성한 문필활동으로 마르크스 사상 보급에 큰 업적을 남겼다. 저서로 『자본론 해설』『윤리와 유물사관』『권력으로의 길』『경제학 비평서설』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