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7월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우한시(武漢市)에서 태어나 후베이 대학을 졸업, 1985년과 1988년에 각각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87년『헝가리의 길』과 1988년『폴란드 위기』등을 출간함과 동시에 ‘중국사회과학원 정치학연구소’ 소장을 역임하면서 1988년 신권위주의 논쟁을 통해 학술계의 큰 주목을 받았으나, 1989년 톈안먼 사건으로 장기간 공백기를 가졌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다시 활동을 재개하면서, 1997년 하버드대학 객원연구원을 시작으로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와 정치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했다. 특히 동 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학술잡지인 『세계경제와 정치』의 편집인으로 활동했으며, 2009년에는 베이징 대학 국제관계학원 부원장(부학장)으로 자리를 옮겨 후학양성에 모든 노력을 아낌없이 쏟고 있다. 그는 중국 국제관계학계에서 보기 드물게 소위 ‘코스모폴리탄적 사고’의 소유자로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의 외교 브레인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중국내 가장 권위 있는 중국외교 연구자로서 자유주의성향의 국제관계론을 펼치고 있다. 특히 중국의 현실이익을 충분히 고려하는 냉철하고 복합적인 전략가이면서, 중국의 품격 있는 대국외교를 지향한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현대 국제정치 분석』과 『서방국제정치학: 역사와 이론』 등 다수가 있으며, 특히 이번 『중국 외교의 창조적 개입』은 『글로벌 정치와 중국 외교』,『중국외교의 새로운 경지』등과 함께 중국외교 연구의 3대 저서로 꼽힌다. 이 외에도 백 여 편이 넘는 논문과 평론 등이 있다.
1957년 7월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우한시(武漢市)에서 태어나 후베이 대학을 졸업, 1985년과 1988년에 각각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87년『헝가리의 길』과 1988년『폴란드 위기』등을 출간함과 동시에 ‘중국사회과학원 정치학연구소’ 소장을 역임하면서 1988년 신권위주의 논쟁을 통해 학술계의 큰 주목을 받았으나, 1989년 톈안먼 사건으로 장기간 공백기를 가졌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다시 활동을 재개하면서, 1997년 하버드대학 객원연구원을 시작으로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와 정치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했다. 특히 동 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학술잡지인 『세계경제와 정치』의 편집인으로 활동했으며, 2009년에는 베이징 대학 국제관계학원 부원장(부학장)으로 자리를 옮겨 후학양성에 모든 노력을 아낌없이 쏟고 있다. 그는 중국 국제관계학계에서 보기 드물게 소위 ‘코스모폴리탄적 사고’의 소유자로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의 외교 브레인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중국내 가장 권위 있는 중국외교 연구자로서 자유주의성향의 국제관계론을 펼치고 있다. 특히 중국의 현실이익을 충분히 고려하는 냉철하고 복합적인 전략가이면서, 중국의 품격 있는 대국외교를 지향한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현대 국제정치 분석』과 『서방국제정치학: 역사와 이론』 등 다수가 있으며, 특히 이번 『중국 외교의 창조적 개입』은 『글로벌 정치와 중국 외교』,『중국외교의 새로운 경지』등과 함께 중국외교 연구의 3대 저서로 꼽힌다. 이 외에도 백 여 편이 넘는 논문과 평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