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실로 묶어 당신에게 부칩니다”
‘편지의 시대’ 조선이 남긴
편지로 쓰인 한시를 가려 엮다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던 다산 정약용(丁若鏞)에게 아내가 낡은 치마 다섯 폭을 보내 왔다. 시집오던 날 입었던 붉은색 활옷은 세월에 그 빛이 씻기고 희미해져 버렸다. 정약용은 이 천을 가위로 말라 작은 공책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훈계의 말을 써서 전하고, 남은 천으로는 외동딸에게 그림 가리개를 만들어 주었다. 그 가리개에는 시집간 딸이 화목하게 잘살기를 바라는 아비의 마음을 담은 시도 한 수 써 보냈다.
펄펄 나는 새야(翩翩飛鳥) / 내 뜰의 매화에서 쉬렴(息我庭梅) / 향기도 진하니(有烈其芳) / 은혜로워라 어서 오려마(惠然其來) / 이에 가지에 올라 깃드니(爰上爰棲) / 네 집이 즐거우리라(樂爾家室) / 꽃이 아름다우니(華之旣榮) / 열매도 많으리라(有?其實) _ 정약용, 「매화병제도(梅花屛題圖)」
강진 유배 시절 정약용은 저술 작업에 전념하는 한편, 창졸간에 패족이 되어 버린 가족, 특히 두 아들과 딸에게 가르침이 될 편지를 많이 썼다. 아내가 시집올 때 해 온 활옷에 시집간 딸을 위한 그림을 그리고 아비의 마음을 적어 보낸 풍경이 눈에 보일 듯 환하다.
조선 후기 한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의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특히 옛 문인들의 정과 뜻이 담긴 글을 찾아 소개해 온 필자는 이 책에 고려 후기 문인인 이규보를 포함하여 조선 시대에 편지로 주고받은 한시들을 모아 그 이면에 숨은 이야기들을 곁에서 들려주듯 풀어놓았다.
Contents
1부_국화꽃에 꽂혀 있는 벗의 시
술병이 난 친구에게 / 이규보 18 | 초정에게 편지 써서 술 한 병을 빌었네 / 이덕무 21 | 벗이 보내온 황촉으로 서창을 밝히고 / 권근 25 | 서울이라 벗님네 편안히 지내시는가? / 이숭인, 권근 29 | 여보게, 바둑 한판 두세나 / 서거정, 김뉴 32 | 밤으로 낮을 이어 술에 취해 놀아 보세 / 이행 36 | 벗이 보내온 국화 화분 / 이행, 박은 41 | 시를 지어 국화꽃 가지에 걸어 놓고 / 박은 46 | 사화를 겪은 매화 분재 / 이행 50 | 서쪽으로 떠난 스님에게 / 최경창 55 | 그대 묻힌 언덕에 봄풀이 무성하겠지 / 권필, 이안눌 58 | 취옹 醉翁과 시옹 詩翁의 수창 / 이안눌, 권필 64 | 가을에 부치는 매화 가지 / 김창협 67 | 보문암의 인연 / 김창협 70 | 매화꽃과 추기도秋氣圖 그리고 연꽃 벼루 / 송문흠 77
2부_병들고 가난하더라도 함께 늙어 가요
이 술로 찬 속이나 데우구려 / 유희춘, 송덕봉 86 | 누가 술을 망우물忘憂物이라 했나? / 박은 90 | 뒷동산에 대추는 땄소? / 김성달, 연안 이씨 92 | 아내에게 보낸 수수께끼 시 / 이학규 96 | 술 삼백 잔이 네 이름이란 말이냐? / 이규보 102 | 아들이 보내온 밤 / 정약용 108 | 막내딸이 보낸 수박씨 / 이광사 113 | 중국에 사신으로 가는 아들에게 / 서영수합, 홍석주 121 | 오라버님, 쌀 좀 보내 주세요 / 김호연재 124 | 여보게, 인편에 편질랑 부치지 말게 / 이산해 128 | 조카가 보내온 대빗자루 / 이익 132 |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 홍랑, 최경창 135 |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 유희경, 매창 138 | 붉은 봄꽃처럼 시들까 봐 / 이옥봉 142
3부_대지팡이를 보낸 뜻
흰떡과 묵은 김치 / 서거정 150 | 송강의 맑은 물로 마음을 씻어 / 이이, 성혼 154 | 독서하는 기미는 어떤가요? / 성혼 160 | 대지팡이를 보낸 뜻 / 이산해 164 | 부채 대신 받은 죽순 / 이식 169 | 부채에 그려 준 그림과 시의 뜻 / 김창업 172 | 돌만도 못한 인생 / 허목 176 | 벗에게 당귀 싹을 보낸 뜻 / 남구만 180 | 박색의 아내를 사랑하는 이유 / 박세당, 남구만 185 | 호박잎으로 국그릇을 덮는 마음 / 이용휴 190 | 중화척을 내린 정조 임금의 뜻 / 정조, 정약용 193
4부_나는 완전 바보, 그대는 반절 바보
푸른 향기 붉은 실로 묶었구나 / 이규보 204 | 차 의원, 맥문동 좀 주시게 / 서거정 207 | 스님이 부쳐 보낸 신발 / 윤결 210 | 산중의 목상좌를 꼭 만나려는 까닭은 / 서거정 213 | 친구여, 비단 살 돈 좀 주시게 / 이달 216 | 스님이 보내온 산나물 / 이식 219 | 나는 완전 바보, 그대는 반절 바보 / 이병연 222 | 금강산 일만 이천 봉 속에 이 몸도 그려 넣어 주게 / 신광수 225 | 차라면 백 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을 / 정약용 231
Author
강혜선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조선 후기 한문학을 전공하였고 옛 문인들의 뜻과 정이 담긴 글을 찾아 소개하기를 좋아한다. 지은 책으로 『박지원 산문의 고문 변용 양상』 , 『정조의 시문집 편찬』 , 『나 홀로 즐기는 삶』 , 『여성 한시 선집』 이 있고 옮긴 책으로 『유배객, 세상을 알다』 , 『조선 선비의 일본견문록-대마도에서 도쿄까지』 등이 있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조선 후기 한문학을 전공하였고 옛 문인들의 뜻과 정이 담긴 글을 찾아 소개하기를 좋아한다. 지은 책으로 『박지원 산문의 고문 변용 양상』 , 『정조의 시문집 편찬』 , 『나 홀로 즐기는 삶』 , 『여성 한시 선집』 이 있고 옮긴 책으로 『유배객, 세상을 알다』 , 『조선 선비의 일본견문록-대마도에서 도쿄까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