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공간의 아나키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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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08/10/27
Pages/Weight/Size 148*210*30mm
ISBN 9788961471183
Categories 사회 정치 > 사회학
Description
한국 아나키즘운동의 산증인이라 불리는 저자가 8·15 해방 이후 10년 동안에 보고, 겪고, 배우고, 활동한 한국 아나키즘운동의 현장을 생생하게 조명한 책이다. 저자는 민족주의, 사회주의와 함께 한국 독립운동 3대 세력 중의 하나였던 아나키즘이 해방 이후의 역사에서 다뤄지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그 동안 왜곡되거나 잊혀지다시피 한 아나키스트들을 하나하나 역사의 페이지로 불러내었다. 당시 아나키스트들이 자주·자치·탈권위의 열망을 피력하며 혼란 정국을 수습하기 위한 중추 세력으로 활동했던 모습들을 세세히 들려주며, 해방 후 최초의 아나키스트 단체인 자유사회건설자연맹의 '선언'과 '강령' 그리고 해방 후 최초의 아나키스트대회인 경남북아나키스트대회의 '대회 성명서' 전문을 실어 해방 공간에서의 한국 아나키스트들의 이념과 비전, 자유·자치의 새로운 독립국가 건설에 대한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Contents
머리말
프롤로그

제1장 8·15 해방: 길은 어디에?
1. 고향에서의 8·15
2. 해방 정국의 소용돌이
3. 민족 자주의 움직임: 출옥동지회와 자유사회건설자연맹
4. 중국에서의 한인 아나키스트 운동
5. 미군정, 이승만, 임시정부 그리고 북한
6. 3상 결의, 반탁, 임정 보위 무력 준비 운동
7. 해방 공간에서 만난 아나키스트의 영혼: 작고동지추도회
8. 농촌자치연맹과 노동자자치연맹
9. 경남북아나키스트대회와 전국아나키스트대회
10. 가슴에 꽂힌 화살
11. 예관동 24번지 그리고 혁명 수업의 길

제2장 자유연합의 원점에서
1. 혼란의 해방 정국, 1946년
2. 지방 유세대와 대한독립촉성국민회
3. 성자 박제경 선생
4. 중간 결산으로서의 혁명 발의
5. 자유연합의 원리
6. 3의사 유해 봉환과 국민장
7. 흑백회 발족
8. 남대문시장 자치운동
9. 예관동의 지사들
10. 아나키스트와 그 집단

제3장 혁명의 시간: 한국혁명위원회
1. 다시 얘기되기 시작한 혁명불가피론
2. 혁명위원회 발족
3. 반탁운동의 재연
4. 운현궁의 독촉국민회 풍경
5. 베트남인의 교훈
6. ?조선혁명선언?을 텍스트로
7. 경교장의 혁명 대책
8. 반탁 진영의 불협화음
9. 거사 계획 최종 점검
10. 물거품이 된 혁명 거사
11. 반성

제4장 자유 쟁취의 그날까지
1. 다시 원점에서
2. 백년대계의 문화 교양 운동
3. 성균관대학의 학풍
4. 수곡과 가내 부업 운동
5. 자아실현의 길: 설형회 발족
6. 광란의 서곡: 6·25전쟁 발발
7. 김일성의 오판과 전쟁 책임
8. 서울의 레지스탕스: 자유를 되찾으려는 몸부림
9. 1·4 후퇴 그리고 풀뿌리들
10. 폐허 위의 새싹

에필로그: '민' 중심의 사회로
부록: 해방 정국, 1946년의 한반도 상황

참고 문헌
찾아보기
Author
이문창
1927년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문을 공부하고 신식 교육을 받은 후, 10대 후반에 아나키즘운동에 투신, 평생을 아나키스트로서 자주학습운동, 문화교양운동, 농촌운동, 자유공동체운동 등 사회운동에 헌신한, 해방 후 한국 사회운동과 아나키즘운동의 산증인이다. 1943년 서울 청파동 광제한약국 점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문창은 그후 반탁운동에 가담한 것을 계기로 자유사회건설자연맹 산하의 흑백회에 참여하며 사회운동을 시작하였다. 1947년 초에는 한국혁명위원회 활동에 참여하고, 1948년에는 설형회 조직에 참여하여 자주학습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50년 서울이 3개월 동안 북한군 치하에 있는 동안에는 레지스탕스로서 반전 반공산 민중지하운동을 펼쳤다. 또한 부산 피난 중에는 외군부대 노동자의 문화교양운동을 주도하고, 군에 강제 징집되어 가서는 전쟁에 반대하며 당시로서는 유례가 없는 21일간의 단식을 하였으며, 1954년에는 서울에서 환력학원, 근로청소년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47년 발족 당시부터 국민문화연구소(문교부 사회단체 등록 제1호)에 참여한 이문창은 국민문화연구소의 농촌운동, 수산운동, 생활협동조합운동 등에 헌신하며, 국민문화연구소의 이사(1964~1983년), 부회장(1983~1990년), 회장(1990~2003년)을 지냈다.
국제통신사 외신기자(1956년)와 경제통신사 외신기자(1959년)를 지내기도 한 이문창은 한국자주인연맹대회(1987년) 간사로 피선되고, 세계평화국제회의(1988년) 사회를 보았으며, 광복 50주년 기념 한국자유사회운동 국제학술회의(1995년)를 주재하였다.
1988년 제1회 우관상을 수상한 이문창은 지금도 국민문화연구소 명예회장, 박열의사기념사회 이사, 자유공동체연구회 상임고문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2006년부터는 매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자유공동체운동과 동아시아의 미래"를 주제로 한일 공동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1927년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문을 공부하고 신식 교육을 받은 후, 10대 후반에 아나키즘운동에 투신, 평생을 아나키스트로서 자주학습운동, 문화교양운동, 농촌운동, 자유공동체운동 등 사회운동에 헌신한, 해방 후 한국 사회운동과 아나키즘운동의 산증인이다. 1943년 서울 청파동 광제한약국 점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문창은 그후 반탁운동에 가담한 것을 계기로 자유사회건설자연맹 산하의 흑백회에 참여하며 사회운동을 시작하였다. 1947년 초에는 한국혁명위원회 활동에 참여하고, 1948년에는 설형회 조직에 참여하여 자주학습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50년 서울이 3개월 동안 북한군 치하에 있는 동안에는 레지스탕스로서 반전 반공산 민중지하운동을 펼쳤다. 또한 부산 피난 중에는 외군부대 노동자의 문화교양운동을 주도하고, 군에 강제 징집되어 가서는 전쟁에 반대하며 당시로서는 유례가 없는 21일간의 단식을 하였으며, 1954년에는 서울에서 환력학원, 근로청소년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47년 발족 당시부터 국민문화연구소(문교부 사회단체 등록 제1호)에 참여한 이문창은 국민문화연구소의 농촌운동, 수산운동, 생활협동조합운동 등에 헌신하며, 국민문화연구소의 이사(1964~1983년), 부회장(1983~1990년), 회장(1990~2003년)을 지냈다.
국제통신사 외신기자(1956년)와 경제통신사 외신기자(1959년)를 지내기도 한 이문창은 한국자주인연맹대회(1987년) 간사로 피선되고, 세계평화국제회의(1988년) 사회를 보았으며, 광복 50주년 기념 한국자유사회운동 국제학술회의(1995년)를 주재하였다.
1988년 제1회 우관상을 수상한 이문창은 지금도 국민문화연구소 명예회장, 박열의사기념사회 이사, 자유공동체연구회 상임고문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2006년부터는 매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자유공동체운동과 동아시아의 미래"를 주제로 한일 공동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