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강원작가』로 등단한 박재연 시인의 네 번째 시집 『텔레파시폰의 시간』이 출간되었다. 박재연의 시에서는 일상 속에서 “소화되지 못한 감정”(「세설원」)들이 충돌하고 포개진다. 그러면서 그만의 독특한 시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간극은 매워질 수 없으므로 “긁으면 긁을수록 피가 나는 가려움”(「사흘 동안」), 끊임없이 이륙과 추락을 반복하게 되는 “쥐약 같은 이륙의 터널”(「야간 비행」)과 같은 이미지로 나타난다. “이번 생을 감독한 그 작자를 만난다면 내게는 왜 우연의 역할이 없었는지”(앞의 시) 물어본다는 화자의 태도는 이 되풀이되는 시간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필멸자로서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깨닫고도 시인이 계속 ‘이륙’을 시도하고 필연에 대항하는 ‘우연의 역할’을 찾는 것은 왜일까. 시인에게 있어 한계와 추락은 단순히 삶의 실패, 종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착화된 시간을 균열내고 새로운 시간을 마주할 수 있도록 하는 ‘시작’이다. 이를 통해서 시인은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공포 속에서 주저앉지 않고 신생을 위해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다. “한을 밀어내자 춤을 추고 싶다”, “나는 이제 가벼워졌다”(「세설원」)고 말하는 시인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이다.
Contents
- 시인의 말
제1부
사흘 동안 12
일찍이 시는 14
공작꼬리선인장 엘리스 16
피아노 오르가슴 18
피에트라 강변에서 울고 있을 때 21
로버트 킨 케이드가 담뱃불을 비벼 끌 때 24
재녕 씨의 안녕 26
의문 28
텔레파시폰의 시간 30
목련화법 32
우리가 제일 예뻤을 때 34
오필리아의 안개 36
죽기 좋은 달 38
잠깐 사이 40
제2부
야간 비행 44
조약돌 사용법 47
잘모탕 50
출혈 52
능소화 연보 54
서지 뜰 뒤란 공연 56
어위의 시간 58
예지몽에 출연하다 60
날개 62
고무줄놀이 64
혼자 식는 난로처럼 65
고압의 시가 전송된다 66
그림자에 대한 훈계 68
여기는 어디쯤 69
제3부
달의 지하실 74
오래된 우물 76
장작 울타리 78
감빛 능선 80
날갯짓이 크면 82
바코드를 풀고 84
삼눈 잡는 법 86
청색 구두와 플루트 88
달리는 경로당 90
11월 92
거짓말처럼 94
마음은 남쪽 96
세설원 98
서대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