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면벽』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벽들에 대한 혁명 혹은 해탈을 이야기하지만, 우리에게 한쪽의 정당성을 강변하거나 선택을 강요하지 않고 모든 이분법적 사고의 경계를 허물어 열린 가능성으로서의 면벽을 꿈꾸게 한다. 시집의 제목이자 주제가 되는 ‘면벽’은 말 그대로 벽을 마주하는 행위로서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수행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변혁을 위해 그것을 가로막는 세력과의 싸움이다. 벽의 특성 중 하나가 외부의 시선을 차단함으로써 경계를 만들고 차별과 배제를 통해 그것을 유지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면벽’이라는 행위는 곧 경계에 저항하는 일이 된다. 시인은 저항을 통해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벽이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에 다다르는데, 하나는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세상이 만들어놓은 벽 앞에 설 수밖에 없는 현실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만든 벽을 마주하는 일이다. 전자의 경우 세상이 만들어놓은 벽에 의하여 우리의 투명한 시야가 흐릿해져 삶을 왜곡하게 되고 결국 세상을 어지럽히는 과오를 범하게 되며, 후자의 경우 세상의 시선을 차단함으로써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 성찰의 과정을 거쳐 벽의 일부로 존재하게 된다. 시인은 이러한 두 가지 방식 중 어느 하나를 택하여 해답을 찾기보다는 오로지 ‘면벽’이라는 행위 자체에만 몰두하여 차라리 벽 앞에서 무너지고 실패하는 자가 됨으로써 혁명과 해탈 너머의 언어를 꿈꾼다.
해설을 쓴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은 시집 『면벽』에 대하여 “우리의 삶을 억압하고 우리의 시선을 가로막는 장벽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장벽을 허무는 혁명이거나 그것을 넘어서는 초월이 필요”하지만, “시 안에서 혁명과 초월은 결코 양자택일적인 것이나 이율배반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세환 시인의 시들이 말해 주고 있”음에 주목하며 “장벽 허물기와 장벽 너머 세상을 보는 자유로운 시선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바로 강세환 시인의 시들의 빛나는 성과”라고 평했다.
강세환의 시는 왜곡과 은폐를 조장하는 벽을 허물거나 넘어가는 비상한 결단을 내리는 대신 면벽의 과정을 거쳐 생성된 투명한 언어가 벽을 투과하여 벽 너머를 비추게 하는 방법을 택한다. 시인이 「시인의 말」에서 밝혔듯이, 시집 『면벽』은 “어떤 ‘벽면’과 면벽한 결과물”로써 우리에게 “시야말로 무엇을 위한 것도 무엇을 주고받는 것도 아”님을, “패배의 순간이 곧 시의 순간이고 시인의 순간”이라는 것을 오직 ‘면벽’이라는 행위를 통해 드러내거나 감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벽’ 자체가 아니라, 벽을 대하는 ‘자세’라는 것을 시인은 시로써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제 벽 너머의 가능성을 꿈꾸기 위해 강세환의 시를 마주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