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의 ‘문장강화(文章講話)’는 [문장] 창간호(1939.1)부터 제9호(1939.10)까지 9회에 걸쳐 연재된 문장론 강좌이다.
이 강좌는 앞선 작문론과는 달리 구체적인 예문을 사용하여 문장 작법을 설명하였으며, 문장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점이 특징이다. 특히 문장을 이루는 언어적인 요소와 ‘말소리’를 뛰어넘는 ‘문장’으로서의 가치를 찾고자 했는데, 이는 언어학자와 달리 문학가(예술가)의 차원에서 글쓰기를 바라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제2강의 언어적인 분석, 제3강의 문장의 종류, 제4강의 문체 관련 이론 등은 글쓰기에 필요한 일반적인 지식에 해당한다. 그러나 제5강의 퇴고를 강조한 점, 구체적으로 퇴고의 사례를 보여준 점 등은 이전의 문장론에서 찾아볼 수 없는 설명 방식에 해당한다.
이 책의 가치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우리말 글쓰기 관련 지식을 집대성했다는 데 있다. [문장]에 ‘문장강화’가 연재되기 이전에도 여러 학자들에 의해 글쓰기 관련 저서가 나오기도 하였고, 다수의 기자나 작가들이 글쓰기론을 피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태준의 ‘문장강화’는 구체적인 쓰기 사례를 중심으로 글쓰기를 이해하고 연습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는 점에서 문장론의 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그가 강조한 ‘간결체 문장’이나 ‘예술적 글쓰기’는 광복 이후의 문장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원전을 잘 살려낸 가장 먼저 된 책이라 할 수 있다. 좋은 연구자료가 될 것이다.
Contents
해제
[1] 이태준, ‘문장강화(一)’, [문장] 창간호, 문장사, 1939.1.
第一講 文章 作法의 새 意義
1. 文章 作法이란 것
2. 이미 있어 온 文章 作法
3. 새로 있을 文章 作法
1904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1909년 망명하는 부친을 따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했다가 그해 8월 부친의 사망으로 귀국하였다. 1912년 모친마저 별세하자 철원의 친척집에서 성장하였다. 1921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동맹휴교의 주모자로 지적되어 1924년 퇴학하였다.
1924년 학교 신문 [휘문 2호]에 단편동화 「물고기 이야기」를 처음 발표했다. 1925년 문예지『조선문단』에 「오몽녀」가 입선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27년 신문·우유 배달 등을 하며 ‘공기만을 먹고사는’ 궁핍한 유학생활을 청산하고 귀국,『개벽』과 『조선중앙일보』의 기자, 『문장』지 편집자로 활동하였다. 1933년 박태원·이효석 등과 함께 ‘구인회’를 조직하였다. 1934년 첫 단편집 『달밤』 출간을 시작으로 『가마귀』, 『사상의 월야』, 장편소설 『해방전후』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1930년대 전후에 아동잡지 [어린이]에 발표한 많은 동화들은 여전히 많은 어린이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고 있다. 해방 후에는 문학가동맹, 남조선민전등 조직에 참여하다가 1946년 월북하였다.
‘구인회’ 활동 과거와 사상성을 이유로 임화, 김남천과 함께 가혹한 비판을 받고 숙청되어 함흥노동신문사 교정원, 콘크리트 블록 공장의 파고철 수집 노동자로 전락하였다. 정확한 사망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960년대 초 산간 협동농장에서 병사하였다는 설이 있다. 저서로 단편소설집 『달밤』 『가마귀』 『복덕방』 『해방 전후』 『구원久遠의 여상女像』 『딸 삼형제』 『사상思想』, 수필집 『무서록』, 문장론 『문장강화』 『상허 문학독본』 등이 있다.
1904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1909년 망명하는 부친을 따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했다가 그해 8월 부친의 사망으로 귀국하였다. 1912년 모친마저 별세하자 철원의 친척집에서 성장하였다. 1921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동맹휴교의 주모자로 지적되어 1924년 퇴학하였다.
1924년 학교 신문 [휘문 2호]에 단편동화 「물고기 이야기」를 처음 발표했다. 1925년 문예지『조선문단』에 「오몽녀」가 입선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27년 신문·우유 배달 등을 하며 ‘공기만을 먹고사는’ 궁핍한 유학생활을 청산하고 귀국,『개벽』과 『조선중앙일보』의 기자, 『문장』지 편집자로 활동하였다. 1933년 박태원·이효석 등과 함께 ‘구인회’를 조직하였다. 1934년 첫 단편집 『달밤』 출간을 시작으로 『가마귀』, 『사상의 월야』, 장편소설 『해방전후』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1930년대 전후에 아동잡지 [어린이]에 발표한 많은 동화들은 여전히 많은 어린이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고 있다. 해방 후에는 문학가동맹, 남조선민전등 조직에 참여하다가 1946년 월북하였다.
‘구인회’ 활동 과거와 사상성을 이유로 임화, 김남천과 함께 가혹한 비판을 받고 숙청되어 함흥노동신문사 교정원, 콘크리트 블록 공장의 파고철 수집 노동자로 전락하였다. 정확한 사망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960년대 초 산간 협동농장에서 병사하였다는 설이 있다. 저서로 단편소설집 『달밤』 『가마귀』 『복덕방』 『해방 전후』 『구원久遠의 여상女像』 『딸 삼형제』 『사상思想』, 수필집 『무서록』, 문장론 『문장강화』 『상허 문학독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