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자본, 좌파 등 특정 세력이 과학 논쟁 과정에서 의도적 ? 조직적으로 진실을 왜곡한다는 ‘청부과학론’은 나름의 사회적 역할에도 불구하고 근원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모든 논쟁들을 단순한 진실게임으로 환원시킴으로써 논쟁에 깃든 사회정치적, 역사적, 문화적 요소들을 지워 버리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글쓴이가 꺼내 든 개념은 ‘언던 사이언스(Undone Science)’다.
‘언던 사이언스’는 미국의 과학운동가 데이비드 헤스가 ‘정부, 산업, 사회운동의 제도적 매트릭스 속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된 채 생산되지 않은 지식들’을 가리키기 위해 만든 개념이다. 글쓴이는 이를 더욱 확장하여 ‘특정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무시되고 배제된 과학 연구 영역들’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기술학(STS) 같은 통섭적 분야의 연구 성과들이 두루 반영된 이 관점은 ‘진실 vs 거짓’ 혹은 ‘과학 vs 비과학’이라는 이분법을 뛰어넘어 현대과학의 논쟁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글쓴이는 19세기 이후 지금까지의 다양한 과학 논쟁들을 언던 사이언스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한다. 1부에서는 나치의 인종위생학을 비롯한 과거 사례들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재해석하고, 2부에선 구제역 살처분을 비롯한 현대의 쟁점들을 관찰함으로써 ‘언던 사이언스’라는 개념의 유용성을 입증한다. 그리고 3부에서는 광우병, 삼성백혈병, 저선량 방사선 같은 첨예한 과학 논쟁들을 언던 사이언스의 세밀한 렌즈를 통해 본격적으로 탐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