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명학연론

본심이 감통하는 따뜻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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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0/12/31
Pages/Weight/Size 152*214*35mm
ISBN 9788957337189
Categories 인문 > 동양철학
Description
국권 회복의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위당 정인보의 외침
‘본심을 회복하여 따뜻한 세상을 만들자’


위당 정인보가 1933년 9월 8일부터 12월 17일까지 66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연재한 동명의 논설을 현대어로 번역하고 해설을 붙여 펴냈다. 이 논설에서 정인보는 조선 학자들의 거짓됨을 비판하고, 양명학의 본지(本旨)와 주요 이론을 밝히며, 중국의 양명학사와 조선 양명학의 줄거리를 해명한다. 강화학파 학맥을 계승한 경학가요 경세가로서 정인보는 양명학에서 국권 회복의 방안을 찾았다. 이 논설에는 조선의 민중을 도탄에서 구제하려는 ‘구세 정신’과 학문의 종지가 잘 드러난다.

정인보는 조선 민중의 ‘본심(本心)’을 불러 깨움으로써 국난을 극복하고자 했다. 누구나 본래적으로 타고나는 본심 양지(良知)를 환기하여 과거 조선의 허식[虛]과 거짓[假]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당이 조선의 난치병의 뿌리[病根]라고 본 자사념(自私念, 자기 이익만 도모하려는 생각)은 ‘본심 회복’에서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본심은 타자(他者)에 감통하여 그와 하나 되는 힘을 지닌 까닭에 민중이 서로 돕고 구제할 방도가 된다.
Contents
‘규장각 고전 총서’ 발간에 부쳐
해제 본심이 감통하는 따뜻한 세상을 위하여

1. 이 글을 쓰게 된 까닭
01 양명학 논술의 동기

2. 양명학이란 무엇인가?
02 양명학의 학문 종지
03 명명덕과 친민
04 실심 환성과 양명학
05 양명학은 심학이다
06 마음이 바로 리다
07 앎과 행위는 본래 분리되지 않는다
08 본심의 애틋함과 천지만물일체설
09 일진무가(一眞無假)의 양지와 치양지

3. 왕양명의 전기
10 젊은 날의 학문 변천과 경세에 대한 관심
11 용장오도
12 산중의 도적을 깨뜨림
13 신호(宸濠)의 반란 진압
14 양광 지역의 변란 평정과 오심광명

4. 「대학문」과 발본색원론
15 대인지학과 명명덕 및 천지만물일체의 인(仁)
16 친민에 대한 새로운 해석
17 명덕과 친민의 최고 준칙으로서의 지선(至善)
18 ‘물유본말(物有本末)’에 대한 해석
19 ‘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에 대한 새로운 해석
20 발본색원론

5. 양명의 제자들과 양명학을 계승한 여러 현인들
21 양명 후학의 학파 분류와 서애 및 기원형의 사상
22 전덕홍과 왕용계의 사구교 논쟁
23 왕간의 안신설에 기초한 경세사상
24 태주학파의 강학과 각민행도
25 나홍선의 무욕주정(無欲主靜)과 경세치용
26 유종주의 신독설과 절의 정신
27 손기봉의 불굴의 정신, 황종희의 개혁론, 이옹의 지기(知幾)론

6. 조선양명학파
28 최명길의 양명학 공부와 경세사상
29 장유의 조선 학술에 대한 비판과 양명학 옹호
30 정제두, 조선양명학파의 대종
31 이광신의 주자학과 양명학의 보합(保合)
32 김택수의 직지본심(直指本心)
33 이진병의 주자학 비판
34 이광사의 실리(實理) 보존
35 이영익과 이충익의 양명학 이해와 평가
36 홍대용의 실학

7. 후기
37 정인보의 마음속 깊은 울분과 본심감통

주석
참고문헌
찾아보기
Author
정인보,한정길
근대 국학자, 민족사학자, 독립운동가, 시조시인, 언론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동래, 호는 담원(?園), 위당(爲堂). 1893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한학 수학 후 1910년 조선 강화학파의 거두 난곡(蘭谷) 이건방(李建芳)의 제자가 되었다. 1910~1914년 중국 안동, 봉천, 서간도, 상해 등을 수시로 다니며 신규식, 박은식, 신채호, 김규식, 문일평, 홍명희 등과 교유. 독립운동 비밀결사조직인 동제사(同濟社)에 가입하였다. 1920년대 연희전문 교수와 동아일보, 시대일보 논설위원으로 활발한 저술활동 벌였다. 1930년대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역사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우리고대사 왜곡과 말살에 분노, 1935년~1936년 동아일보에 〈오천년간 조선의 얼〉 제목으로 우리역사를 집필, 연재하였다. 위당은 고조선의 전역사를 우리민족사로 체계화하였으며, 단재(신채호)사학을 계승, 발전시켰다. 해방 후 국학대학 초대학장, 대한민국 초대감찰위원장을 지냈다.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제헌절 등 주요 국경절의 노래말을 지어주신 분이다. 1950년 6.25동란으로 납북.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저서로는《조선고서해제》(1931), 《양명학연론》(1933), 《조선사연구상하권》(1946-1947), 《담원시조집》(1948), 《담원국학산고》(1955), 《담원문록》(1967), 《담원정인보전집》(1983), 《담원문록(번역본)》(2006)이 있다.
근대 국학자, 민족사학자, 독립운동가, 시조시인, 언론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동래, 호는 담원(?園), 위당(爲堂). 1893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한학 수학 후 1910년 조선 강화학파의 거두 난곡(蘭谷) 이건방(李建芳)의 제자가 되었다. 1910~1914년 중국 안동, 봉천, 서간도, 상해 등을 수시로 다니며 신규식, 박은식, 신채호, 김규식, 문일평, 홍명희 등과 교유. 독립운동 비밀결사조직인 동제사(同濟社)에 가입하였다. 1920년대 연희전문 교수와 동아일보, 시대일보 논설위원으로 활발한 저술활동 벌였다. 1930년대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역사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우리고대사 왜곡과 말살에 분노, 1935년~1936년 동아일보에 〈오천년간 조선의 얼〉 제목으로 우리역사를 집필, 연재하였다. 위당은 고조선의 전역사를 우리민족사로 체계화하였으며, 단재(신채호)사학을 계승, 발전시켰다. 해방 후 국학대학 초대학장, 대한민국 초대감찰위원장을 지냈다.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제헌절 등 주요 국경절의 노래말을 지어주신 분이다. 1950년 6.25동란으로 납북.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저서로는《조선고서해제》(1931), 《양명학연론》(1933), 《조선사연구상하권》(1946-1947), 《담원시조집》(1948), 《담원국학산고》(1955), 《담원문록》(1967), 《담원정인보전집》(1983), 《담원문록(번역본)》(2006)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