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이성비판』(1판 2002/ 개정판 2009)을 새롭게 다듬어 편집한 개정2판이 출간되었다. 『실천이성비판』과 더불어 칸트 도덕철학 3부작이라 할 수 있는 『윤리형이상학 정초』(한국어 칸트전집 06)와 『윤리형이상학』(한국어 칸트전집 12)이 출간됨에 따라 『실천이성비판』의 부록에 담았던 칸트 철학 개요 및 도덕철학의 개괄적 소개가 불필요한 것으로 보여 삭제하고 전체 분량을 줄이고 내용의 일부분을 수정했다.
칸트철학을 통해 서양근대철학이 극적인 변화를 맞게 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것은 『순수이성비판』의 출간과 더불어 생긴 이론철학 영역 내에서의 변화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 변화는 실천철학의 영역인 윤리학에서도 일어났다. 과학적 지식이 엄청난 발전을 이루고 있었던 당시에, 그 추진력의 모체인 인간의 이론이성에 비판과 한계를 설정하고, 그것이 실천이성의 체계에 포함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칸트의 윤리사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과 함께 서양 윤리학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는다. 또한 서양윤리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만큼이나 칸트 윤리학을 지칭하는 표현들 또한 적지 않다. 형이상학 윤리, 규범 윤리, 법칙주의 윤리, 의무론적 윤리, 엄숙주의 윤리, 동기주의 윤리, 준칙 윤리, 형식주의 윤리 등 칸트 윤리학의 성격을 표현하는 다양한 표현들은 칸트 윤리학이 이제까지 얼마나 다양하게 해석되고 이해되어 왔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바로 이러한 사상적 핵심을 담고 있는 책이 그 유명한 『실천이성비판』이다.
Contents
제1부 『실천이성비판』 해제
『실천이성비판』 해제
저술 배경
『실천이성비판』 의 성격과 『순수이성비판』 과의 관계
칸트 도덕철학 안에서 『실천이성비판』 의 위치
『실천이성비판』 의 대강
칸트 도덕철학의 주제
순수 실천 이성의 분석학
: 실천이성의 자율성과 인격의 존엄성
순수 실천 이성의 변증학
: ‘최고선’의 이념
지식학에서 지혜론으로
해제와 주해에서 한국어 제목을 사용한 칸트 원 논저 제목[약호], 이를 수록한 베를린 학술원판 전집[AA] 권수(와 인용 역본)
칸트 도덕 철학 관련 주요 문헌
I. 원전의 주요 판본
II. 『실천이성비판』 을 위한 보충 자료
III. 도덕철학에 관한 칸트의 여타 저작들
1. 칸트에 의해 출간됐거나 출간 기획된 저술 및 그 해당 부분
2. 칸트 유고
3. 기타 강의록
4. 칸트가 보내고[An] 받은[Von] 서간들
IV. 연구보조서
1. 서지(書誌)
2. 잡록(雜錄)
V. 집류(集類) 및 대회보
VI. 칸트 윤리 이론 형성과 관련 깊은 저술들
VII. 연구논저
1. 『실천이성비판』 연구논저
1) 주석서 및 입문서
2) 주제별 연구논저
2. 종합연구서
3. 윤리학 중심 연구논저
4. 종교철학 중심 연구논저
5. 법철학·정치철학·사회철학 관련 연구논저
6. 영향 및 발전사 연구논저
7. 한국어 연구논저
제2부 『실천이성비판』 역주
역주의 원칙
유사어 및 상관어 대응 번역어
『실천이성비판』 번역 및 주석
찾아보기
일러두기
인물 찾아보기
개념 찾아보기
Author
임마누엘 칸트,백종현
철학자 칸트는 63세에 이르러 집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때는 이미 결혼 적령기를 한참이나 지난 나이였다. 쉰일곱 살에 첫 번째 위대한 저작 <순수이성비판1781>을 출간했다. 십 년을 넘게 시간강사 생활을 이어가다 마흔여섯 살이 돼서야 자기 고향에 있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될 수 있었다. 세상에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드물고 남들보다 성과가 없는 고단한 인생이라면 뒤늦게 빛을 본 칸트의 인생을 떠올려 봄직하다. 평범한 서민의 아들이었으며 젊어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도 아니었고 부와 명예를 위해 활발하게 활동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칸트는 늦은 나이에 빛을 내기 시작한 천재였다. 인류 스스로 과감하게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였다. 또한 그 자신이 인류가 현대의 정신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커다란 출입문이었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1785>,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 비판 1790>,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1795>, <도덕 형이상학1797> 등을 썼다.
철학자 칸트는 63세에 이르러 집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때는 이미 결혼 적령기를 한참이나 지난 나이였다. 쉰일곱 살에 첫 번째 위대한 저작 <순수이성비판1781>을 출간했다. 십 년을 넘게 시간강사 생활을 이어가다 마흔여섯 살이 돼서야 자기 고향에 있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될 수 있었다. 세상에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드물고 남들보다 성과가 없는 고단한 인생이라면 뒤늦게 빛을 본 칸트의 인생을 떠올려 봄직하다. 평범한 서민의 아들이었으며 젊어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도 아니었고 부와 명예를 위해 활발하게 활동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칸트는 늦은 나이에 빛을 내기 시작한 천재였다. 인류 스스로 과감하게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였다. 또한 그 자신이 인류가 현대의 정신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커다란 출입문이었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1785>,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 비판 1790>,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1795>, <도덕 형이상학1797>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