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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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8/01/30
Pages/Weight/Size 152*224*20mm
ISBN 9788957335833
Categories 사회 정치 > 교육
Description
칸트는 어렵다! 아니다, 칸트의 『교육학』을 보라!

『한국어 칸트전집』 제19권으로 펴내는 이 책은 칸트의 강의안 수고(手稿)를 넘겨받아 링크(Friedrich Theodor Rink, 1770~1821)가 편찬한 『임마누엘 칸트의 교육학(Immanuel Kant uber Padagogik)』(1803)을 한국어로 옮기고 주석과 해설을 덧붙여 만든 것으로, 『교육학』은 그 약칭이다.

칸트의 교육학 이론은 당시까지의 여러 교육 경험과 이념들을 칸트 자신의 철학과 결합시킨 산물이며, 이로써 칸트는 로크, 루소와 함께 근대 계몽주의 3대 교육이론가라 칭해도 충분하다. 칸트가 강의 초기에 특히 루소를 자주 인용하고, 또 루소는 줄곧 로크를 의식하면서 자기 논변을 전개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부록으로 로크의 이성주의 교육이론이 담겨 있는 『교육론』(1693)과 루소의 감성주의 교육이론을 대변하는 『에밀』(1762)을 요약해서 실었기 때문에, 세 사상가가 표명한 교육론의 차이점을 어렵지 않게 살필 수 있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근대 계몽주의 교육이론가들의 저술을 접할 때 흥미로운 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아동들의 교육에 대한 세세한 지침을 포함하고 있는 교육서의 저자들, 로크, 루소, 칸트 그리고 이들 교육론의 선구라고 할 수 있는 『아동교육론』(1529)의 저자 에라스무스 모두가 자기 자식들을 교육해본 일이 없다는 사실이다.(로크와 칸트는 그나마 다년간의 가정교사 이력이 있으니 귀족 자제들에 대한 교육 경험은 있었으나, 루소는 자기 자녀들마저 고아원에 맡긴 처지에서 스스로 아동교육에 무능함을 고백하고 있다.) 또 하나는, 통상 감각경험주의자라고 일컬어지는 로크는 이성주의적 교육론을 펴고 있고, 프랑스 이성주의의 대표자 중 하나로 꼽히는 루소는 감성주의 교육론을 펴고 있으며, 이성주의자 중의 이성주의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 칸트는 루소의 교육론에 유의하고 있는 점이다. 사람이 하는 여러 가지 일 중에서도 어쩌면 교육에서 일어나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가장 큰 까닭일 것 같다.(그래서 교육론을 펴면서 칸트 자신도 정치와 교육이 인간사 중 최고 중대사이자 최대 난제라고 말하고 있다.)

아동교육에 직접 경험이 없는 이들의 아동교육에 대한 의견이 수많은 아동교육자의 것보다 때로 더 적실한 것은, 결혼 경험이 없는 신부나 스님들의 결혼 생활에 대한 조언이 이치에 더 맞는 것과 유사한 것 같기도 하다. 또한 이론과 실천의 합일이 더욱 기대되는 분야, 도덕학이나 정치학에서도 유사한 양상을 본다. 평생 노동을 구경만 한 이가 노동의 가치를 열렬히 역설하고, 군왕이 된 일도 될 일도 없는 사람이 왕의 법도를 세세히 논설한 사례도 적지 않다. 유경험은 흔히 자기 정당화나 자기 영웅화를 인도하지만, 오히려 무경험은 무(無)선입견과 이상(理想)을 나타내 보여 줄 때가 있다.
Contents
책을 펴내면서

제1부 『칸트의 교육학』 해제

『칸트의 교육학』 해제

해제와 주해에서 한국어 제목을 사용한 칸트 원논저 제목[약호],
이를 수록한 베를린 학술원판 전집[AA] 권수(와 인용 역본)

『칸트의 교육학』 관련 주요 문헌

제2부 『칸트의 교육학』 역주

역주의 원칙
유사어 및 상관어 대응 번역어 표

『칸트의 교육학』 역주

『칸트의 교육학』 찾아보기
일러두기
인물 찾아보기
개념 찾아보기

부록
[부록 1] 로크의 『교육론』 개요
[부록 2] 루소의 『에밀』 개요

Author
루트비히 볼츠만,이성열
철학자 칸트는 63세에 이르러 집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때는 이미 결혼 적령기를 한참이나 지난 나이였다. 쉰일곱 살에 첫 번째 위대한 저작 <순수이성비판1781>을 출간했다. 십 년을 넘게 시간강사 생활을 이어가다 마흔여섯 살이 돼서야 자기 고향에 있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될 수 있었다. 세상에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드물고 남들보다 성과가 없는 고단한 인생이라면 뒤늦게 빛을 본 칸트의 인생을 떠올려 봄직하다. 평범한 서민의 아들이었으며 젊어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도 아니었고 부와 명예를 위해 활발하게 활동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칸트는 늦은 나이에 빛을 내기 시작한 천재였다. 인류 스스로 과감하게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였다. 또한 그 자신이 인류가 현대의 정신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커다란 출입문이었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1785>,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 비판 1790>,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1795>, <도덕 형이상학1797> 등을 썼다.
철학자 칸트는 63세에 이르러 집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때는 이미 결혼 적령기를 한참이나 지난 나이였다. 쉰일곱 살에 첫 번째 위대한 저작 <순수이성비판1781>을 출간했다. 십 년을 넘게 시간강사 생활을 이어가다 마흔여섯 살이 돼서야 자기 고향에 있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될 수 있었다. 세상에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드물고 남들보다 성과가 없는 고단한 인생이라면 뒤늦게 빛을 본 칸트의 인생을 떠올려 봄직하다. 평범한 서민의 아들이었으며 젊어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도 아니었고 부와 명예를 위해 활발하게 활동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칸트는 늦은 나이에 빛을 내기 시작한 천재였다. 인류 스스로 과감하게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였다. 또한 그 자신이 인류가 현대의 정신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커다란 출입문이었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1785>,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 비판 1790>,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1795>, <도덕 형이상학1797>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