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름

햇살이 따스한 오후입니다.
"소이야."
아빠가 부르십니다.
"달걀 한 꾸러미 좀 사다주겠니?
저녁에 달걀볶음밥을 만들어 줄게."
소이는 아빠가 주신 동전을 가지고 집을 나왔어요.

어린소녀 '소이'가 구멍가게까지 가는 길에는 꽤 많은 유혹거리들이 있습니다. 나른한 햇살이 드리워준 담장 따라서 그림자 밟기 놀이도 해야지요, 전봇대 아래 잠들어 있는 강아지 '해리'를 그냥 지나칠 수 있나요. 눈인사쯤은 하고 가야죠. 아, 근데 저기 골목 끝 반짝이는 파란구슬은 누가 놓고 간 것일까요? 구슬을 눈에 대고 보니 골목 안이 온통 파란 바닷속 같아요. "나는야 큰 바닷속 작은 물고기." 발 아래 밟히는 와삭와삭 나뭇잎, 올록볼록 담장을 따라가며 소이는 드디어 달걀 파는 가게 앞에 도착했어요.

어느 나른한 오후, 아빠의 심부름으로 구멍가게를 찾아가는 아이의 어느 한때가 파스텔톤 그림과 함께 꿈결처럼 펼쳐지는 그림책입니다. 어린 주인공 '소이'의 모습을 뒤따라 가다보면, 그 골목 어딘가에서 "이제 그만 밥먹으러 들어오렴" 하는 유년시절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작가는 전체적으로 중간톤의 황토색과 회색, 그리고 흰색과 검은 색을 묘하게 대비하여 따뜻하고도 아련한 유년의 세계를 그려내 보이고 있습니다. 종이나 크래프트지, 혹은 골판지를 이용하여 독특한 분위기를 낸 것도 특징이지만, 한가지 계열의 색상을 이렇게 다양하고 풍부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책입니다. 대만의 제13회 신이아동문학상 그림책 창작부문 및 2003년 <퍼블리셔스 위클리> 올해의 그림책(Publishers Weekly's Best Children's Picture Books of 2003)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