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자로서 저자는 분노에 대한 문제를 거론한다. 부당한 차별과 억압적인 사회문화적 규범 및 제도들로 인해 ‘나’가 고통 받고 있다는 인식, 그리고 다른 고통 받는 여성들에 대한 동일시에서 오는 분노로 인해 연대감을 느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분노가 점점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는 점이다. 타인에 대한, 혹은 제도에 대한 분노가 커지면서 오히려 분노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보다 분노가 더욱 커져버리는 현상이 초래되었다. 그래서 저자는 다시 문제를 제기한다. ‘정당한 분노가 존재할 수 있는가?’ 실제로 삶 속에서 여성주의적 관점을 치열하게 견지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들은 그냥 넘어가는 부분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비판을 하게 되었고, 그 비판의 과정에서 더 많은 갈등관계를 만들었으며 이에 따라 더욱 더 힘들어지고 공격적으로 변하게 되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차원에서는 용서해줄 수 있다고 느껴지는 일조차 다른 여성들을 위해 투쟁의 전선을 유지해야 한다는 여성주의적 사명감 때문에 의도적으로 용서하지 않게 되는 상황에 놓일 때가 점점 많아지면서, 어느 순간 여성주의자로서의 실천이 저자의 기본적인 품성과 인격을 갉아먹는 대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느껴진 것이다. 용서하면서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용서하면서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는 불교적 관점으로 여성주의 인식론을 새롭게 바라본다. 새로운 시대의 진보와 보수는 어쩌면 물질계에서만 살아가는 사람들과, 물질계가 곧 정신계의 반영임을 자각하는 사람들로 구분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생각할 수 있는 보살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분법이라는 허상의 벽에 부딪치지 않고 허공처럼 자유롭게 그 마음을 펼쳐낼 수 있을 거라고 보고 이분법을 넘어서 분노를 다스리는 동시에 여성주의 인식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Contents
제1부 여성주의와 이분법에 대하여
1장 우리 안에 있는 이분법
2장 불교적 관점에서 여성주의 바라보기
3장 인과의 구조에 대한 해체의 시작
제2부 진정한 이분법의 해체
4장 이 세상이 착각임을 증명하는 논리
1. 중관논리
2. 연기적 관계의 의미
3. 공의 이해 : 존재와 변화의 착각현상
5장 이제설 : 궁극의 진리와 경험적 진실
1. 주체가 없는데 어떻게 행위가 가능한가?
2. 진리의 이중성
6장 불교적 관점에서 여성주의/해체론 바라보기
1. 인과율, 상호인과율, 연기법
2. 규범적 실체론
3. 수행이 결여된 불완전한 해체
제3부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기
7장 자비와 용서의 패러다임
1.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을 넘어서
2. 용서의 가능성
8장 믿음의 정치학
1. 개인과 사회의 이분법을 넘어서
2. 인과로 구성된 마음의 활용
9장 이분법적이지 않은 사회적 실천
1. 적대적 대립을 넘어서기
2. 수행자적 태도의 실천적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