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조사 사업, 산미 증식 계획, 농촌 진흥 운동 등 일본의 기만적인 식민 정책을 살펴보자
우리나라를 병합한 일제는 조선 산업을 예속시키고, 쌀을 비롯한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1912년에 토지 조사령을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토지 조사 사업을 시행하였다. 일제는 이 사업이 지세 부담을 공정히 하고, 근대적인 토지 소유권을 확립할 것이라 선전하였으나 실제는 식민 통치에 필요한 재정 기반인 지세 부과 대상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식민지 지주제가 강화되고 소작인들의 처지는 더욱 어렵게 되었다.
또한 일본은 일본 내 농민들의 많은 이농으로 인해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자 조선의 쌀을 일본으로 수탈하기 위해 1920년부터 1934년까지 산미 증식 계획을 실시하고 한반도를 일본의 식량기지로 만들었다. 이외에도 회사령으로 한국인 기업의 어려움은 더욱 심화되었으며 무단 통치와 문화 통치로 조선의 경제 뿐 아니라 민족의 삶은 더욱 핍박받고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시리즈의 53번째 이야기인『왜 일본은 조선을 수탈했을까?』에서는 조선 농민 연합회 대표 김매기가 오진실 변호사를 선임해 조선 총독부를 상대로 재판을 벌인다. 일본의 토지 조사 사업과 회사령, 산미 증식 계획, 농촌 진흥 운동의 허상 등이 자세히 소개되며 당시 우리 민족의 뼈아픈 현실을 되새겨 청소년들에게 우리 역사를 올바로 알리고 민족정신을 일깨울 수 있다.
Contents
책머리에
교과서에는
연표
등장인물
프롤로그
미리 알아두기
소장
재판 첫째 날 조선 땅, 빼앗은 적 없다?
1. 총독부의 농업정책이 조선 농민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2. 토지 조사 사업, 수탈인가, 근대화인가?
3. 토지 조사 사업, 지주를 위한 것인가, 농민을 위한 것인가?
열려라, 지식 창고_동양 척식 주식회사란?
휴정 인터뷰
재판 둘째 날 그 많던 쌀은 어디로 갔나?
1. 산미 증식 계획, 쌀 생산 실제로 늘었나?
2. 쌀 증산, 혜택을 본 사람은 조선인 지주였다고?
3. 쌀 수출은 농민에게 희망을 주었나?
열려라, 지식 창고_일제의 무단 통치와 문화 통치
휴정 인터뷰
재판 셋째 날 일제 덕에 농민 생활이 나아졌다고?
1. 농촌 진흥 운동이 농촌 생활을 낫게 했다고?
2. 자작농 창설 운동은 제대로 이루어졌다?
3. 공출! 지주도 피해자였다는데
휴정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