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연의』는 총 43권으로 되어 있는데, 『대학연의』 중권에서는 인재를 분별하는 법과 인재를 다루는 법을 다루고 있다. 인재는 반드시 뛰어난 인물만을 말하지 않는다. 인물이란 무엇보다 적합한 사람을 말한다. 그러니 자연 윗사람이 어떤 안목과 태도로 인재를 골라야 하는지를 주로 다루고 있다. 요 임금이 방제(放齊)에게 등용할 만한 인물을 물었더니, 방제가 요 임금의 맏아들인 단주(丹朱)를 천거하였다. 그랬더니 요임금은 비토를 놓았다. 어리석고 남과 다투기를 좋아한다는 말이다. 요임금은 인물에 따라 시험한 뒤 판단을 내리는 신중함을 잃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은 다르지만 합리적인 이유로 천거하면 시험한 뒤 판단하였다. 순임금이 그 예다. 사람의 행동이 의(義)를 추구하는지, 이(利)를 추구하는지를 살피는 것은 군자와 소인을 분별하는 방법이자 척도이다. 인재를 분별하지 못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권16에서 권24까지 역사적 실례를 들며 경계하였다.
권25에서 권27까지는 다스림의 요체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기서 맹자의 말을 빌리면 제왕이 사적인 이익을 앞세우면 그 밑의 신하 역시 사적인 욕심을 추구할 것이라는 것이다. 요즘 세태로 비유한다면 대통령이 국민의 행복을 우선하지 않고 사적인 이익에 연연하면 그 주위의 측근 또한 사적인 이익만을 추구할 것이며, 기업주가 소비자의 이익을 도외시하고 개인적인 이익과 기업 자체의 이익에만 몰두한다면 망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권28에서 35의 내용은, 그렇다면 제왕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다루고 있다.
Contents
머리말
일러두기
격물치지의 요체 2[格物致知之要二] ―인재를 분별함[辨人材]
권15
성현이 사람을 살피는 방법[聖賢觀人之法]
권16
제왕이 사람을 알아보는 일[帝王知人之事]
권17
간웅이 나라를 훔치는 술수[姦雄竊國之術]
권18
간사한 자가 임금을 속이는 실상 1[邪罔上之情一] ―간신(姦臣)
권19
권20
권21
간사한 자가 임금을 속이는 실상 2[邪罔上之情二] ―참신(讒臣)
권22
권23
권24
간사한 자가 임금을 속이는 실상 3[邪罔上之情三] ―말로 아첨하여 총애를 받는 신하[?幸之臣]
간사한 자가 임금을 속이는 실상 4[邪罔上之情四] ―재물을 긁어모으는 신하[聚斂之臣]
격물치지의 요체 3[格物致知之要三] ―정치의 요체를 살핌[審治體]
권25
덕치와 형정의 선후 구분[德刑先後之分]
권26
의리를 중히 여기고 이익을 가볍게 여기는 분별[義利重輕之別]
송나라 건녕부(建寧府) 포성(浦城) 사람으로 호는 서산(西山)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영종(寧宗) 경원(慶元) 5년(1199) 진사(進士)가 되고, 개희(開禧) 원년(1205)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합격하였다. 이종(理宗) 때 예부시랑(禮部侍郞)에 발탁되어 직학사원(直學士院)에 올랐다. 사미원(史彌遠)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지만, 나중에 천주(泉州)와 복주(福州)의 지주(知州)를 지냈다. 단평(端平) 원년(1234) 입조하여 호부상서(戶部尙書)에 오르고, 한림학사(翰林學士)와 지제고(知制誥)가 되었다. 다음 해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는데 얼마 뒤 죽었다. 시정(時政)에 대해 자주 건의하였고, 주소(奏疏)는 수십만 자에 이르렀다. 주자학파(朱子學派)의 대표적 학자로, 『대학연의(大學衍義)』는 『대학장구(大學章句)』에 비견한다는 평을 들었다. 경원당금(慶元黨禁) 이후 정주(程朱)의 이학(理學)이 다시 성행하는 데 공헌한 바가 컸다. 그 밖의 저서에 『당서고의(唐書考疑)』와 『독서기(讀書記)』, 『문장정종(文章正宗)』, 『서산갑을고(西山甲乙稿)』, 『서산문집(西山文集)』 등이 있다.
송나라 건녕부(建寧府) 포성(浦城) 사람으로 호는 서산(西山)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영종(寧宗) 경원(慶元) 5년(1199) 진사(進士)가 되고, 개희(開禧) 원년(1205)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합격하였다. 이종(理宗) 때 예부시랑(禮部侍郞)에 발탁되어 직학사원(直學士院)에 올랐다. 사미원(史彌遠)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지만, 나중에 천주(泉州)와 복주(福州)의 지주(知州)를 지냈다. 단평(端平) 원년(1234) 입조하여 호부상서(戶部尙書)에 오르고, 한림학사(翰林學士)와 지제고(知制誥)가 되었다. 다음 해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는데 얼마 뒤 죽었다. 시정(時政)에 대해 자주 건의하였고, 주소(奏疏)는 수십만 자에 이르렀다. 주자학파(朱子學派)의 대표적 학자로, 『대학연의(大學衍義)』는 『대학장구(大學章句)』에 비견한다는 평을 들었다. 경원당금(慶元黨禁) 이후 정주(程朱)의 이학(理學)이 다시 성행하는 데 공헌한 바가 컸다. 그 밖의 저서에 『당서고의(唐書考疑)』와 『독서기(讀書記)』, 『문장정종(文章正宗)』, 『서산갑을고(西山甲乙稿)』, 『서산문집(西山文集)』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