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연의는 총 43권으로 되어 있는데, 제1권은 ‘제왕이 정치를 행하는 차례’이고, 또 그 첫 문장은 서경 요전(堯典)의 “(요임금이) 큰 덕(德)을 능히 밝히시어 구족(九族)을 친애하니, 구족이 이윽고 화목해지고 백성을 고루 밝히셨다. 백성이 덕을 밝혀 만방이 화합하니 만민(黎民)이 아름답게 변하여 이에 화평케 되었다”로 시작한다. 이것은 대학연의 제1의 관심사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정치이고, 그러한 나라는 만민이 아름답고 화평한 세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세상을 가기 위해서는 구족이 화목하고 백성이 고루 밝아야 하며, 다시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덕을 밝히는 것이 순서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지도자는 정치를 하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국정목표와 수단 그리고 이들 간의 인과관계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이 대학연의가 권2부터 권4에 걸쳐 ‘제왕이 학문하는 근본’을 다루는 이유이다. 배움의 구체적인 내용은 명도술(明道術)에서 제시하고 있는데, 천성과 인심이 모두 선하다는 것과 함께 인간관계의 망을 제시하고 있다. 즉, 그 관계망을 오상(五常), 즉 부자(父子), 군신(君臣), 부부(夫婦), 장유(長幼), 붕우(朋友)로 정의하고 각각의 관계를 규정짓는 윤리인 오륜, 즉 부자유친(父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有序)·붕우유신(朋友有信)을 권6부터 권10까지 다섯 권에 나누어 길게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유학의 가르침이 다른 학문과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왜 그것이 왕도인지를 차례로 설명하고 있다.
Contents
머리말
일러두기
서론: 『대학연의』, 모범국가의 리더십을 말하다
『대학연의』 중간에 부친 황제의 서문[御製重刊大學衍義序]
『대학연의』 서문[眞西山讀書記乙集上大學衍義序]
상서성차자(尙書省箚子)
『대학연의』를 올리는 표문[進大學衍義表]
중서문하성 시정기방에 올리는 신장[中書門下省時政記房申狀]
제왕이 정치하는 차례[帝王爲治之序]
권1
제왕이 학문하는 근본[帝王爲學之本]
권2
요임금·순임금·우임금·탕왕·문왕·무왕의 학문[堯舜禹湯文武之學]
권3
상나라 고종과 주나라 성왕의 학문[商高宗周成王之學]
한나라 고제·문제·무제·선제의 학문[漢高文武宣之學]
권4
한나라 광무제·명제·장제와 당나라 세 황제의 학문[漢光武明章唐三宗之學]
한·위·진·수·당나라 여러 임금들의 학문[漢魏陳隋唐數君之學]
격물치지의 요체 1[格物致知之要一] ―도술을 밝힘[明道術]
권5
천성과 인심의 선함[天性人心之善]
권6
천리와 인륜에 대한 바른 태도 1[天理人倫之正一] ―겸하여 다섯 가지의 큰 인륜을 말함[象言五者大倫]
천자의 효를 오로지 말함[專言天子之孝]
천리와 인륜에 대한 바른 태도 1[天理人倫之正一] ―사람의 효를 통틀어 말함[通言人之孝]
권7
천리와 인륜에 대한 바른 태도 2[天理人倫之正二] ―제왕이 부모를 섬기는 효[帝王事親之孝]
권8
천리와 인륜에 대한 바른 태도[天理人倫之正] ―장유의 순서[長幼之序]
권9
천리와 인륜에 대한 바른 태도 3[天理人倫之正三] ―부부의 분별[夫婦之別]
임금과 신하의 명분[君臣之名]
임금과 신하의 교제하는 예[君臣交際之禮]
천리와 인륜에 대한 바른 태도 4[天理人倫之正四] ―임금이 신하를 다루는 예[君使臣之禮]
권10
천리와 인륜에 대한 바른 태도 4[天理人倫之正四]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충[臣事君之忠]
천리와 인륜에 대한 바른 태도 5[天理人倫之正五] ―붕우의 사귐[朋友之交]
권11
우리 도의 원류에 대한 바른 이해[吾道源流之正]
권12
우리 도의 원류에 대한 바른 이해[吾道源流之正]
권13
이단과 학술의 차이[異端學術之差]
권14
왕도와 패술의 다름[王道覇術之異]
■해제■ 중국의 제왕학과 조선의 정치사상 ―『대학연의(大學衍義)』를 중심으로
참고문헌
주요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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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진덕수
송나라 건녕부(建寧府) 포성(浦城) 사람으로 호는 서산(西山)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영종(寧宗) 경원(慶元) 5년(1199) 진사(進士)가 되고, 개희(開禧) 원년(1205)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합격하였다. 이종(理宗) 때 예부시랑(禮部侍郞)에 발탁되어 직학사원(直學士院)에 올랐다. 사미원(史彌遠)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지만, 나중에 천주(泉州)와 복주(福州)의 지주(知州)를 지냈다. 단평(端平) 원년(1234) 입조하여 호부상서(戶部尙書)에 오르고, 한림학사(翰林學士)와 지제고(知制誥)가 되었다. 다음 해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는데 얼마 뒤 죽었다. 시정(時政)에 대해 자주 건의하였고, 주소(奏疏)는 수십만 자에 이르렀다. 주자학파(朱子學派)의 대표적 학자로, 『대학연의(大學衍義)』는 『대학장구(大學章句)』에 비견한다는 평을 들었다. 경원당금(慶元黨禁) 이후 정주(程朱)의 이학(理學)이 다시 성행하는 데 공헌한 바가 컸다. 그 밖의 저서에 『당서고의(唐書考疑)』와 『독서기(讀書記)』, 『문장정종(文章正宗)』, 『서산갑을고(西山甲乙稿)』, 『서산문집(西山文集)』 등이 있다.
송나라 건녕부(建寧府) 포성(浦城) 사람으로 호는 서산(西山)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영종(寧宗) 경원(慶元) 5년(1199) 진사(進士)가 되고, 개희(開禧) 원년(1205)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합격하였다. 이종(理宗) 때 예부시랑(禮部侍郞)에 발탁되어 직학사원(直學士院)에 올랐다. 사미원(史彌遠)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지만, 나중에 천주(泉州)와 복주(福州)의 지주(知州)를 지냈다. 단평(端平) 원년(1234) 입조하여 호부상서(戶部尙書)에 오르고, 한림학사(翰林學士)와 지제고(知制誥)가 되었다. 다음 해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는데 얼마 뒤 죽었다. 시정(時政)에 대해 자주 건의하였고, 주소(奏疏)는 수십만 자에 이르렀다. 주자학파(朱子學派)의 대표적 학자로, 『대학연의(大學衍義)』는 『대학장구(大學章句)』에 비견한다는 평을 들었다. 경원당금(慶元黨禁) 이후 정주(程朱)의 이학(理學)이 다시 성행하는 데 공헌한 바가 컸다. 그 밖의 저서에 『당서고의(唐書考疑)』와 『독서기(讀書記)』, 『문장정종(文章正宗)』, 『서산갑을고(西山甲乙稿)』, 『서산문집(西山文集)』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