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서양식 병기인 조총과 홍이포가 한반도 지축을 흔드는 세계사적 사변이었다. 양란중의 대량파괴에도 보(洑)가 보급되어 이앙법(移秧法)이 발달함으로써, 논농사에서는 일은 반으로 줄었는데 소출은 배가 되고, 절약된 노동력이 밭농사로 전환되어 면화나 담배 등 상품작물과 함께 원포(園圃)작물들이 재배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장시(場市)가 발달하고 상인도 출현하는 등 상업도 발달했다. 정부는 공물(貢物) 징수와 노비 동원에 의존하던 세수(稅收)를 전결에 대한 미곡의 징수로 전환하는 동시에, 상업 발달을 촉진하고자 상평통보를 주조했다. 이러한 역사발전 배후에는 포저(浦渚)와 잠곡(潛谷) 등의 정책 구상과 실천이 있었으나, 그것들은 조선왕조재건의 종합 설계도가 되기에는 미흡했다.
이에 유형원은 17세기 후기에 《반계수록》을 저술, 노비제대경영을 양인제소경영으로 전환하는 동시에 공전(公田), 경전(經田), 전세 및 군역 등의 국정과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정전제(井田制)와 이를 시행할 관제를 구상했다. 18세기 전반기에 성호와 농포는 방전법(方田法)으로써 경전하는 방법을 연마하고, 18세기 후반기에 연암과 초정은 중국으로부터 선진기술을 도입해 상공업을 진흥시킬 방안을 제시했다. 19세기 초에 다산은 《경세유표》를 저술함으로써 이러한 구상들을 종합하여 부국강병책을 실현할 수 있는 유교적 경세학의 체계를 세웠다. 이렇게 보면, 20세기 후반에 캐치 업 과정을 통하여 이룩한 한국근대화 모형은 이미 조선후기의 실학(實學)에서 모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Author
안병직
1936년 경남 함안 출생.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동 대학원 경제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前 東京大學 經濟學部 敎授. 저서로서 『대한민국 歷史의 岐路에 서다』와 『茶山經世學에 관한 硏究』가 있다.
1936년 경남 함안 출생.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동 대학원 경제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前 東京大學 經濟學部 敎授. 저서로서 『대한민국 歷史의 岐路에 서다』와 『茶山經世學에 관한 硏究』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