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운동에서부터 한국전쟁, 남북 분단까지
김구, 이승만에서부터 맥아더 장군까지
중국 외교관의 눈으로 본 한국의 역사와 인물들
중화민국 초대 주한대사인 사오위린의 회고록으로, 1919년 3·1운동부터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해 서거할 때까지 60년 동안의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와 한중 관계사를 다루고 있다. 사오위린은 동북아시아의 큰 틀에서 한반도 문제를 냉철하게 분석하면서 자신이 직접 만난 김구 및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국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세력을 평가하는 한편, 한중 항일운동 협력사, 한국전쟁에 대한 중화민국의 시각 등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한국 근대사의 중심을 관통한 저자의 기록을 담은 이 책은 당시 상황을 복원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자 외교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다.
Contents
제1장│ 중국에서 전개된 한국 독립운동
말 한 마디로 결정된 운명
3·1운동에 대한 추억
한국임시정부의 독립 투쟁과 중국의 대한 원조
제2장│ 한국임시정부 고문에서 주한대사로 부임하기까지
김구 주석의 고문으로 영입되다
한국의 독립을 위한 한중 연합 노력
제3장│ 주한대사 부임과 고난의 투쟁
부임 전 장제스 총재와의 면담
역사적인 한중 진해회담 개최
한국전쟁 직전의 폭풍 전야
급변하는 남북한 정세와 우톄청의 방한
제4장│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한국전쟁
서울에서 철수하기까지 길고 길었던 이틀간의 낮과 밤
장제스 총재의 한국 원조 결정과 유엔의 한국 원조 결의
대전 전선에서 재회한 중미 사절단
전시 대구에서의 소소한 다반사
배수진을 친 최후의 거점지 부산
제5장│ 유엔군의 공격과 중공 참전
인천 상륙, 그리고 서울 수복
서울에서 평양까지의 제1전지 업무 보고
중공의 참전과 중화민국의 전술
주한대사로서 한국전쟁에 임한 나의 전략
한국전쟁 당시 한중 외교와 한국의 정치 흐름
주한 화교 동포들과 생사를 함께하다
제6장│ 맥아더 장군의 사퇴와 나의 사직
전략 논쟁과 맥아더 장군의 사퇴
나와 맥아더 장군의 교류
일본과의 합의, 그리고 한국전쟁의 정전회담
나의 사직과 후임 결정
제7장│ 주한대사를 사임한 뒤의 나와 한국
끊을 수 없는 한국과의 인연
반공의사의 타이완 복귀와 아시아 반공 조직에 대한 구상
한일 교류 중재 및 이승만의 국립묘지 매장 요청
향후 한중 관계 전망
해제. 한중 근대사의 중심을 관통하는 외교 기록
Author
사오위린,이용빈
1909년 중국 저장성(浙江省) 인현(인縣)에서 태어났다. 1935년 국민정부 외교부의 일본·러시아과 과장, 1937년 주일본 요코하마 총영사를 거쳤으며, 1944년 김구의 요청으로 중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한국임시정부의 고문을 맡아 한국의 독립운동을 여러 방면에서 지원했다. 임시정부의 요원들과 친분이 두터웠으며, 김구, 이승만과도 깊은 관계를 유지했다. 1949년 7월부터 1951년 9월까지 초대 주한 중화민국대사로 재직했으며, 주한대사직을 사임한 이후로도 한일 교류를 중재하고 이승만 대통령의 국립묘지 안장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등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1984년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09년 중국 저장성(浙江省) 인현(인縣)에서 태어났다. 1935년 국민정부 외교부의 일본·러시아과 과장, 1937년 주일본 요코하마 총영사를 거쳤으며, 1944년 김구의 요청으로 중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한국임시정부의 고문을 맡아 한국의 독립운동을 여러 방면에서 지원했다. 임시정부의 요원들과 친분이 두터웠으며, 김구, 이승만과도 깊은 관계를 유지했다. 1949년 7월부터 1951년 9월까지 초대 주한 중화민국대사로 재직했으며, 주한대사직을 사임한 이후로도 한일 교류를 중재하고 이승만 대통령의 국립묘지 안장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등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1984년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