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다닐 때 한국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가실이란 마을에 덕원 베네딕도 수도원 수사님들이 피난을 오셨습니다. 단발머리 아이는 해 지는 저녁 낙동강 가에서 수도원을 고향처럼 알고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아이는 어느새 라자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미국에서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고향을 주고 싶었습니다. 한국어를 가르치고, 주일학교에도 보내고 했던 노력은 나그네 삶을 사는 우리 모두의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민족'이라는 단어는 내 안에 자리 잡아 내가 되어 갔습니다. 한국에 살았다면 무심히 지나쳤을 단어가 '별'처럼 아픔과 그리움이 되어 살아 움직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