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퀴나스 지성단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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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07/06/14
Pages/Weight/Size 148*210*20mm
ISBN 9788941907084
Categories 종교 > 천주교
Description
이 책은 지성단일성을 주장한 아베로에스주의자들에 대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통렬한 비판이다. 중세 아리스토텔레스 '공인' 주석가 아베로에스는 지성을 개별적 인간 영혼에서 분리·독립되어 존재하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단 하나뿐인 실체라고 해석했다. 이 입장은 개별적 지성을 인간에게서 배제시키기 때문에, 개별적 불멸성과 사후 형벌에 대한 그리스도교 믿음의 기반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13~14세기 파리 대학 인문학부의 아베로에스주의자들은 이 해석을 아리스토텔레스 『영혼론』에 대한 올바른 해석으로 인정했다. 그들은 이 주장으로 1270년과 1277년 두 차례 단죄되었다. 이 책에서 토마스 아퀴나스가 통박해 마지않는 주제가 바로 아베로에스주의자들의 지성단일성론이다.

'철학자' 토마스는 치열한 논쟁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논적 아베로에스주의자들의 해석이 그리스도교 교의에 위배됨은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마저 왜곡시키고 타락시킨다고 거칠게 몰아붙인다. 다른 저술에서는 자기 견해를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게 풀어쓰면서, 반대 견해에도 전혀 동요되거나 흥분하지 않던 토마스가 아닌가?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 책에서만큼은 그토록 평상심을 잃고 분노하게 만들었는가? 대답 그 이상의 것이 이 책 속에 있다.
Contents
해제

1. 저술의 배경과 연대
2. 아베로에스와 아베로에스주의자들
2.1 아베로에스 2.2 시제 브라방
3. 저술의 개요
3.1 지성분리성 비판: 1-3장 3.2 지성단일성 비판: 4-5장
4. 저술의 영향과 의의

본문과 역주

제1장_아리스토텔레스 해석을 통한 지성분리성 비판
제2장_소요학파 이론을 통한 지성분리성 비판
제3장_철학적 논변을 통한 지성분리성 비판
제4장_지성단일성 비판
제5장_지성다수성을 위한 철학적 논변
Author
토마스 아퀴나스,이재경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74)는 이탈리아 남부의 아퀴노(Aquino)라는 마을 근처 로카세카(Rocasecca) 성(城)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5세가 되던 해에 그는 근처의 베네딕도 수도회 소속 몬테 카시노(Monte Cassino) 수도원에 봉헌되어 초등 교육을 받았으며, 14세에는 인근 나폴리 대학에 입학했다. 그곳 나폴리에서 새로운 탁발 수도회인 도미니코 수도회의 활동에 감명을 받아 수도회 총장의 뜻을 따라 당시 신학의 중심지인 파리 대학으로 가고자 했으나, 어머니의 반대로 감금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파리에서 위대한 스승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밑에서 공부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1257년에는 보나벤투라(Bonaventura)와 함께 파리 대학 교수단에 받아들여졌다. 1259년 그는 파리를 떠나 이탈리아로 돌아가 9년 동안 교황청 소속의 학원과 수도원 등에서 강의했으며, 1269~72년까지는 다시 파리 대학에서 강의했다. 이 시기에 그의 학문 활동은 절정에 이르렀는데,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정통한 주석자임을 자처하던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들과 논쟁을 벌여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옹호했다. 교황에 의해 리옹 공의회에 초청되어 가던 도중, 포사노바의 한 시토회 수도원에서 1274년 3월 세상을 떠났다. 1323년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으며, 1879년에는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인 「영원한 아버지」(Aeterni Patris)에서 그를 현대 가톨릭 철학의 스승으로 선포하기도 했다. 대표작으로 방대한 분량의 『신학대전』을 비롯해 『대이교도대전』, 『신학요강』 등이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와 보에티우스 등의 저서에 대한 다양한 주해서를 남겼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74)는 이탈리아 남부의 아퀴노(Aquino)라는 마을 근처 로카세카(Rocasecca) 성(城)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5세가 되던 해에 그는 근처의 베네딕도 수도회 소속 몬테 카시노(Monte Cassino) 수도원에 봉헌되어 초등 교육을 받았으며, 14세에는 인근 나폴리 대학에 입학했다. 그곳 나폴리에서 새로운 탁발 수도회인 도미니코 수도회의 활동에 감명을 받아 수도회 총장의 뜻을 따라 당시 신학의 중심지인 파리 대학으로 가고자 했으나, 어머니의 반대로 감금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파리에서 위대한 스승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밑에서 공부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1257년에는 보나벤투라(Bonaventura)와 함께 파리 대학 교수단에 받아들여졌다. 1259년 그는 파리를 떠나 이탈리아로 돌아가 9년 동안 교황청 소속의 학원과 수도원 등에서 강의했으며, 1269~72년까지는 다시 파리 대학에서 강의했다. 이 시기에 그의 학문 활동은 절정에 이르렀는데,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정통한 주석자임을 자처하던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들과 논쟁을 벌여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옹호했다. 교황에 의해 리옹 공의회에 초청되어 가던 도중, 포사노바의 한 시토회 수도원에서 1274년 3월 세상을 떠났다. 1323년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으며, 1879년에는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인 「영원한 아버지」(Aeterni Patris)에서 그를 현대 가톨릭 철학의 스승으로 선포하기도 했다. 대표작으로 방대한 분량의 『신학대전』을 비롯해 『대이교도대전』, 『신학요강』 등이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와 보에티우스 등의 저서에 대한 다양한 주해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