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메시스

$32.40
SKU
9788937416293
+ Wish
[Free shipping over $100]

Standard Shipping estimated by Fri 01/24 - Thu 01/30 (주문일로부 10-14 영업일)

Express Shipping estimated by Tue 01/21 - Thu 01/23 (주문일로부 7-9 영업일)

* 안내되는 배송 완료 예상일은 유통사/배송사의 상황에 따라 예고 없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Publication Date 2012/04/10
Pages/Weight/Size 160*230*40mm
ISBN 9788937416293
Categories 소설/시/희곡 > 비평/창작/이론
Description
오디세우스의 서사시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남긴 주요 작품들을 치밀하게 해석한 비평의 걸작


문학의 본질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답변이 있을 수 있으나, 예로부터 널리 받아들여졌던 답변의 하나는 예술이 현실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일단 현실을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객관적인 여건의 전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정의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예술가가 이렇게 정의된 모든 것을 다 그려 낼 수는 없다. 예술가는 불가피하게 선택적이 될 수밖에 없고, 이 선택은 한쪽으로 어떤 개인의 관점에서 그의 삶에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주목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선택적 현실의 구성은 대개 의식적으로 선택되어 이루어지기보다는 무의식적인 전제로서 존재한다.

이 책에서 아우어바흐는 ‘관습이 어떻게 역사를 통하여 예술적 표현을 제약하는가, 그리고 이러한 관습은 어떠한 사회 조건에 의하여 규정되는가, 또 예술은 어떻게 이러한 것을 개조하고 새로운 표현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라는 예술에 관한 가장 핵심적인 질문을 던진다. 아우어바흐는 이에 대한 탐구를 통해 예술의 존재 양식은 물론 사회와 예술의 관계에 대하여 날카로운 통찰력을 제시한다.
Contents
『미매시스』재출간에 부쳐
역자 서문
머리에

오디세우스의 훙터
포르투나타
페트루스 발보메레스의 체포
시카리우스와 크람네신두스
롤랑 대 가늘롱
궁정 기사의 출정
아담과 이브
파리나타와 카발칸테
수사 알베르토
마담 뒤 샤스텔
팡타그뤼엘의 입 안의 세계
인간 조건
지쳐 빠진 왕자
마법에 빠진 둘시네아
가짜 독신자
중단된 만찬 1-계몽주의 시대의 리얼리즘
중단된 만찬 2-18세기 프랑스의 리얼리즘
음악가 밀러
라 몰 후작댁 1-스탕달의 비극적 리얼리즘
라 몰 후작댁 2-두 개의 리얼리즘
제르미니 라세르퇴 1-없는 사람들과 심미주의
제르미니 라세르퇴 2-졸라와 그의 동시대인들
갈색 스타킹-새로운 리얼리즘과 현대 사회

에필로그
찾아보기
Author
에리히 아우어바흐,김우창,유종호
1892년에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하이델베르크에서 법률 공부를 했으나 1차 세계대전에 종군한 뒤 예술사, 언어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1921년에 로맨스어로 학위를 받았다. 비코의 『새 학문』을 변역했고, 1929년에 『세속 세계의 시인으로서의 단테』를 내어 한계의 인정을 받았으며 이어 말부르크 대학교에서 로맨스어 문학을 가르쳤다. 이후 나치 정권의 유대인 박해에 따라 터키의 이스탄불로 가서 터키 국립대학교에서 11년간을 머물렀다. 미메시스를 쓰기 시작한 것은 이때였는데 터키에서의 불우한 연구 환경, 즉 도서와 자려의 결핍이 오히려 대작을 가능하게 하였다. 1947년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 프린스턴 대학교, 예일 대학교에서 일하다가 1957년에 작고하였다.
1892년에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하이델베르크에서 법률 공부를 했으나 1차 세계대전에 종군한 뒤 예술사, 언어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1921년에 로맨스어로 학위를 받았다. 비코의 『새 학문』을 변역했고, 1929년에 『세속 세계의 시인으로서의 단테』를 내어 한계의 인정을 받았으며 이어 말부르크 대학교에서 로맨스어 문학을 가르쳤다. 이후 나치 정권의 유대인 박해에 따라 터키의 이스탄불로 가서 터키 국립대학교에서 11년간을 머물렀다. 미메시스를 쓰기 시작한 것은 이때였는데 터키에서의 불우한 연구 환경, 즉 도서와 자려의 결핍이 오히려 대작을 가능하게 하였다. 1947년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 프린스턴 대학교, 예일 대학교에서 일하다가 1957년에 작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