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의 안내자와 메신저의 일을 자신의 철학적 소명으로 삼은 철학자 미셸 세르는 커뮤니케이션의 시대, 즉 헤르메스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소통은 바로 백과지식이라는 상호 간섭의 공간을 가로지르는 여행으로, 그는 학문 분야들 사이의 전령으로서 문학, 과학, 과학사, 철학 사이를 돌아다닌다. 이러한 여정이 차례로 『소통』, 『간섭』, 『번역』, 『분포』, 『서북 통행로』, 곧 『헤르메스』 5부작으로 구현된다.
특히 제4권 『분포』는 그의 이러한 사상적 역량이 총 집약된 것으로 평가받는 책이다. ‘분포’는 무작위적으로 흩어져 퍼진 상태와 나누어서 퍼뜨리는 활동을 동시에 의미하는데, 세르가 들고 있는 예들은 지구상에 부족들이 흩어져 있는 상태, 카드 분배, 원자들이나 점들 또는 모든 하찮은 것들의 무작위적인 배열 상태 등이다. 세르는 19세기의 패러다임을 구성하는 철학자, 과학자, 작가로 니체, 다윈, 마르크스, 미슐레, 베르그송, 볼츠만, 파스퇴르, 푸리에, 프로이트, 졸라, 도르빌리, 시쉬포스와 다나이데스 신화 등을 선정하여 이들이 내보이는 열역학과 위상기하학의 패러다임을 탐색하고 유체역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