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2월 이집트 북부 나일 강 기슭의 나그함마디 마을 근처에서 무하마드 알리 형제에 의해 발견된 도마복음에 대한 해설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동양적이고 신비적인 색채를 지닌 도마 복음을 소개하고 있으며 도마복음이 신약 성서의 다른 복음서들과는 달리 예수를 신의 대변자나 신의 아들이라기보다는 깨달음에 이른 영적 스승의 모습으로 묘사한다고 말하고 있다.
Contents
이러한 일은 언제나 되풀이되어 왔다. 예수가 온다. 그러나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붓다가 온다. 그러나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러면서도 수세기에 걸쳐 그대는 예수와 붓다에 대해 생각해 왔다. 그래서 종교가 세워지고 이곳에 있을 때는 알아주지도 않던 그를 위해 거대한 조직이 세워진다. 그대는 왜 살아 있는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는가? 이것에 대해 이해해야만 한다. 그것은 마음에, 마음의 그 본성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실수가 아니다. 이 사람이나 저 사람에 의해 저질러지는 잘못이 아니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의 마음에 의해 저질러져 온 것이다.
그 마음을 꿰뚫어보고 이해해야 한다. 첫째는 이것이다. 마음에게는 현재가 없다. 마음은 과거나 미래를 갖고 있을 뿐이다. 현재는 너무 좁기 때문에 마음은 그것을 붙잡을 수 없다. 마음이 그것을 붙잡는 순간 그것은 이미 과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은 과거를 기억할 수 있고 미래를 욕망할 수는 있지만 현재를 바라볼 수는 없다. 과거는 거대하다. 미래 역시 광활하다. 그러나 현재는 너무나 작고 미묘하기 때문에 그것을 느끼는 순간에 그것은 이미 가버린다. 그리고 그대는 그만큼 깨어 있지 않다. 매우 강렬하게 깨어 있는 의식이 필요하며, 오직 그때만 현재를 볼 수 있다. 충분히 깨어 있어야 한다. 충분히 깨어 있지 않으면 현재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이미 과거와 미래에 취해 있다.
며칠 전 물라 나스루딘이 나를 찾아오기 위해 택시를 잡아타고는 말했다. “운전사 양반, 오쇼 아쉬람으로 갑시다.”
그 말을 들은 택시 운전사는 매우 화를 내면서 택시에서 내렸다. 왜냐하면 그 택시는 코레가온 파크 17번지(뭄바이 근처 뿌나 시에 있는 오쇼 아쉬람의 주소)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운전사는 차 문을 벌컥 열고는 나스루딘에게 말했다.
“이봐요, 아쉬람에 도착했으니까 나오시오.”
나스루딘이 말했다. “좋아요. 그러나 다음번에는 이렇게 빨리 운전하지 마시오.”
마음은 취해 있다. 마음은 현재를 볼 수 없다. 그대 앞에 있는 현재를. 마음은 욕망과 꿈으로 가득 차 있다. 그대는 현존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놓치고, 붓다를 놓치며, 크리슈나를 놓치는 것이다. 그러고는 수세기 동안 눈물을 흘리며 울고 죄의식을 느낀다. 수세기 동안 그대는 생각하고, 기도하고, 상상한다. 그러나 막상 예수가 왔을 때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는 그러한 마음의 현존을 얻었을 때 비로소 예수를 만날 수 있다. 그러한 현존만이 현재를 들여다볼 수 있다. 그때 현재는 영원이 된다. 영원은 깊이이다. 그것은 직선상의 움직임이 아니다. 수평적인 길이가 아니라 수직적인 깊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