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보다는 간판을 중시하는 학벌 사회에서 이름 없는 지방대 신설학과 학생들의 미국 명문 대학 점령 프로젝트를 기록한 책이다. 최초이자 최후의 기회로 인식되는 수능 시험에 밀려 지방대로 왔다는 자포자기의 학생들에게 조명석 교수가 고안해 낸 학벌 사회의 틈새 시장 공략법이자 학생들에게 두 번재 기회를 주는 것. 바로 미국 명문대 진학하여 글로벌 인재를 만드는 것이었다.
토익 200점대, 평점 1.5점대를 밑도는 아이들의 미국 명문대학원 진출의 역경의 순간들을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Contents
1장 'The Second Chance'를 잡아라
서울 어느 명문대에서 일어난 일?
교수님, 평생 먹을 딸기 사주세요!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시작하면
3인방 유학대작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누가 지방대엔 가망이 없다고 말하는가
네 안의 잠든 열정을 깨워라
2장 세계의 명문대학원을 뚫는 평범하지만 비범한 전략
현실 직시는 문제해결의 출발점
안에 길이 없다면 밖으로 눈을 돌려라!
미국 명문대학원 진학의 비결과 전략
1) 바다 위를 보는 잠망경은 두 개의 거울이 필요하다
2) 영어의 잽에 얻어터졌다면 이젠 맷집으로 덤벼라
부록1- 영어와 담쌓았던 유학 선배들의 TOEFL 정복 노하우
3) 고수는 기본기를 닦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부록2- 세계의 대학생들이 준비하는 GRE! 맞춤 공략법
부록3- 미국 명문대학원에서도 인정하는 전공 실력 다지기
4) 혼자서 준비하는 미국 명문대학원 유학
부록4- 유학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위한 열 가지 조언 | 112
부록5- 학비 연3천만 원의 미국 사립대학 VS 장학금 연3천만 원의 미국 대학원
3장 코리아 풀(Korea Pool)에서 글로벌 풀(Global Pool)로! 나는 이렇게 준비했다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승자다 - 김종복(UCLA 석사 졸업, LG이노텍 연구원)
공고생, 미국 명문 대학원에 가다 - 전상국(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원)
수능점수는 인생점수가 아니다 - 김지민(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원 석사 졸업, 삼성전자 근무)
우리는 이것을 'The Second Chance'라고 부른다 - 이충헌(일리노이 공과대학원)
코리아 풀(Korea Pool)에서 글로벌 풀(Global Pool)로! - 김종현(델라웨어대학원)
딴따라 대학생에서 미국 명문대학원생으로 - 김동욱(폴리테크닉대학원)
대기업 취업의 꿈을 이루다 - 윤지연(콜로라도대학원 석사 졸업, 삼성전자 근무)
세상은 정말 넓습니다 - 최국헌(폴리테크닉대학원)
장학금으로 학비의 벽을 넘다 - 임구봉(델라웨어대학원 석사 졸업, 삼성전자 근무)
4장 우리는 학벌을 넘어 글로벌로 간다
아름다운 도전은 계속된다 - 유학 준비생들과의 인터뷰
Author
조명석
강릉대학교 전자공학과 교수. 서울에서 출생하여 연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미국 플로리다대학교(University of Florida)에서 공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대전자 책임연구원으로 반도체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던 그는 1991년, 강릉대학교에 신설된 반도체공학과(현 전자공학과)의 유일한 교수로 부임하였다.
서울은 고사하고 수도권 대학도 못가 이곳까지 밀려왔다는 학생들의 자기 패배감, 웬만한 기업에는 이력서조차 내밀 기회도 없는 한국의 학벌 위주 세태를 극복하고 제자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꿈을 심어주기 위해 '미국 명문대학원 진학'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내 주제에 미국 명문대학원 진학이 가당키나 하느냐'는 반응을 보이던 제자들, 토익 200점대에 학점 1.5를 밑돌던 학생들을 설득하고 동료 교수들과 함께 학생들의 숨어있던 열정에 가능성의 불씨를 지펴 마침내 1996년 미국 워싱턴대학교 대학원에 첫 유학생을 배출한 이후 지금까지 30명이 넘는 졸업생을 미국 명문대학원에 합격시켰다. 강릉대 전자공학과는 특히 2005년에 10명, 2006년에 14명이 미국 유수의 대학원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룸으로써 언론과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강릉대학교 전자공학과 교수. 서울에서 출생하여 연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미국 플로리다대학교(University of Florida)에서 공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대전자 책임연구원으로 반도체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던 그는 1991년, 강릉대학교에 신설된 반도체공학과(현 전자공학과)의 유일한 교수로 부임하였다.
서울은 고사하고 수도권 대학도 못가 이곳까지 밀려왔다는 학생들의 자기 패배감, 웬만한 기업에는 이력서조차 내밀 기회도 없는 한국의 학벌 위주 세태를 극복하고 제자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꿈을 심어주기 위해 '미국 명문대학원 진학'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내 주제에 미국 명문대학원 진학이 가당키나 하느냐'는 반응을 보이던 제자들, 토익 200점대에 학점 1.5를 밑돌던 학생들을 설득하고 동료 교수들과 함께 학생들의 숨어있던 열정에 가능성의 불씨를 지펴 마침내 1996년 미국 워싱턴대학교 대학원에 첫 유학생을 배출한 이후 지금까지 30명이 넘는 졸업생을 미국 명문대학원에 합격시켰다. 강릉대 전자공학과는 특히 2005년에 10명, 2006년에 14명이 미국 유수의 대학원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룸으로써 언론과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