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의 원훈이며 민족 지도자인 해공 신익희는 맏형의 손자, 즉 자신의 종손(從孫)인 창현(昌鉉)의 첫돌을 기념하며 한문으로 된 몽학서(蒙學書)를 지어 돌상에 올려놓았다. 1917년 해공의 친필로 찬술된 이 책 《일분몽구(一分蒙求)》는 창현가(昌鉉家)에서 보전해 오다가 2021년 ??(사)해공신익희선생기념사업회??에 기증함으로써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친필에서 느껴지는 묵향에 더하여 우주 만물, 인륜과 사회, 동양사상, 중국사, 그리고 한국 역사까지 담고 있는 내용은 아동의 교양 함양을 위한 최적의 학습서로서 손색이 없다. 이러한 백여 년 전의 가르침을 현재에 이어 고스란히 전하고자 친필 ??원본??과 함께 이를 풀이하고 해석을 곁들인 ??역주서??를 한데 묶어 펴냈다.
Author
해공 신익희,임동석
대한민국 건국의 원훈인 정치가. 경기도 광주 출생.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여구(汝耉), 호는 해공(海公). 어려서 한학을 익혔고, 1908년 관립 한성외국어학교 영어과 졸업 후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에 유학함. 1917년 와세다대학 졸업 후 귀국하여 중동학교 교유를 거쳐 보성법률상업학교(보성전문학교의 전신) 교수를 지냄. 1919년 3월 만세시위 참가 후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헌법을 기초하고 임시정부의 초대 대의원과 초대 내무차장에 이어 내무총장·외무총장 등을 지내며 독립운동에 헌신함. 광복 후 1945년 12월 임정 요인으로 환국하고 곧바로 임정 산하에 정치공작대·정치위원회 등을 조직하였으며,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의 지도위원 중 한 사람으로 선출되어 반탁운동에 앞장섬. 1946년 자유신문사 사장, 국민대학 학장에 취임하고, 제헌국회와 제2대 국회에서 국회의장을 지냄. 1956년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유세차 이동 중 호남선 열차에서 급서함.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됨.
대한민국 건국의 원훈인 정치가. 경기도 광주 출생.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여구(汝耉), 호는 해공(海公). 어려서 한학을 익혔고, 1908년 관립 한성외국어학교 영어과 졸업 후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에 유학함. 1917년 와세다대학 졸업 후 귀국하여 중동학교 교유를 거쳐 보성법률상업학교(보성전문학교의 전신) 교수를 지냄. 1919년 3월 만세시위 참가 후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헌법을 기초하고 임시정부의 초대 대의원과 초대 내무차장에 이어 내무총장·외무총장 등을 지내며 독립운동에 헌신함. 광복 후 1945년 12월 임정 요인으로 환국하고 곧바로 임정 산하에 정치공작대·정치위원회 등을 조직하였으며,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의 지도위원 중 한 사람으로 선출되어 반탁운동에 앞장섬. 1946년 자유신문사 사장, 국민대학 학장에 취임하고, 제헌국회와 제2대 국회에서 국회의장을 지냄. 1956년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유세차 이동 중 호남선 열차에서 급서함.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