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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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2/03/25
Pages/Weight/Size 112*118*15mm
ISBN 9788932922249
Categories 소설/시/희곡 > 시/희곡
Description
오장환의 두 번째 시집. 자신이 운영하던 남만서방에서 발행되었으며 총 17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수록된 시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젊음의 비애와 허무를 강렬하게 드러낸다. 1930년대의 어두운 시대와 그 속에서 절망하는 젊은이의 내면 풍경을 인상적으로 보여 준다.
Contents
할렐루야
심동(深冬)
나의 노래
석양
체온표(體溫表)
The Last Train
무인도
헌사 Artemis
싸느란 화단
북방의 길
상렬(喪列)
영원한 귀향
영회
적야(寂夜)
나폴리의 부랑자
불길한 노래
황무지


해설
편자의 말
Author
오장환
1918년 5월 충북 보은군 회인면 중앙리에서 해주 오씨 오학근(吳學根)의 3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한학수(韓學洙)는 오학근의 첩실로 들어왔으나 본처인 이민석(李敏奭)이 사망함에 따라 적실(嫡室)로 재혼 신고되었고, 오장환 또한 적출로 재신고되어 4남 4녀 중 3남이 되었다. 그는 안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수업료를 내지 못해 정학 처분을 받았다. 이해 1933년 11월 오장환은 15세의 어린 나이로 [조선문학]에 시「목욕간」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그 후 오장환은 일본으로 건너가서 도쿄에 있는 지산(智山)중학교에 입학·수료했으며, 1937년 일본 메이지(明治)대 전문부 문예과 별과에 입학했으나 중퇴했다. 1933년 휘문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조선문학]에 「목욕간」을 발표함으로써 시작 활동을 시작하였다. 낭만, 시인부락, 자오선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서정적인 시와 동시 등을 발표하며 서정주, 이용악과 함께 1930년대 시단의 3대 천재로 불렸다. 그의 첫 시집인『성벽』은 1937년 8월 풍림사에서 간행되었으며, 이 시집의 발행으로 오장환은 서정주, 이용악과 함께 ‘시단의 세 천재’로 화려한 주목을 받는다. 그 뒤 그는 자신이 경영하던 남만서방(南蠻書房)에서 두 번째 시집인 『헌사』를 1939년 7월에 발간했으며, [삼천리], [문장], [춘추] 등에 이따금 작품을 발표하면서 일제 말기까지 문단 활동을 이어 나간다.

하지만 해방 이후 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던 열망이 국토 분단에 의해 좌절되면서, 그는 월북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월북 이후 오장환은 북한에서도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갔고, 소련 기행 체험을 담은 제5시집 『붉은 기』를 발간했다. 그다음 해인 1951년 신장결핵으로 사망했으며, 1988년 납·월북 작가의 해금 조치가 이루어지기까지 남한에서 잊힌 시인으로 남아 있었다. 이후 처음으로 『오장환 전집』(창작과 비평사, 1989)이 간행되고 그의 미발표 유고인 장시 「전쟁」과 「황무지」가 발굴·공개됨으로써, 오장환의 문학에 대한 평가 또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1918년 5월 충북 보은군 회인면 중앙리에서 해주 오씨 오학근(吳學根)의 3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한학수(韓學洙)는 오학근의 첩실로 들어왔으나 본처인 이민석(李敏奭)이 사망함에 따라 적실(嫡室)로 재혼 신고되었고, 오장환 또한 적출로 재신고되어 4남 4녀 중 3남이 되었다. 그는 안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수업료를 내지 못해 정학 처분을 받았다. 이해 1933년 11월 오장환은 15세의 어린 나이로 [조선문학]에 시「목욕간」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그 후 오장환은 일본으로 건너가서 도쿄에 있는 지산(智山)중학교에 입학·수료했으며, 1937년 일본 메이지(明治)대 전문부 문예과 별과에 입학했으나 중퇴했다. 1933년 휘문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조선문학]에 「목욕간」을 발표함으로써 시작 활동을 시작하였다. 낭만, 시인부락, 자오선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서정적인 시와 동시 등을 발표하며 서정주, 이용악과 함께 1930년대 시단의 3대 천재로 불렸다. 그의 첫 시집인『성벽』은 1937년 8월 풍림사에서 간행되었으며, 이 시집의 발행으로 오장환은 서정주, 이용악과 함께 ‘시단의 세 천재’로 화려한 주목을 받는다. 그 뒤 그는 자신이 경영하던 남만서방(南蠻書房)에서 두 번째 시집인 『헌사』를 1939년 7월에 발간했으며, [삼천리], [문장], [춘추] 등에 이따금 작품을 발표하면서 일제 말기까지 문단 활동을 이어 나간다.

하지만 해방 이후 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던 열망이 국토 분단에 의해 좌절되면서, 그는 월북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월북 이후 오장환은 북한에서도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갔고, 소련 기행 체험을 담은 제5시집 『붉은 기』를 발간했다. 그다음 해인 1951년 신장결핵으로 사망했으며, 1988년 납·월북 작가의 해금 조치가 이루어지기까지 남한에서 잊힌 시인으로 남아 있었다. 이후 처음으로 『오장환 전집』(창작과 비평사, 1989)이 간행되고 그의 미발표 유고인 장시 「전쟁」과 「황무지」가 발굴·공개됨으로써, 오장환의 문학에 대한 평가 또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