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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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2/03/25
Pages/Weight/Size 112*118*15mm
ISBN 9788932922188
Categories 소설/시/희곡 > 시/희곡
Description
한국 현대시사에서 가장 거대하고 열렬한 시인으로 평가받는 청마 유치환의 두 번째 시집. 초기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깃발」을 비롯하여 54편의 시가 담긴 이 시집에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영원한 노스탤지어를 보여 주는 작품도 있고, 백로처럼 날개를 펴는 애수와 허무를 노래한 작품도 있으며, 슬프고도 애달픈 순정을 그린 작품도 있다.
Contents
서(序)

I

박쥐
고양이
아기
깃발
그리움
이별
분묘(墳墓)
보살상(菩薩像)
아버님
동해안에서
산 1
수선화
점경(點景)에서
소리개
병처(病妻)
철로
일월(日月)
산 2
기약(期約)
귀납(歸納)
단애(斷崖)
송가
지연(紙鳶)
오오랜 태양

II


죽(竹)
또 하나 꽃
조춘(早春)
시일(市日)
산 3
애가(哀歌)
청조(靑鳥)여
부산도(釜山圖)
그리우면
가배절(嘉俳節)
입추
추해(秋海)
추요(秋寥)
산 4
정적
구배(勾配)
항구의 가을
항구에 와서
오월우(五月雨)
의주(義州) 길
어느 갈매기

III


향수
원수
심야
군중
악대(樂隊)
성좌를 허는 사람들
복사꽃 피는 날
백주(白晝)의 정거장
비력(非力)의 시(詩)
까마귀의 노래


해설
편자의 말
Author
유치환
한국 근대문학사의 거목으로 꼽히는 시인으로, 1908년 음력 7월 14일 경남 거제시 둔덕면에서 8남매 중 차남으로 출생했다. 극작가 동랑 유치진이 청마의 맏형이다. 동래보통학교와 일본 부장중학교를 거쳐 1927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하였으나, 1928년 학교를 중퇴하고 그해 10월, 11세부터 알고 지내던 권재순과 결혼한다. 1930년 <문예월간>에 「정적」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한 후, 1939년에 첫 시집인 『청마시초』를 출간하였다.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허무와 낭만의 절규' '깃발'을 비롯한 53편의 초기의 시를 『청마시초』에 담았으며 1940년에는 일제의 압제를 피하여 만주로 이주, 그곳에서의 각박한 체험을 읊은 시 《수(首)》 《절도(絶島)》 등을 계속 발표하였다.

이 무렵의 작품들을 수록한 것이 제2시집 《생명의 서(書)》이다. 8·15광복 후에는 고향에 돌아와서 교편을 잡는 한편 시작을 계속, 1948년 제3시집 《울릉도》, 1949년 제4시집 《청령일기》를 간행하였고, 6·25전쟁 때는 종군문인으로 참가하여 당시의 체험을 《보병과 더불어》라는 종군시집으로 펴냈다. 그후에도 계속 교육과 시작을 병행, 중·고교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통산 14권에 이르는 시집과 수상록을 간행한 바 있다. 그의 시는 도도하고 웅혼하며 격조 높은 시심(詩心)을 거침 없이 읊은 데에 특징이 있는데, 이는 자칫 생경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어떤 기교보다도 더 절실한 감동을 준다는 특징이 있다.

이후 교직에 몸담으며 40여 년 간의 열정적인 시작활동을 통해 총 14권에 달하는 시집과 수상록을 출간했다. 1947년 한국청년문학가협회 제1회 시인상을 비롯하여 서울특별시 문화상, 아시아재단 자유문화상, 제7회 대한민국 예술원상, 부산시문화상 등을 수상하였다. 1967년 부산남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60세에 생을 마감했다. 문단의 거목 청마가 영면에 잠긴지 40년이 넘었지만 생명력 넘치는 그의 시는 여전히 살아 뜨겁게 숨쉬고 있다.
한국 근대문학사의 거목으로 꼽히는 시인으로, 1908년 음력 7월 14일 경남 거제시 둔덕면에서 8남매 중 차남으로 출생했다. 극작가 동랑 유치진이 청마의 맏형이다. 동래보통학교와 일본 부장중학교를 거쳐 1927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하였으나, 1928년 학교를 중퇴하고 그해 10월, 11세부터 알고 지내던 권재순과 결혼한다. 1930년 <문예월간>에 「정적」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한 후, 1939년에 첫 시집인 『청마시초』를 출간하였다.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허무와 낭만의 절규' '깃발'을 비롯한 53편의 초기의 시를 『청마시초』에 담았으며 1940년에는 일제의 압제를 피하여 만주로 이주, 그곳에서의 각박한 체험을 읊은 시 《수(首)》 《절도(絶島)》 등을 계속 발표하였다.

이 무렵의 작품들을 수록한 것이 제2시집 《생명의 서(書)》이다. 8·15광복 후에는 고향에 돌아와서 교편을 잡는 한편 시작을 계속, 1948년 제3시집 《울릉도》, 1949년 제4시집 《청령일기》를 간행하였고, 6·25전쟁 때는 종군문인으로 참가하여 당시의 체험을 《보병과 더불어》라는 종군시집으로 펴냈다. 그후에도 계속 교육과 시작을 병행, 중·고교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통산 14권에 이르는 시집과 수상록을 간행한 바 있다. 그의 시는 도도하고 웅혼하며 격조 높은 시심(詩心)을 거침 없이 읊은 데에 특징이 있는데, 이는 자칫 생경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어떤 기교보다도 더 절실한 감동을 준다는 특징이 있다.

이후 교직에 몸담으며 40여 년 간의 열정적인 시작활동을 통해 총 14권에 달하는 시집과 수상록을 출간했다. 1947년 한국청년문학가협회 제1회 시인상을 비롯하여 서울특별시 문화상, 아시아재단 자유문화상, 제7회 대한민국 예술원상, 부산시문화상 등을 수상하였다. 1967년 부산남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60세에 생을 마감했다. 문단의 거목 청마가 영면에 잠긴지 40년이 넘었지만 생명력 넘치는 그의 시는 여전히 살아 뜨겁게 숨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