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키르키스 공화국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 무렵 아버지가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로 몰려 처형당한 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6년의 정규 교육밖에 받지 못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중 14세의 나이에 지방 소비에뜨 서기 및 세무관이 되었고 전후에는 키르키스 농업대학에 출강, 이후 모스끄바의 고리끼 문학대학까지 졸업했다.
그가 작가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1958년 『자밀랴』를 발표하면서부터였다. 출간 다음 해에 『자밀랴』는 아라공에 의해 프랑스 어로 번역되어 그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렸다. 이후 1961년 발표한 단편집으로 레닌 상을, 첫 번째 장편소설 『굴리사리여 안녕!』으로 소비에뜨 문학상을 받았고, 유럽 여러 나라와 일본에서도 연이어 문학상을 수상했다.
1990년대부터 아이뜨마또프는 고르바초프의 조언자로 활약하면서 현실 정치에도 깊이 관여하였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소련 특사로 임명되었으며, 소비에뜨 연방 해체 후에는 조국인 키르키스 공화국에서 유럽 연합, 나토, 유네스코, 베네룩스 3국 특사로 활동헀다.
『백년보다 긴 하루』(1980)를 포함한 그의 작품들은 중앙아시아의 전통사회를 배경으로, 그 곳에서 벌어지는 선악의 갈등을 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는 전통 사회에 대한 깊은 존경심은 버리지 않았는데, 과학 기술이 자연과 인간에 대한 착취를 심화시키며 결국은 대중을 타락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다른 작품으로는 소설 『굴리사리여 안녕!』, 『하얀 배』(1970), 『해변을 따라 달리는 얼룩개』(1977), 『플라하』(1986), 희곡 『후지산 등반』(1973) 등이 있다.
그는 2008년 79세의 나이에 폐렴으로 생을 마감했다.
1928년 키르키스 공화국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 무렵 아버지가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로 몰려 처형당한 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6년의 정규 교육밖에 받지 못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중 14세의 나이에 지방 소비에뜨 서기 및 세무관이 되었고 전후에는 키르키스 농업대학에 출강, 이후 모스끄바의 고리끼 문학대학까지 졸업했다.
그가 작가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1958년 『자밀랴』를 발표하면서부터였다. 출간 다음 해에 『자밀랴』는 아라공에 의해 프랑스 어로 번역되어 그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렸다. 이후 1961년 발표한 단편집으로 레닌 상을, 첫 번째 장편소설 『굴리사리여 안녕!』으로 소비에뜨 문학상을 받았고, 유럽 여러 나라와 일본에서도 연이어 문학상을 수상했다.
1990년대부터 아이뜨마또프는 고르바초프의 조언자로 활약하면서 현실 정치에도 깊이 관여하였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소련 특사로 임명되었으며, 소비에뜨 연방 해체 후에는 조국인 키르키스 공화국에서 유럽 연합, 나토, 유네스코, 베네룩스 3국 특사로 활동헀다.
『백년보다 긴 하루』(1980)를 포함한 그의 작품들은 중앙아시아의 전통사회를 배경으로, 그 곳에서 벌어지는 선악의 갈등을 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는 전통 사회에 대한 깊은 존경심은 버리지 않았는데, 과학 기술이 자연과 인간에 대한 착취를 심화시키며 결국은 대중을 타락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다른 작품으로는 소설 『굴리사리여 안녕!』, 『하얀 배』(1970), 『해변을 따라 달리는 얼룩개』(1977), 『플라하』(1986), 희곡 『후지산 등반』(1973) 등이 있다.
그는 2008년 79세의 나이에 폐렴으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