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평론집에 실린 글들은 이러한 90년대 이후 시를 중심으로 문학 현장에서 벌어진 사건의 탐방기이고 동시에 미학적인 모험담이기도 하다. 실제로 나는 여기 실린 글들을 쓰는 동안, 다소의 이론적인 모험을 감행했고, 현장감에 기대어 예언적인 전망을 내리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이곳에 실린 ‘시적 지형도’는 이런 비평적 모험의 결과물이다. 엄밀한 이론적 정합성보다는 시기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일, ‘동시대적인 감수성과 감각’에 더 많이 의존했음을 밝혀둔다. 물론 각각의 글에서 최대한의 면밀한 분석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적 생산의 현장은 언제나 이론을 앞서가는 만큼, 비평적 오류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고 생각한다. 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시문학이 한 번도 문단의 중심에 위치했던 적은 없다. 그만큼 시는 변방의 장르이다.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지난 10년 동안만큼 시문학을 둘러싼 ‘미학적 논쟁’과 시인들의 치열한 ‘시정신’이 돋보인 적도 일찍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적어도 이 책의 절반은 이런 불우하지만 ‘불온한 자존심’으로 시정신을 불태운 시인들에 의해서 씌어진 것이다. 이번 평론집에는 90년대 시인론과 작품론을 싣지 못했다. 평론집의 전체적인 틀이 90년대 시의 전반적인 지형과 징후, 그리고 가능성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형태로 짜여진 만큼, 개별 시인론과 작품론을 책으로 묶는 일은 다음을 기약하겠다.
- 책머리에 중에서
Contents
책머리에
제1부 문학적 지형과 징후
근원을 묻는 글쓰기_21세기 비평의 지형도
불온한 정신, 순교의 언어_90년대 시의 지형도
조각난 시간_기형도에 관한 단상
데카르트가 모르는 곳_90년대 문학의 상징적 상상력
역사의 폭풍_90년대 시와 역사적 시간
제2부 세기말, 시의 전략과 진정성
죽음의 운명성과 재생의 신화
시적 위반, 한 줌의 불온성(?)
역사의 종언과 기억의 화법
제3부 오디세우스의 운명
오디세우스의 악몽
근대적 미학주의와 동양 정신
미적 근대성과 진정성의 위기_90년대 시의 징후 1
미적 근대성과 진정성의 위기_90년대 시의 징후 2
제4부 시적 예언과 구원의 에피파니
창조적 개인의 자의식
세기말 시의 전략과 양식의 세 층위
영원한 에피파니, 아름다운 정신의 화석
춤추는 빨간 구두와 영혼의 연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