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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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0/10/15
Pages/Weight/Size 110*174*20mm
ISBN 9788908063242
Categories 소설/시/희곡 > 시/희곡
Description
우리가 잘 아는 〈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시집 - 106편 수록

정지용 시인은 1923년에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졸업생 장학금을 받아 일본 교토의 동지사대학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이때 그는 우리가 잘 아는 시 〈향수〉를 썼다. 1923년 5월부터 1929년 6월까지 교토에서 유학하게 되는데 영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1926년 6월 교토 유학생들의 학회지인 《학조》 창간호에 시조 9수, 동요 형식의 시 6편, 현대적 감각의 시 3편 등 많은 작품을 한꺼번에 발표함으로써 등단하게 되었다. 지용은 이 시기에 다양한 문학 체험을 얻고 작품 발표의 기회도 얻어 시인으로서 이름을 세상에 알린 반면, 개인적으로는 혈육의 죽음이라는 불행을 겪었다. 이때 가톨릭에 입교하게 되는데, 그의 딸아이를 잃은 데다가 아들 구관이 태어나자 마음의 다짐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에서 입교했던 것 같다. 동지사대학을 졸업하고 1929년 9월 1일자 모교인 휘문고보의 영어교사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그의 수업은 학생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었다고 전한다. 정규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한 실력 있는 영어교사였고 학생들의 선배였으며 무엇보다도 시인이라는 점이 학생들에게 어필했을 것이다.
Contents
정지용鄭芝溶론 · 9

바다 1 · 21
바다 2 · 24
비로봉 · 26
홍역 · 28
비극 · 29
시계를 죽임 · 30
아침 · 32
바람 · 34
유리창 1 · 35
유리창 2 · 36
난초 · 38
촉불과 손 · 40
해협 · 42
다시 해협 · 44
지도 · 46
귀로 · 47
오월 소식 · 48
이른 봄 아침 · 50
압천 · 52
석류 · 54
발열 · 56
향수 · 57
갑판 위 ·59
태극선 · 61
카페·프랑스 · 63
슬픈 인상화 · 65
조약돌 · 67
피리 · 68
달리아 · 69
홍춘 · 71
저녁 햇살 · 72
벚나무 열매 · 73
엽서에 쓴 글 · 74
선취 · 75
봄 · 76
슬픈 기차 · 77
황마차 · 81
새빨간 기관차 · 84
밤 · 85
호수 1 · 86
호수 2 · 87
호면 · 88
겨울 · 89
달 · 90
절정 · 92
풍랑몽 1 · 94
풍랑몽 2 · 96
말 1 · 97
말 2 · 100
바다 1 · 102
바다 2 · 103
바다 3 · 104
바다 4 · 105
바다 5 · 106
갈매기 · 108
해바라기 씨 · 110
지는 해 · 112
띠 · 113
산 너머 저쪽 · 114
홍시 · 115
무서운 시계 · 116
삼월 삼짇날 · 117
딸레 · 118
산소 · 119
종달새 · 120
병 · 121
할아버지 · 122
말 · 123
산에서 온 새 · 124
바람 · 125
별똥 · 126
기차 · 127
고향 · 128
산엣 색시 들녘 사내 · 129
내 맘에 맞는 이 · 131
무어래요 · 133
숨기 내기 · 134
비둘기 · 135
불사조 · 136
나무 · 138
은혜 · 139
별 · 140
임종 · 141
갈릴레아 바다 · 143
그의 반 · 145
다른 하늘 · 146
또 하나 다른 태양 · 147
파충류 동물 · 148
‘마음의 일기’에서 · 150
옛이야기 구절 · 153
우리나라 여인들은 · 155
바다 1 · 158
바다 2 · 159
승리자 김안드레아 · 160
천주당 · 166
도굴 · 167
창 · 168
이토 · 170
그대들 돌아오시니 · 172
애국의 노래 · 175
곡마단 · 177

사사조四四調 오수五首

늙은 범 · 181
네 몸매 · 182
꽃분 · 183
산달 · 184
나비 · 185

작가 연보 · 186
작품 연보 · 193
Author
정지용
1902년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에서 태어났다. 옥천보통공립학교,휘문고등보통학교,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22년 고교생 때 첫 작품 풍랑몽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시문학, 구인회 등의 문학 동인과 가톨릭 청년, 문장 등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휘문고보 교원을 거쳐 해방 후에는 이화여전교수, 경향신문주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시 납북되어 사망했다고 알려졌으나, 전쟁으로 인해 폭사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아직까지 정확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1926년 일본 유학중 「카페 프란스」 등 9편의 시를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1933년 9인회를 결성하고 [가톨릭청년]의 편집고문을 맡아 다수의 시와 산문을 발표하였으며, 시인 이상을 문단에 등단시키기도 하였다. 1935년 첫 시집인 『정지용 시집』을 출간하였으며, 1939년 [문장]의 추천위원이 되어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이한직, 박남수 등을 등단시켰다. 1950년 한국전쟁이 뒤에 납북되어 사망하였다.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구사, 생생하고 선명한 대상 묘사에 특유의 빛을 발하는 시인 정지용. 한국현대시의 신경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이상을 비롯하여 조지훈, 박목월 등과 같은 청록파 시인들을 등장시키기도한 시인이었다. 1902년 음력 5월 15일 충북 옥천읍에서 좀 떨어진 구읍의 청석교 바로 옆 촌가에서 한약상을 경영하던 영일 정씨 태국(泰國)을 아버지로 하동정씨 미하(美河)를 어머니로 탄생한 그는 그 당시 풍습에 따라 12살 때(1913) 동갑의 부인 송재숙과 영동군 심천면 초강리 처가에서 결혼하였다. 이 부인 사이에 3남 1녀가 태어났으며, 그 가운데 차남과 3남은 6.25사변중에 행방불명 되었고, 현재 장남 구관과 장녀 구원만 생존해 있다.

그는 휘문고보 재학 시절 [서광] 창간호에 소설 「삼인」을 발표하였으며, 일본 유학시절에느 대표작의 하나인 「향수」를 썼다. 1930년에 시문학 동인으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전개하였고, 구인회를 결성하기도 하였으며 문장지의 추천위원으로 활동했다. 해방이 되서는 경향신문의 주간으로 일하고, 이화여대와 서울대에 출강하여 시론, 수필, 평문을 발표하였다.
1902년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에서 태어났다. 옥천보통공립학교,휘문고등보통학교,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22년 고교생 때 첫 작품 풍랑몽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시문학, 구인회 등의 문학 동인과 가톨릭 청년, 문장 등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휘문고보 교원을 거쳐 해방 후에는 이화여전교수, 경향신문주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시 납북되어 사망했다고 알려졌으나, 전쟁으로 인해 폭사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아직까지 정확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1926년 일본 유학중 「카페 프란스」 등 9편의 시를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1933년 9인회를 결성하고 [가톨릭청년]의 편집고문을 맡아 다수의 시와 산문을 발표하였으며, 시인 이상을 문단에 등단시키기도 하였다. 1935년 첫 시집인 『정지용 시집』을 출간하였으며, 1939년 [문장]의 추천위원이 되어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이한직, 박남수 등을 등단시켰다. 1950년 한국전쟁이 뒤에 납북되어 사망하였다.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구사, 생생하고 선명한 대상 묘사에 특유의 빛을 발하는 시인 정지용. 한국현대시의 신경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이상을 비롯하여 조지훈, 박목월 등과 같은 청록파 시인들을 등장시키기도한 시인이었다. 1902년 음력 5월 15일 충북 옥천읍에서 좀 떨어진 구읍의 청석교 바로 옆 촌가에서 한약상을 경영하던 영일 정씨 태국(泰國)을 아버지로 하동정씨 미하(美河)를 어머니로 탄생한 그는 그 당시 풍습에 따라 12살 때(1913) 동갑의 부인 송재숙과 영동군 심천면 초강리 처가에서 결혼하였다. 이 부인 사이에 3남 1녀가 태어났으며, 그 가운데 차남과 3남은 6.25사변중에 행방불명 되었고, 현재 장남 구관과 장녀 구원만 생존해 있다.

그는 휘문고보 재학 시절 [서광] 창간호에 소설 「삼인」을 발표하였으며, 일본 유학시절에느 대표작의 하나인 「향수」를 썼다. 1930년에 시문학 동인으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전개하였고, 구인회를 결성하기도 하였으며 문장지의 추천위원으로 활동했다. 해방이 되서는 경향신문의 주간으로 일하고, 이화여대와 서울대에 출강하여 시론, 수필, 평문을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