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인의 스승이었던 안서 김억(1896~1950?)은 우리 문학사상 최초로 본격적인 근대시를 발표한 시인이었다. 또한 그는 근대적인 시집을 처음 상재한 작가이며 한때 그의 손으로 이루어진 사화집의 수가 가장 많은 시인이기도 했다. 그가 엮어낸 역시집 『오뇌懊惱의 무도舞蹈』는 1921년 3월에 상재되었다. 『오뇌의 무도』 이후 그는 자작自作과 번역 시집을 합해 모두 20여 권에 이르는 사화집詞華集(1인 또는 다수 작가의 문장을 발췌해 엮은 책)을 보여 주었다. 물론 8·15 이후 본격적으로 활약이 시작된 시인 가운데는 이보다 더 많은 양의 사화집을 상재한 예도 있으나, 일제치하인 시인 가운데 김억처럼 많은 숫자의 사화집을 상재한 예는 일찍이 없었다. 그는 프랑스 상징파 시인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 해외시의 수입과 수용에도 독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아울러 그는 시론을 중심으로 한 해외 문학이론의 수입, 소개에도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시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한때 에스페란토의 보급과 교육에 힘쓴 바 있었는가 하면 김소월金素月과 나도향羅稻香을 필두로 몇 사람의 우수한 시인과 작가를 우리 문단에 소개하거나 그 문단활동을 도운 공로자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한국문학사에 끼친 김억의 발자취는 매우 뚜렷하며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