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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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05/10/25
Pages/Weight/Size 153*224*20mm
ISBN 9788908010055
Categories 사회 정치 > 정치/외교
Description
『군주론』은 500년 전, 조국 통일과 외세축출을 열망하던 이탈리아의 정치가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자신의 염원을 이루어줄 정치지도자에게 바치고자 했던 책이다. 그의 사후에 『군주론』은 수많은 정치지도자들, 혁명가들, 그리고 자국의 권력자의 실체를 시민들에게 폭로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로서 수세기 동안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범우사에서 새롭게 번역되어 출간된 『군주론』은 평이하게 편집된 문장과 각 단락의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 뽑아 놓은 소제목, 16세기의 시대적 상황을 설명한 상세한 주석들로 독자들이 책의 정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마키아벨리가 진정 어떠한 인물이었으며, 또한 『군주론』이 탄생한 이후의 후일담들과 그것이 오늘날의 한국인들에게 주고자 하는 교훈과 의미를 알려주는 두 편의 전문적 해설이 수록되어 있다.
Contents
이 책을 읽는 분에게
드리는 말

제 1 장 군주국의 종류와 그 획득 방법

제 2 장 세습 군주국

제 3 장 복합형 군주국
새로 장악한 지역에 대한 통치의 어려움 / 정복한 지역을 성공적으로 유지하는 방법 / 국가의 불안요소를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 루이 12세의 이탈리아 점령은 왜 실패로 끝났는가 / 루이 12세의 실패로부터의 교훈

제 4 장 정복된 나라의 상이한 특성

제 5 장 점령 도시나 국가에 대한 통치

제 6 장 무력과 역량으로 획득한 새 군주국
자신의 능력으로 군주가 된 자들에 대하여 / 자신의 능력으로 군주가 된 자가 그 성공을 굳히려면

제 7 장 타인의 무력에 의해 획득한 새 군주국
타인의 도움으로 군주가 된 자들의 실패에 대해서 / 아버지의 도움으로 군주가 된 발렌티노 공작의 분투 / 발렌티노 공작의 몰락에 관하여

제 8 장 부도덕한 행위로 군주가 된 사람들
악랄하기 짝이 없던 아가토클레스 / 숙부를 죽인 올리베로토 / 잔임함은 최대한 짧게 보이고 은혜는 최대한 계속 베푼다

제 9 장 시민형 군주국
민중의 지지를 받는 군주와 귀족의 지지를 받는 군주의 차이 / 군주는 민중이 자신의 필요성을 항상 인식하게끔 해주어야 한다

제 10 장 군주국의 국력에 대한 평가

제 11 장 교회국가
신의 뜻이 절대적인 바탕이 되는 교회국가 / 알렉산데르 6세, 율리우스 2세, 그리고 레오 10세 교황 하의 교회국가

제 12 장 군대의 종류와 용병
국가의 방위를 용병에게 맡겨서는 안 되는 이유 / 용병은 백해무익하다 / 용병은 이탈리아를 어떻게 몰락시켰는가

제 13 장 원병과 혼성군과 국민군
파멸을 원하는 군주는 원병을 요청하라 / 자국의 군대로 전쟁을 하는 군주만이 진정한 승리자가 된다

제 14 장 군사에 관한 군주의 임무

제 15 장 왜 군주는 찬양 받거나 비난 받는가

제 16 장 관대함과 인색함

제 17 장 잔인함과 인자함, 사랑받음과 두려움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서라도 ‘잔인하다’는 평판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 군주는 그 어떤 경우에도 증오는 사지 말아야 한다

제 18 장 군주가 지켜야 할 신의
군주는 사자의 용맹과 여우의 지혜를 갖춘 인간이어야 한다 / 군주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권위를 확립하고 보전해야 한다 /

제 19 장 경멸과 증오를 피하려면
군주는 신하들 앞에서 자신의 나약한 점을 보여주면 안 된다 / 신하들의 음모를 예방하려면 민중들에게서 호감을 사라 / 몰락한 로마황제들에게서 얻는 교훈 / 경멸과 증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데 성공한 세베루스 황제 / 영향력과 강력함을 갖춘 무리들로부터의 경멸을 자초한 황제들의 파멸 / 새로운 군주가 세베루스 황제와 마르쿠스 황제에게서 배워야 할 점 /

제 20 장 군주가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성채
민중을 신뢰해주면 그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 민중 간의 파벌싸움을 조장하는 것은 군주에게도 해롭다 / 적대적이던 인물에게서 더 큰 충성을 얻을 수 있다 / 군주에게 있어 가장 강력한 성체는 바로 민중이다 /

제 21 장 군주가 명성을 얻으려면
군주는 끊임없이 명성을 추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 군주는 자신의 입장을 명백히 할 때 존중 받는다 / 군주는 민중을 소중히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

제 22 장 군주의 측근 대신

제 23 장 아첨배들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제 24 장 무능한 이탈리아 군주들

제 25 장 운명과 신의 지배를 받는 인간사
상황에 따라 적극적으로 변화하는 자는 운명에 시달리지 않는다 / 운명의 주인이 되려는 자는 과감하게 행동하라 /

제 26 장 이탈리아를 해방시키기 위한 권고

작품해설 ① 근대정치학의 시조 마키아벨리
이상두 (전 시립대 교수)
1. 마키아벨리의 생애 / 2. 마키아벨리의 시대적정치적 상황 / 3. 마키아벨리의 저작 / 4. 마키아벨리의 이론 및 사상에 대한 평가

작품해설 ② 마키아벨리의 생애와 군주론
김경희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
1. 생애와 사상 / 2. 《군주론》에 대하여
Author
마키아벨리,이상두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자 탁월한 정치이론가. 이탈리아(피렌체)의 관료이자 외교관이자 군사 전략가였으나, 말년의 저술로 정치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서 몰락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기록은 많지 않은데, 변변치 않은 교육 환경에서 홀로 역사와 정치에 관한 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청년 시절에는 말직으로 근무하다가 서른 살이 되어서야 80인회의 사무국의 서기에 임명되었고, 능력을 인정받았는지 곧 10인군사위원회의 사무국장과 서기를 맡았다.

1492년 피렌체가 ‘위대한 로렌초(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사망으로 통치력 부재 상황을 맞았을 때, 마키아벨리는 공화국의 외교관으로서 국운이 풍전등화인 피렌체를 살려내려고 강대국 사이를 필사적으로 오갔고, 국제 정치의 민낯을 낱낱이 목격하며 ‘강한 군대, 강한 군주’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교황청에 사절로 파견갔다가 만난 발렌티노 공작(체사레 보르자)에게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해줄 강력한 신생군주의 역할을 기대했지만 체사레는 맥없이 병사해버렸다. 마키아벨리는 시민군 양성을 추진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메디치 가문이 군주로 돌아오자 공화국의 일꾼이었던 죄로 감옥에 갇혔다. 이후 특별사면을 받고 나와서 새 군주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필요한 경우에는 비도덕적인 수단도 행사해서 평화를 지키는 강력한 지도자가 되어라’는 조언을 담은 『군주론』을 썼다.

1506년에 피렌체 시민군의 조직을 계획하여 이듬해 9인위원회의 서기장이 되어 피렌체의 정복 전쟁에서 군대를 양성하는 책임을 맡았다. 1512년에 공직을 떠난 그는 산 카스치아노 근처의 저택에서 집필하며 루첼라이 가문의 소유인 오르티 오리첼라리 정원에서 여러 문인을 만났다. 이때 그는 메디치가의 요청을 받아 주로 통치론에 관한 글을 써 권력자들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그는 불우한 말년을 보내다 1527년에 사망했다.

대표 저서로는 『군주론』을 포함하여 『카스트루치오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결혼한 악마 벨파고르』, 『리비우스 역사 논고』, 『만드라골라』, 『우리나라의 언어에 관한 연구 또는 대화』, 『이탈리아 10년사: 1494~1504』, 『전술론』, 『카피톨리』, 『클리치아』, 『트리시노』, 『프랑스 사정기事情記』, 『피렌체 정부 개혁론』, 『피렌체사』, 『황금 나귀』, 『후회에 대한 권고』 등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자 탁월한 정치이론가. 이탈리아(피렌체)의 관료이자 외교관이자 군사 전략가였으나, 말년의 저술로 정치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서 몰락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기록은 많지 않은데, 변변치 않은 교육 환경에서 홀로 역사와 정치에 관한 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청년 시절에는 말직으로 근무하다가 서른 살이 되어서야 80인회의 사무국의 서기에 임명되었고, 능력을 인정받았는지 곧 10인군사위원회의 사무국장과 서기를 맡았다.

1492년 피렌체가 ‘위대한 로렌초(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사망으로 통치력 부재 상황을 맞았을 때, 마키아벨리는 공화국의 외교관으로서 국운이 풍전등화인 피렌체를 살려내려고 강대국 사이를 필사적으로 오갔고, 국제 정치의 민낯을 낱낱이 목격하며 ‘강한 군대, 강한 군주’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교황청에 사절로 파견갔다가 만난 발렌티노 공작(체사레 보르자)에게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해줄 강력한 신생군주의 역할을 기대했지만 체사레는 맥없이 병사해버렸다. 마키아벨리는 시민군 양성을 추진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메디치 가문이 군주로 돌아오자 공화국의 일꾼이었던 죄로 감옥에 갇혔다. 이후 특별사면을 받고 나와서 새 군주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필요한 경우에는 비도덕적인 수단도 행사해서 평화를 지키는 강력한 지도자가 되어라’는 조언을 담은 『군주론』을 썼다.

1506년에 피렌체 시민군의 조직을 계획하여 이듬해 9인위원회의 서기장이 되어 피렌체의 정복 전쟁에서 군대를 양성하는 책임을 맡았다. 1512년에 공직을 떠난 그는 산 카스치아노 근처의 저택에서 집필하며 루첼라이 가문의 소유인 오르티 오리첼라리 정원에서 여러 문인을 만났다. 이때 그는 메디치가의 요청을 받아 주로 통치론에 관한 글을 써 권력자들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그는 불우한 말년을 보내다 1527년에 사망했다.

대표 저서로는 『군주론』을 포함하여 『카스트루치오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결혼한 악마 벨파고르』, 『리비우스 역사 논고』, 『만드라골라』, 『우리나라의 언어에 관한 연구 또는 대화』, 『이탈리아 10년사: 1494~1504』, 『전술론』, 『카피톨리』, 『클리치아』, 『트리시노』, 『프랑스 사정기事情記』, 『피렌체 정부 개혁론』, 『피렌체사』, 『황금 나귀』, 『후회에 대한 권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