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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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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0/05/06
Pages/Weight/Size 130*200*30mm
ISBN 9788901107714
Categories 사회 정치 > 사회학
Description
지배계급으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전율케 하라.
프롤레타리아들이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밖에 없다.
그들이 얻을 것은 세계 전체이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노동계급에 보내는 혁명적 소환장이자 공산주의에 관한 최초의 문헌인 『공산당 선언』은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정치 이론서 중 하나이다. 4년간의 공동 작업 끝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계급도, 사유재산도, 국가도 없는 공산주의 사회사상에 대해 통찰력 있는 설명을 내놓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산업 노동자들에 대한 계속되는 착취는 결국에 자본주의가 붕괴하는 혁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선언은 수백만의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며 러시아, 중국, 쿠바, 동유럽의 정치 체계에 대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 『공산당 선언』은 자본주의와 계급에 대한 토론을 양산하며 계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념비적 저작으로 자리매김했다.

『공산당 선언』을,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 새롭게 그 의미를 정립해 볼 것을 제안한 개레스 스테드먼 존스의 「공산당 선언 서설」이 방대한 분량으로 선언 앞에 놓여 깊이 있는 해설을 제공한다.
Contents
『공산당 선언』 서설
1. 서론
2.『공산당 선언』의 수용
3. ‘공산주의라는 유령’
4. 공산주의자동맹
5. 엥겔스의 공헌
6. 마르크스의 공헌: 서언
7. 청년헤겔학파
8. 공화주의에서 공산주의로
9. 정치경제학과 ‘인간의 참된 자연사’
10. 슈티르너의 영향
11. 공산주의
12. 결론
13. 더 읽을거리 안내

공산당 선언
판본에 대하여
1872년 독일어 판 서문
1882년 러시아어 판 서문
1883년 독일어 판 서문
1888년 영어 판 서문
1890년 독일어 판 서문
1892년 폴란드어 판 서문
1893년 이탈리아어 판 서문

공산당 선언
1.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2.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
3.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문헌
I. 반동적 사회주의
(1) 봉건적 사회주의
(2) 소부르주아 사회주의
(3) 독일 사회주의 또는 ‘참된’ 사회주의
II. 보수적 사회주의 또는 부르주아적 사회주의
III. 비판적-유토피아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4. 현존하는 여러 반정부에 대한 공산주의자의 입장
주해
Author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권화현
독일의 철학자, 경제학자, 사회이론가. 정치평론가, 노동운동의 주역이자, 자본주의와 종교 비판가.
독일 라인란트의 트리어Trier에서 변호사인 칼 하인리히 마르크스의 9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1835년부터 본과 베를린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예나 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지만, 정치적인 성향으로 인해 교수직을 받지 못한다. 마르크스는 생계를 위해 1842년에 창간된 《라인 신문Rheinische Zeitung》의 편집장을 맡게 되었고, 이로써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급진적이고 비판적인 《라인 신문》은 곧 프로이센 정부의 검열정책에 의해 폐간당하고, 마르크스는 예니 폰 베스트팔렌과 결혼하여 파리로 이주하지만, 프랑스의 기조정권에 의해 추방당하고 벨기에로 향한다. 그는 1848년 벨기에에서 추방당한 후 독일의 라인란트로 돌아와 《신 라인 신문》을 창간하고 정치적 활동을 이어가지만, 1년 후 반란 선동죄로 법정에 서게 된다. 무죄선고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이미 프로이센의 시민권을 상실한 마르크스는 무국적자로서 라인란트에서 추방당하고 결국 프랑스를 거쳐 마지막 망명지인 영국에서 평생을 보내게 된다. 1861년에 《자본론 1》을 발표했고, 마르크스 사후에 엥겔스에 의해 그의 《자본론》이 완간되었다.
독일의 철학자, 경제학자, 사회이론가. 정치평론가, 노동운동의 주역이자, 자본주의와 종교 비판가.
독일 라인란트의 트리어Trier에서 변호사인 칼 하인리히 마르크스의 9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1835년부터 본과 베를린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예나 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지만, 정치적인 성향으로 인해 교수직을 받지 못한다. 마르크스는 생계를 위해 1842년에 창간된 《라인 신문Rheinische Zeitung》의 편집장을 맡게 되었고, 이로써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급진적이고 비판적인 《라인 신문》은 곧 프로이센 정부의 검열정책에 의해 폐간당하고, 마르크스는 예니 폰 베스트팔렌과 결혼하여 파리로 이주하지만, 프랑스의 기조정권에 의해 추방당하고 벨기에로 향한다. 그는 1848년 벨기에에서 추방당한 후 독일의 라인란트로 돌아와 《신 라인 신문》을 창간하고 정치적 활동을 이어가지만, 1년 후 반란 선동죄로 법정에 서게 된다. 무죄선고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이미 프로이센의 시민권을 상실한 마르크스는 무국적자로서 라인란트에서 추방당하고 결국 프랑스를 거쳐 마지막 망명지인 영국에서 평생을 보내게 된다. 1861년에 《자본론 1》을 발표했고, 마르크스 사후에 엥겔스에 의해 그의 《자본론》이 완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