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이 없는 책, 여행을 닮은 책, 누군가의 이야기를 묵묵히 전하는 책 사뭇, 즐거웠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힘들고 두려웠던 순간을 더 잘 기억한다고 하지만 어느 한 순간 그마저도 사라지는 기억의 진공 상태에 빠져들어간다. 체험으로, 몸으로 안다. 기억과 연계되었던 감정이 흐려질 대로 흐려져 더 이상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 내 기억이 진공 상태의 한 점을 지나고 있는 것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그 기억 속에서 묘하고 연한 즐거움의 표정이, 냄새가 흘러 나온다. 산화되어 검게 그을은 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