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 80년대 중반 농민·문화운동 결합
농민운동의 태동
가톨릭농민회의 투쟁
농민운동과 문화운동의 결합
한국 농민운동의 산 증인 정현찬 씨
4장 | 84년 학원자율화 투쟁
대학에 상주하던 사복경찰들
제적생 복교와 학원자율화 투쟁
총학생회 부활, 결국 85년으로
5장 | 85년 총학생회 부활과 학생운동
6장 | 87년 이전의 노동운동
일본인들에게 점령된 마산
지식인과 노동자들의 만남
현장에서 단련된 ‘학출’과 ‘노출’
문성현과 이석행 운명의 만남
7장 | 87년 이전의 지역 재야운동
허진수 씨, 부마항쟁 세대로 6월항쟁에도 참여
8장 | 87년 이전의 교육·여성운동
교육민주화운동
대학교수의 시국선언
여성운동
학생운동권 출신 조창래 교사
82년 Y중등교육자협 김용택 교사
9장 | ‘아부’와 ‘저항’으로 갈라진 문인들
문학운동
마당극 운동
대안언론 운동
10장 | 항쟁의 시작, 86년 투쟁
막 올린 민주헌법 쟁취투쟁
경남 4개 대학 연합 시위
공개 투쟁조직의 출범
겨울방학에도 계속된 투쟁
창원대 ‘지하 운동권’ 조재석씨
11장 | 박종철의 죽음과 2·7국민추모회
2·7 국민추도회로 항쟁 점화
지역언론의 눈물겨운 정권 옹호
12장 | 87년 3월에서 4·13까지 87년 3·4월의 언론보도
마산·창원·진주, 그리고 거창에서
진주 대아고 학생들의 고교민주화 투쟁
13장 | ‘4·13호헌’ 후 지역유지들은 뭘 했을까
항쟁 불타오르는데 꽃씨 뿌리기 행사?
반상회 열어 호헌조치 정당화 안간힘
총장들, 교수 시국선언 탄압 혈안
문인들 권력 아부성 결의문 채택
가든파티에다 룸살롱 폭탄주 파티까지
14장 | 6월 항쟁의 전운
줄 잇는 4·13호헌 규탄 집회
정권과 학교당국의 결탁
천주교 신부와 수녀들의 투쟁
학교당국의 또 다른 ‘꼼수’
15장 | 신부 목사 약사 교수 교사 문화인들의 참여
기독교 목사들 삭발·단식
약사와 대학교수·교사·문화인도 동참
16장 | “6·10 대회를 막아라”
6월초 ‘경남국본’ 결성
문교부의 치졸한 시위 저지 전략
내무·법무장관의 대국민 협박
대회 저지에 민간인까지 동원
17장 | 6·10 대회 막이 오르다
도내 각 대학 사전집회
진주·진해·거창에서도 독자 집회
아침부터 진해 6·10 시가행진이 벌어진 까닭
18장 | 6·10 대회의 주요 타격대상은?
국제축구경기 중단, 국내외 관심
알아서 기는 지역신문 보도
독재에 빌붙은 기관 집중 타격
19장 | 4·19 이후 진주 최대 시위…항쟁 재점화
공무원 6명이 농민 1명 감시
항쟁의 거점, 마산에서 진주로
4·19 이후 최대의 시위
진주시내는 ‘해방구’
20장 | 경찰 과잉진압이 부른 고속도로 점거
경남대 유장근 교수도 경찰에 연행
창원전문대생도 학내문제로 농성
15일 진주 시위에 놀란 경찰
사상 초유 고속도로 점거 시위
21장 | 세계를 놀라게 한 고속도로 가스차 탈취 시위
태도 달라지기 시작한 경남신문
경상대생의 가스차 탈취
마산·창원도 산발 시위 계속
전국 놀라게 한 가스차 탈취 충격
22장 | LPG가스차 위에서 횃불 들고 "죽자! 죽자!"
러닝셔츠로 횃불 만들어
경찰의 기습작전 배경은
전국 시위 격화 계기 제공
진주교대에서도 시위
23장 | ‘군부 개입설’… 긴장 속 6·26 총궐기 임박
진주교대·인제대·마산간전도 시위 동참
6·26 총궐기를 준비하다 전국 시위 격화 계기 제공
군부 개입 가능성 보도 눈길
24장 | 경남의 6·26 대행진
마산 2만, 진주 2만 거리 장악
진해·김해·거창에서도
경찰이 깡패들에게 얻어맞은 사연
25장 | 6·29선언 그 후
6·29 항복선언 직전 경찰의 폭력
이후에도 계속된 경찰의 폭력 진압
지역언론 민주화에 대한 열망
등장인물
Author
김주완
1987년 6월 전역과 함께 예비군복을 입은 채 6월항쟁에 참여했다. 문학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1990년 우연히 지역주간지 《남강신문》(현 진주신문)에서 기자로 일하게 됐다. 그러다 1991년 진주에서 일어난 한 시국사건이 전국 언론에 의해 완벽하게 왜곡되는 과정을 우연히 목격한다. 이를 계기로 평생 지역신문 기자로 살기로 마음먹는다. 1992년 《경남매일》에 입사, 1993년 노동조합 사무국장을 맡아 한 달 간의 전면파업을 주도했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경남도민일보》 창간 작업에 참여했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언론노조 경남도민일보 지부장과 부산·울산·경남언론노조협의회 의장으로 활동하면서 시민사회부와 자치행정부 기자로 살았다. 2005년 시민사회부장을 거쳐 자치행정부장, 편집국장, 출판미디어국장, 전무이사를 지냈다.
현재 블로그와 유튜브도 운영 중이다.
1987년 6월 전역과 함께 예비군복을 입은 채 6월항쟁에 참여했다. 문학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1990년 우연히 지역주간지 《남강신문》(현 진주신문)에서 기자로 일하게 됐다. 그러다 1991년 진주에서 일어난 한 시국사건이 전국 언론에 의해 완벽하게 왜곡되는 과정을 우연히 목격한다. 이를 계기로 평생 지역신문 기자로 살기로 마음먹는다. 1992년 《경남매일》에 입사, 1993년 노동조합 사무국장을 맡아 한 달 간의 전면파업을 주도했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경남도민일보》 창간 작업에 참여했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언론노조 경남도민일보 지부장과 부산·울산·경남언론노조협의회 의장으로 활동하면서 시민사회부와 자치행정부 기자로 살았다. 2005년 시민사회부장을 거쳐 자치행정부장, 편집국장, 출판미디어국장, 전무이사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