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경 8년

일제강점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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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9/05/18
Pages/Weight/Size 160*230*23mm
ISBN 9791188765461
Categories 사회 정치 > 언론학/미디어론
Description
일제강점기에서 해방공간까지 신문기자 및 문필가로서 왕성한 취재 및 시사 논평을 투고하였던 오기영 선생의 생전 단행본과 기고문 등을 모아 엮은 『동전 오기영 전집』 중 제6권으로 1928년부터 시작된 오기영의 기자 생활 시기에 작성한 칼럼을 모았다. 일종의 ‘유고집’이다. 이 책의 칼럼 및 기획 취재기들은 평양 특파원으로 지낸 8년 동안 쓴 것으로, 평양 및 인근 지역의 역사적 환경, 정치·사회적 분위기와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기독교의 도시라 할 평양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한편, 오기영이 체류하던 시기에 극성기를 이루던 고무공장 노동자파업 등 사회주의자들과 연결된 노동운동, 소작농들의 투쟁 등 농민운동, 수리조합 반대운동 등을 세세히 소개한다.

특히 모든 사건과 인물을 취재 외에 관찰기, 인물평, 시평, 여행기, 현안에 대한 개선책 등을 제시하였다. 또한 상번회와 상공협회, 고무직공 파업, 면옥쟁의, 근우회 등 평양의 사회단체와 그 활동 관련 기사와 칼럼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지역사회의 현안을 취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일종의 참여관찰자 입장에서 사안의 핵심과 문제점을 짚고 나름대로 개선책을 제안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가 그를 단지 젊은 사회면 신문기자에 머물지 않고 나름의 공신력을 가지고 평양 사회의 지도자들과 교류할 수 있게 해주었을 것이다. 또 6권 말미에 부록으로 이 전집의 숨은 주역들 중의 한 사람인 오기영의 형 오기만 관련 자료와 오기옥의 유일한 기고문, 오기영의 기고문 총목록 등을 수록하였다.
Contents
머리말
꽃 잃은 나비 / 새벽 날 / 지방논단 : 부협의회(府協議會) 개막 / 지방논단 : 북(北)금융조합 이사 인선 문제 / 지방논단 : 전조선축구대회를 보고 / 평양시화(平壤時話) : 잠견(蠶繭) 판매 문제 / 교육대회 관(觀) / 평양시화 : 공설시장 문제 외 / 지방논단 : 부민에 고함 / 평양시화 : 부(府) 당국에 부탁 외 / 지방논단 : 기림리 토지 매매 문제 / 평양시화 : 강연회를 보고 / 지방논단 : 상공협회의 출현을 보고 / 평양시화 : 물산장려와 오인(吾人) 외 / 지방논단 : 근우평양지회(槿友平壤支會)의 활동 / 평양시화 : 비밀회(秘密會)의 유행 외 / 평양시화 : 전기 부영(府營)과 부민(府民) 외 / 소회 : 고별에 대하여(상~하) / 지방논단 : 학생의 취체(取締) / 눈 소식은 벌써부터 국경의 겨울 준비 / 지방논단 : 국경 여객 취체(取締)에 대하여 / 신문소고(新聞小考)(1~10) / 지방논단 : 신의주의 진로 / 지방논단 : 교육기관을 증설하라 / 지방시화 : 지주(地主)와 가주(家主)들 / 지방시화 : 평양 3대 선전 / 지방논단 : 자살과 아사(餓死) / 국경 1년 수난기 / 평양만담 : 요정(料亭)의 신축 / 평양만담 : 근우지회관 낙성(洛城) / 평양만담 : 고무직공의 공장 자립 외 / 평양만담 : 적극적인 평양 / 평양만담 : 무성의한 위생대(衛生隊) / 지방논단 : 백 여사 찬하회(讚賀會) / 사람 : 조만식 씨의 이꼴저꼴 / 사람 : 철창 속의 백선행 / 평양시화 : 연합 발매(發賣)를 보고 / 지방논단 : 면옥쟁의에 대하여(상·하) / 지방논단 : 전기 예산의 원안 집행(상·중·하) / 지방논단 : 문제의 수리조합 / 평양시화 : 마작(麻雀)의 성행 / 젊은이의 마음 : 고민 / 지방논단 : 빈빈(頻頻)한 부정사건 / 지급전보 제1호 / 지방논단 : 격리병사 문제 / 매음제도론 : 기생제도 철폐 제 의견을 검토함 / ‘굿’을 묵인함은 민의를 존중함인가? : 평남도 평의원 제위에 일언 / 도시의 행진곡 : 평양 제1진 / 지방논단 : 금주무역회사(禁酒貿易會社) 발기 / 지방논단 : 내객(來客)의 첫 인상 / 평양시화 : 인정도서관과 평양 인사 외 / 평양시화 : 무소불위의 황금 / 평양시화 : 피의 교훈 / 지방논단 : 미신행위 타도 / 평양시화 : 빈발하는 교통사고 / 평양시화 : 학생 풍기 문제 외 / 평양시화 : 자생원에 서광 / 평양시화 : 평양의전생 형사 사칭 / 지방논단 : 대동고무 파업 문제 / 지방논단 : 대동고무에 여(與)함 / 조선 현대 인물 소개 : 조신성론 / 어린 때 첫 번 본 서울 인상기 : 전차 비강(飛降)타가 무릎 깬 이야기 / 신추만필(新秋漫筆)?7 : 명일(明日)에의 돌진 / 국제외교 비화, 구주대전(歐洲大戰) 전야 / 차화실(茶話室) : 의지의 모약자(耗弱者) / 극동 노령(露領)에 유태국(猶太國) 신건설 / 팔로춘색(八路春色) : 옛 생각은 잊어야 할까 / 류경(柳京) 8년(1~6) / 동인각제(同人各題) : 우울한 희열 / 동인각제 : 체병(病)의 신(新)증상 / 대동강에 남긴 추억 : 모래찜과 어죽놀이 / 법창비화(法窓悲話) : 어떤 살인죄수 / 시감(時感) : 가정과 교육 / 대구(對句) 이삼(二三) / 초하(初夏) 수필 : 초하에는 폭음(爆音)을 타고 / 가을 육제(六題) 기삼(其三) / 렌즈에 비친 가을의 표정 9 / 온천 순례 : 배천온천
부록
오기영 기고문 총목차 / 오기만 조서 번역문(1934년) / 오기만 공훈록 / 오기옥 양정고·경성제대 학적부 / 오기옥 기고문 / 전우익 회고글
Author
오기영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한 인물로, 동아일보 배천지국 수습사원으로 사회 첫발을 내딛어, 1928년 동아일보 평양지국 사회부기자가 되었다. 평양과 신의주를 오가며 사회부 기자 활동을 하는 동안 형 오기만의 국내 활동을 지원하고, 부인과 함께, 차례로 감옥을 들락날락하는 가족들의 옥바라지에 매진하였다. 일제 말엽에는 조선일보 특파원으로도 일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언론계에 복귀하지 않고, 경제 재건을 위해 경성전기주식회사에 투신하였다. 1946년부터 다시 ‘신천지’를 비롯한 잡지 언론에 투고하고, 1947년 12월 『민족의 비원』을 시작으로 『자유조국을 위하여』, 『사슬이 풀린 뒤』, 『삼면불』(이상 1948년) 등의 단행본을 발간하였다. 1949년, 더해만 가는 좌우익 갈등 상황에서, 중도주의자로서의 그의 주의주장과 우익 계열인 부친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좌익 계열로 분류되는 형과 동생의 이력 등이 빌미가 되어, 결국 월북하여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에서 활동한다. 50년대 말까지는 동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신문에 간간이 기고하였으며, 1958년에는 언론계에 복귀하여 <조국전선> 주필이 된다. 현재 1962년(54세)에 과학원 연구사로 활동한 기록이 최종 확인된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한 인물로, 동아일보 배천지국 수습사원으로 사회 첫발을 내딛어, 1928년 동아일보 평양지국 사회부기자가 되었다. 평양과 신의주를 오가며 사회부 기자 활동을 하는 동안 형 오기만의 국내 활동을 지원하고, 부인과 함께, 차례로 감옥을 들락날락하는 가족들의 옥바라지에 매진하였다. 일제 말엽에는 조선일보 특파원으로도 일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언론계에 복귀하지 않고, 경제 재건을 위해 경성전기주식회사에 투신하였다. 1946년부터 다시 ‘신천지’를 비롯한 잡지 언론에 투고하고, 1947년 12월 『민족의 비원』을 시작으로 『자유조국을 위하여』, 『사슬이 풀린 뒤』, 『삼면불』(이상 1948년) 등의 단행본을 발간하였다. 1949년, 더해만 가는 좌우익 갈등 상황에서, 중도주의자로서의 그의 주의주장과 우익 계열인 부친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좌익 계열로 분류되는 형과 동생의 이력 등이 빌미가 되어, 결국 월북하여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에서 활동한다. 50년대 말까지는 동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신문에 간간이 기고하였으며, 1958년에는 언론계에 복귀하여 <조국전선> 주필이 된다. 현재 1962년(54세)에 과학원 연구사로 활동한 기록이 최종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