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꽃이 핀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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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3/02/24
Pages/Weight/Size 128*188*30mm
ISBN 9791128891694
Categories 사회 정치 > 사회비평/비판
Description
1~9권은 화성외국인센터 한윤수 소장이 기록한 895편의 외국인 노동자 상담 사례이고 10권은 이에 대한 해설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이 책은 그들을 제대로 알기 위한 리얼한 생활 현장 이야기이고 삶에 관한 생생하고 진실한 최초의 기록이다. 외국인 200만 시대! 한국 사람들이 기피하는 3D 업종에서 경제의 근간을 떠받치는 그들,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노동 인력 부족을 겪고 있는 한국 사회는 산업현장뿐만 아니라 농어업에서도 이제 외국인 노동자들 없이 지탱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그들 삶에 관한 기록이 우리에겐 없다.
Contents
쌍고동 울릴까 봐
진짜 주치의
혹시 모르잖아요
스리 쿠션 방식
보안관 게리 쿠퍼
X월 4일생
백지 사인
이삭줍기
맞짱 뜰래요

장부 정리
끝내주는 대사관
아이젠 잘 갈았죠?
밥맛이 가다
호랑이 잡는 담비
편도 79만 원
속풀이 해장국
딴 데 가서 그러면 몰매 맞아
회사에 끌려다니면 일 못 해
네 멋대로 해라
새벽길 가기
출근표 사진 찍기
땅 투기
합법은 표가 나
그림자 인간이 된 퐁삭
계산속 밝은 남자
한 번만 더 술 먹고 오면
삼자 통역
7년 만의 귀향
어수룩한 길림시 동포들
회사 물건을 왜 버려?
잔치는 끝났다
티뷰론 몰기
합법만 비행기 타는 거 아니죠?
회사 이미지도 있는데7
함께 고독을 씹다
한 달 휴가
이래도 내가 통장 없는 거지냐?
캔 유 스피크 잉글리시?
그 통장 나 줄래?
억울한 과태료
친정 엄마의 부추 요리
가는 곳마다 망하는 회사
가을 뻐꾸기
1997년식 산타모
나는 더 방콕
딸네 집 다니러 온 충청도 아저씨
진실남 찾기
못 고치는 병
고향 가야죠!
배우 뺨치는 연기
동냥할 때 쓰는 세 가지 문장
전쟁 나도 스리랑카 안 돌아간다
한국말은 재산
목사처럼 안 생겼어요
융단 폭격
부부와 애인 구별법
가슴의 파스
맹꽁이 코를 눌러 봐
불법과 합법의 패싸움
통역 좀 빌려줘요
맘대로 하슈
기숙사 관리 수칙
네 각서는 못 믿어
공심채 휴가는 계속된다
기름챙이처럼 빠져나가네요
노무사 사야 해요
발안탱고
공무원이 된다고 하면 되는 거야
또또또 대포폰
부양가족만 20명
나만의 번지 없는 주막
앵벌이 문장 연습
속사정 들어 주는 집이 용한 점집이다
돌아온 외팔이
새벽의 황당한 저주
땀띠 때문에
메뚜기 기를 거예요
욕 해삐라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
산재 신청하는 법
태국의 고산족
셜록 홈스의 추리력
일본의 역습
심심해요?
하루 36시간 노동
동생은 조직원
홍삼엔스위트 아니면 안 돼요
빛이 밝아지는 세상이 오기를
괜히 사 온 붕어빵
1억 동의 벌금
옹박
택시 요금 50만 원
대화는 자신 있다
투 트랙 전략
마르세유의 택시 운전사
느린 사람이 낫다
전화번호까지 다 알아야 해?
통장 인쇄 신공
위장 결혼으로 오는 이유
초심을 찾아라
돈 버는 엄마
드라마로 배운 한국말
수완나품이 뭐죠?
몽골의 힘
장엄한 건물
너희가 전무 상무야
한윤수 할아버지와 상의하세요
왓포 마사지 숍
방문 비자로 일하기
뭐든지 깜박하는 덜렁쇠
나도 이름 바꿀까?
가짜 외국인 등록증
돈은 마누라 통장으로만
갈비 한 대의 값
귀곡산장
맨발의 남녀
한글 까막눈
안 죽은 게 다행이다
국민의 잠자리까지 챙기는 대사관
세차장의 한숨
합법적으로 돈 떼먹기
살리나스가 더 좋아
생일 없는 소년
땀꼭의 날라리
이 또한 부활이 아닌가!
유리창을 깬 남자
식충이와 여자 선교사
깡패 탤런트
김운경의 3대 비극
재계약한 다음에
꽝이여
나 홀로 병원에
지네 가루 두 봉지
콩나물을 보는 눈길
시나리오와 다른 결말
목련꽃 밑에서 찍은 사진
박틴의 미나리
세계 200대 대학 출신
너는 명함도 못 내미냐?
소쩍새 울던 날
제발 멀리 도망쳐
흔들리지 않는 명감독
절간에 살다
코가 깨진 7일 동안
간단한 매뉴얼도 없었다니
동티모르 노동자 발타자르
저혈압 방글라데시인
바버숍
커피 세례
잘했군 잘했어
Author
한윤수
1948년 충북 청주에서 출생,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연미복 입은 모습이 좋아 외교관을 꿈꿨지만 외교관 월급이 적어 품위 유지하려면 부잣집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꿈을 접었다. 29살에 출판사 ‘청년사’를 차려 『판초 빌라』, 『본회퍼』, 『산체스네 아이들』, 『여공 20년 후』 등의 논픽션을 출간했다. 1978년 이오덕 선생이 농촌 아이들의 글을 모와 와 시집 『일하는 아이들』과 산문집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로 출판했다. 1980년 야학을 하던 대학생들이 10대 노동자들의 글을 모아 와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 10대 근로자들의 일기와 생활담』으로 출간했다. 계엄령하였지만 책 못 내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무려 2만 부를 찍어 200여 곳 교회 청년회를 통해 뿌렸다. 나오자마자 책은 판금됐고, 청년 사장 한윤수는 도망자가 됐다. 그해 가을 세상이 잠잠해지자 있는 돈 없는 돈 쓸어 모아 글 쓴 노동자들에게 인세를 지급하고 함께 마지막으로 북한산 등반을 했다. 이 책은 1980년대에서 21세기 초까지 대학 및 노동계 운동권의 필독서가 됐고, 원본을 구할 수 없어 복사본이 돌아다닐 정도였다. ‘청년사’ 운영을 후배에게 넘기고 경기도 고양군에 들어가 농사를 짓다가 누가 치어(稚魚)도 대 주고, 크면 다 가져다 팔아 주겠다고 해서 가물치 양어장을 차렸지만 가물치의 생태에 대한 전문적 소양의 부족으로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빚이 늘어 갚을 요량으로 ‘형제출판사’를 열어 가족들 사이의 일을 적은 일기문들을 <고부일기 시리즈>로 내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무너진 가계는 도무지 회복이 안 됐고 1997년 IMF 사태로 결정타를 맞았다. 채무는 60억 원 가까이 늘어났다. 저당 잡혔던 친구들 집 12채도 다 넘어갈 뻔했지만 다행히 가물치 양어장 터가 삼송택지개발지구에 수용돼 그 보상금으로 원금을 갚았다. 그러나 생활비는커녕 아이들 교통비도 갖다주지 못한 상황에서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곤 교회에 가서 같이 앉아 주는 것밖에 없었다. 부인과 “1. 절대로 죽지 않는다. 2. 희망을 가진다”고 합의하고 빚쟁이들을 피해 전국 안 가 본 곳 없이 도망다니다가 결국 부인에게 너무나 미안해 결혼하고도 25년 동안이나 가지 않았던 교회에 1998년 2월 어느 날 제 발로 가겠다고 나섰다. 교회에 간 동기가 일차적으로는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에 있었지만, 실제로는 빚쟁이들을 피해 보자는 도피 심리가 더 컸다. 그나마 안전하겠지 했던 교회에까지 빚쟁이들이 쳐들어왔다. 크리스마스 날 빚쟁이들이 교회로 와서 노래 부르고 있는 그에게 ‘넌 빚을 지고선 즐겁게 노래가 나오냐’고 했다. 빚쟁이들한테 몰려 마지막으로 간 데가 신학교다. 2005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도사 생활을 시작하고 안산에 오게 되었다. 1년 정도 지나 ‘안산노동자센터’에서 연락이 왔고 그때 외국인 노동자들을 처음 봤다. 새카만 모습으로 와서 도와달라고 하는데 10대 노동자들 생각이 났다. 30년 전 그 애들의 얼굴이 겹쳤다. 맨날 돈 떼이고 두들겨 맞는 것이 똑같았다. 그런데 상담이 맘대로 안 되었다. 어느 날은 상담실이 컴퓨터 교육실이 되어버렸다. 아스팔트에 비치파라솔을 놓고 상담을 했다. 컴퓨터도 전화도 없고 상담일지도 없었다. 내 식대로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던 중 2007년 4월 목사 안수를 받고 한 달 뒤 아무 연고도 없이, 단지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장 많다는 이유로 경기도 화성시로 향했다. 2007년 6월 5일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를 세우고 무료 상담을 시작했다. 전국에서 가장 돈 잘 받아 주는 센터로 통했다. ‘인생은 60부터’, ‘다시 인생이 바뀌었다’면서 2008년 11월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 일명 ‘외국인 노동자 탐구생활’ 백서라고 할 수 있는 ‘오랑캐꽃’ 칼럼 연재를 시작했다. 현재까지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 대표로 있다.
1948년 충북 청주에서 출생,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연미복 입은 모습이 좋아 외교관을 꿈꿨지만 외교관 월급이 적어 품위 유지하려면 부잣집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꿈을 접었다. 29살에 출판사 ‘청년사’를 차려 『판초 빌라』, 『본회퍼』, 『산체스네 아이들』, 『여공 20년 후』 등의 논픽션을 출간했다. 1978년 이오덕 선생이 농촌 아이들의 글을 모와 와 시집 『일하는 아이들』과 산문집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로 출판했다. 1980년 야학을 하던 대학생들이 10대 노동자들의 글을 모아 와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 10대 근로자들의 일기와 생활담』으로 출간했다. 계엄령하였지만 책 못 내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무려 2만 부를 찍어 200여 곳 교회 청년회를 통해 뿌렸다. 나오자마자 책은 판금됐고, 청년 사장 한윤수는 도망자가 됐다. 그해 가을 세상이 잠잠해지자 있는 돈 없는 돈 쓸어 모아 글 쓴 노동자들에게 인세를 지급하고 함께 마지막으로 북한산 등반을 했다. 이 책은 1980년대에서 21세기 초까지 대학 및 노동계 운동권의 필독서가 됐고, 원본을 구할 수 없어 복사본이 돌아다닐 정도였다. ‘청년사’ 운영을 후배에게 넘기고 경기도 고양군에 들어가 농사를 짓다가 누가 치어(稚魚)도 대 주고, 크면 다 가져다 팔아 주겠다고 해서 가물치 양어장을 차렸지만 가물치의 생태에 대한 전문적 소양의 부족으로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빚이 늘어 갚을 요량으로 ‘형제출판사’를 열어 가족들 사이의 일을 적은 일기문들을 <고부일기 시리즈>로 내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무너진 가계는 도무지 회복이 안 됐고 1997년 IMF 사태로 결정타를 맞았다. 채무는 60억 원 가까이 늘어났다. 저당 잡혔던 친구들 집 12채도 다 넘어갈 뻔했지만 다행히 가물치 양어장 터가 삼송택지개발지구에 수용돼 그 보상금으로 원금을 갚았다. 그러나 생활비는커녕 아이들 교통비도 갖다주지 못한 상황에서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곤 교회에 가서 같이 앉아 주는 것밖에 없었다. 부인과 “1. 절대로 죽지 않는다. 2. 희망을 가진다”고 합의하고 빚쟁이들을 피해 전국 안 가 본 곳 없이 도망다니다가 결국 부인에게 너무나 미안해 결혼하고도 25년 동안이나 가지 않았던 교회에 1998년 2월 어느 날 제 발로 가겠다고 나섰다. 교회에 간 동기가 일차적으로는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에 있었지만, 실제로는 빚쟁이들을 피해 보자는 도피 심리가 더 컸다. 그나마 안전하겠지 했던 교회에까지 빚쟁이들이 쳐들어왔다. 크리스마스 날 빚쟁이들이 교회로 와서 노래 부르고 있는 그에게 ‘넌 빚을 지고선 즐겁게 노래가 나오냐’고 했다. 빚쟁이들한테 몰려 마지막으로 간 데가 신학교다. 2005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도사 생활을 시작하고 안산에 오게 되었다. 1년 정도 지나 ‘안산노동자센터’에서 연락이 왔고 그때 외국인 노동자들을 처음 봤다. 새카만 모습으로 와서 도와달라고 하는데 10대 노동자들 생각이 났다. 30년 전 그 애들의 얼굴이 겹쳤다. 맨날 돈 떼이고 두들겨 맞는 것이 똑같았다. 그런데 상담이 맘대로 안 되었다. 어느 날은 상담실이 컴퓨터 교육실이 되어버렸다. 아스팔트에 비치파라솔을 놓고 상담을 했다. 컴퓨터도 전화도 없고 상담일지도 없었다. 내 식대로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던 중 2007년 4월 목사 안수를 받고 한 달 뒤 아무 연고도 없이, 단지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장 많다는 이유로 경기도 화성시로 향했다. 2007년 6월 5일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를 세우고 무료 상담을 시작했다. 전국에서 가장 돈 잘 받아 주는 센터로 통했다. ‘인생은 60부터’, ‘다시 인생이 바뀌었다’면서 2008년 11월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 일명 ‘외국인 노동자 탐구생활’ 백서라고 할 수 있는 ‘오랑캐꽃’ 칼럼 연재를 시작했다. 현재까지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 대표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