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산로드 7000km

의열단 100년, 약산 김원봉 추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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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9/08/29
Pages/Weight/Size 140*210*30mm
ISBN 9791157831579
Categories 역사
Description
의열단 창립 100주년, 이제 약산 김원봉을 만나라!

약산 김원봉. 백범 김구보다 현상금이 컸던 유일한 독립운동가. 일제가 두려워했던 의열단 의백 김원봉이 연일 화제다. 의열단 100주년을 맞이해 소설과 드라마로 재조명됐지만, 그의 이름만 유명해졌을 뿐, 그가 누구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영화 '암살', '밀정'과 드라마 '이몽'처럼 단편적인 모습 말고 우리는 약산 김원봉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리고 왜 우리는 지금 약산 김원봉을 알아야 할까?

『약산로드 7000km』는 독립운동 역사기행 전문가인 『임정로드 4000km』의 김종훈 기자가 서울을 시작으로 밀양·지린·베이징·상하이·난징·우한·광저우·치장·충칭·평양까지 약산과 의열단의 발자취를 직접 발로 걸으며 생생한 현장으로 안내하는 국내 최초 김원봉 역사기행 가이드이다. 김원봉과 윤세주 등이 나고 자란 밀양에서부터 의열단이 탄생한 ‘지린 광화로 57호’, 단재 신채호를 만나 의열단의 정신을 완성한 ‘베이징 초두호동’, 조선의용대를 창립한 우한 등 한국과 중국 곳곳에 남아있는 약산의 흔적을 따라가면 우리가 몰랐던 또 한 명의 ‘코리안 어벤져스’를 마주하는 가슴 뜨거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Contents
추천사
프롤로그
약산로드, 이렇게 준비하자
약산로드 추천코스

1부 서울 - 의열단 100년, 친일의 그림자는 여전하다

01 국립서울현충원 - 항일과 친일이 함께 잠든 곳
02 수도청과 중부경찰서 - 독립운동의 거두가 모욕당한 치욕의 장소
“나경원 선 넘었다……. 친일경찰 노덕술과 뭐가 다르냐”

2부 밀양 - 의열의 도시, 그러나 아직은 고개를 들 수 없다

01 약산 생가 터에 세워진 의열기념관
02 일장기를 똥통에 버리고 의열 정신을 키우다 - 밀양보통학교와 동화중학교
03 의열투쟁을 기록하다 - 밀양 독립기념관
04 떼 하나 서지 않는 땅 - 독립운동가 박차정 여사의 묘
“먹고 살려고……. 1급 친일파 기념관 짓겠다는 밀양시”

3부 지린 - 1919년 11월 10일 의열단이 탄생하다

01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의열단이건만 - 의열단 창립지
“의열단 창단멤버, 10명인가, 13명인가?”
02 만보산 사건과 조선일보 김이삼의 죽음 - 만보산 사건 발생지
03 김일성이 지린에 남긴 흔적들 - 육문중학과 북산공원
“친일파 백선엽이 전쟁영웅? 100세 생존 독립운동가의 일갈”
04 남북에서 모두 존경받는 손정도가 지린에 남긴 흔적들 - 손정도 목사의 교회 터

4부 베이징 - 우리는 기억한다. 그들이 걸었던 그곳을

01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 베이징 의열단 본부(통신소) - 외교부대가
“상남자 김익상이 그립다, 조선총독부 폭탄 의거 주인공”
02 베이징에서 만난 의열단원 김산의 흔적 - 협화병원과 자금성 인근 김산 거주지
03 약산, 단재를 찾다 - 초두호동 거주지
“베이징에 남은 단재의 흔적들”
04 독립운동가 이육사의 마지막 기록 - 베이징 동창후통 28호
05 한 동네에 살던 지사와 밀정 - 이회영과 김달하
06 약산은 왜 ‘레닌’에 물들었을까 - 레닌주의정치학교 터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한 사람 이태준, 약산에게 헝가리인 마자알을 보내다.”

5부 상하이 - 의열단이 와이탄에 남긴 희망과 좌절

01 중국에서 야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
“[조선혁명선언]이 상하이에서 탄생한 이유, 우리가 잘 몰랐던 의열단원 류자명의 노고”

6부 난징 - 김시현, 윤세주, 정율성 그리고 이육사, 우리가 잘 몰랐던 의열단원들

01 다시 오른 천녕사, 그곳을 찾는 사람들 - ‘일본의 개가 되느니 목숨을 걸겠다’
“우리에게 더 알려져야 할 의열단원 김시현 그리고 김지섭”
02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금릉대학’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03 김원봉은 어디에 살았을까? ‘호가화원’ 거주지

7부 광저우 - 화합과 비극의 장소, 그럼에도 약산은 나아갔다

01 황포군관학교에 남은 약산의 진짜 기록
02 조선인 가이드를 울게 한 곳, 기의열사능원

8부 우한·구이린 - 중국이 기억하는 우리의 군대, 조선의용대

01 조선의용대 창립지 그리고 기념축하장소
“조선의용대 성립 경축행사, 왜 10월 13일에 진행했나?”
02 자주독립을 위해서, 하나로 뜻을 모으다, 조선민족전선연맹과 최창익의 조선청년전위동맹
03 팔로군 기념관에서 만난 약산과 조선의용대
04 우한 국민정부 청사와 적경리 위안소
“우한 신해혁명기념관 그리고 황학루와 백운정, 악비동상”
05 구이린, 우한에서 물러난 약산과 조선의용대
“치장에서 쏘아올린 약산과 백범의 공개통신”

9부 충칭 - 해방의 감동, 일장춘몽은 아무도 상상하지 않았다

01 박차정 지사 순국지 (약산 김원봉 충칭 거주지) / 고난과 고난의 연속
02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화지 청사 / 약산에 관한 기록, 사리지고 만들어지다
03 복원된 광복군 사령부, 결코 웃지 못했던 애증의 장소
“김약산, 고국으로 돌아오다”

10부 평양 - 약산이 죽는 순간까지 놓지 않았던 직책 하나

01 월북 이후의 약산, 그리고 현재
"독립군 살육 백선엽이 국군 아버지? 현충원 안장 안 돼"

에필로그
1년간의 추적: 감사의 말
Author
김종훈
[오마이뉴스] 기자. 뒤늦게 약산 김원봉의 진실을 알게 돼 깊이 빠져들었다. 이후로 임시정부를 연구하며 약산 김원봉도 함께 살폈다. 지난해 로드다큐 [임정]을 제작하고 [임정로드 4000km]를 집필했다. 과정에서 약산 김원봉이 걸었던 그 길도 함께 추적했다. 2019년 의열단 창립 100주년을 맞아 대내외로 약산을 더 깊이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이는 곧 직장인으로서 모든 휴가와 자금을 쏟아부어 약산 김원봉을 추적한다는 의미, 약산의 고향 밀양을 시작으로 지린과 베이징, 우한, 상하이, 충칭, 광저우 등지에서 약산의 걸음을 자세히 살폈다. 지금은 서울 한복판을 걸으면서도 약산을 생각하는 정도다. [약산로드 7000km]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다.

약산을 깊이 새기기 전까지는 평범했다. 초여름에 태어나,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4년 동안 장교로 군 생활을 했다. 이후 30개월 동안 세계를 돌며 20대를 보냈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와 필리핀, 호주 등에서 고생을 했다. 서른이 다 돼 한국에 돌아와 비정규직 영어 강사로 일하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와 인턴기자를 거쳐,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에서 방송기자로 활약했다. 이후엔 다시 고향 같은 [오마이뉴스]로 돌아와 현재는 사회부 취재 기자로 일한다. 노동이 주 파트이지만 요령껏 독립운동사와 친일파 추적을 병행한다. 앞으로의 행보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귀한 사람들과 함께 약산 김원봉과 의열단원 윤세주, 김시현, 김익상, 김상옥 등 지사들의 이야기를 계속 기록하고 싶다.
[오마이뉴스] 기자. 뒤늦게 약산 김원봉의 진실을 알게 돼 깊이 빠져들었다. 이후로 임시정부를 연구하며 약산 김원봉도 함께 살폈다. 지난해 로드다큐 [임정]을 제작하고 [임정로드 4000km]를 집필했다. 과정에서 약산 김원봉이 걸었던 그 길도 함께 추적했다. 2019년 의열단 창립 100주년을 맞아 대내외로 약산을 더 깊이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이는 곧 직장인으로서 모든 휴가와 자금을 쏟아부어 약산 김원봉을 추적한다는 의미, 약산의 고향 밀양을 시작으로 지린과 베이징, 우한, 상하이, 충칭, 광저우 등지에서 약산의 걸음을 자세히 살폈다. 지금은 서울 한복판을 걸으면서도 약산을 생각하는 정도다. [약산로드 7000km]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다.

약산을 깊이 새기기 전까지는 평범했다. 초여름에 태어나,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4년 동안 장교로 군 생활을 했다. 이후 30개월 동안 세계를 돌며 20대를 보냈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와 필리핀, 호주 등에서 고생을 했다. 서른이 다 돼 한국에 돌아와 비정규직 영어 강사로 일하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와 인턴기자를 거쳐,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에서 방송기자로 활약했다. 이후엔 다시 고향 같은 [오마이뉴스]로 돌아와 현재는 사회부 취재 기자로 일한다. 노동이 주 파트이지만 요령껏 독립운동사와 친일파 추적을 병행한다. 앞으로의 행보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귀한 사람들과 함께 약산 김원봉과 의열단원 윤세주, 김시현, 김익상, 김상옥 등 지사들의 이야기를 계속 기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