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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와 융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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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115920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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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8/10/20
Pages/Weight/Size 152*225*30mm
ISBN 9791159200755
Description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칼 융이 서로 만나 결별하기까지 남긴 분석적 기록!

심리학 역사상 가장 두드러진 인물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칼 융이 주고받은 편지를 모았다. 1906년부터 1914년까지 두 사람 사이에 오간 편지는 대략 360통 정도인데, 이 중 200통을 요약 정리했다. 프로이트와 융은 서신을 통해 이론이나 심리 치료 방법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무의식과 종교적 경험, 초심리학적 경험, 개인 가정사까지 폭넓게 대화한다.

두 사람이 편지에서 강조하듯, 정신분석에는 정직함이 아주 중요한데도 편지를 읽다 보면 그들의 내면 깊은 곳에서 기만이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프로이트와 융의 관계를 연구한 자료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몇 가지 있다. 칼 융의 회고에 따르면, 융이 1907년에 프로이트를 처음 방문했을 때 프로이트의 처제가 그에게 프로이트와의 애정 관계를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융은 이후로 프로이트에게 이에 대한 이야기를 절대로 하지 않았으며, 어쩌면 이때부터 이미 두 사람 사이에 결별의 씨앗이 뿌려졌는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1909년에 미국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 서로를 분석하는 상황에도 이런 기만이 영향을 미치게 된다. 프로이트의 꿈에서 삼각관계를 말해주는 자료가 나오는데도 프로이트가 그런 사실을 밝히지 않자, 분석이 그만 도중에 흐지부지 끝나고 만다.

*프로이트가 융이 유대인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다고 의심했고 *융이 여자 환자와 애정 관계를 맺었고 *융의 부인 엠마 융이 남편 몰래 프로이트와 융의 관계 회복을 위해 페렌치 샨도르와 프로이트와 서신을 주고받다가 결국엔 칼 융에게 탄로 났고 *프로이트가 1912년 5월에 융의 집에서 겨우 40마일 밖에 떨어지지 않은 크로이츠링엔으로 가면서도 융을 만나지 않았고 *프로이트가 1912년 여름에 측근을 중심으로 모임을 조직하면서 융에게 비밀로 했고 *프로이트가 융에게 동성애 감정을 느낀 것 같은데 칼 융은 어린 시절에 동성에 성적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서 읽으면, 재능이 탁월한 ‘아버지’와 역시 재능이 탁월한 ‘아들’ 사이의 갈등이 더 생생하게 다가올 것이다.

두 사람의 결별은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일이었을지 몰라도 두 사람이 더욱 발전하는 계기로 작용했기 때문에 인류의 발전에는 오히려 행운으로 작용한 것 같다.

1896년 '정신분석'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소개함으로 정신분석학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 인간 정신의 탐구자이다. 그는 현대 사상에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을 가져온 위대한 사상가로서 무의식 세계를 개척하여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20세기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고 있다.

1856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모라비아 프라이베르크에서 태어난 프로이트는 신경 해부학, 신경 생리학 분야에서 놀라운 업적을 쌓으면서 그의 연구 활동을 시작하였다. 1873년 빈 의과대학에서 생리학을 전공했던 그의 삶은 1885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면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프로이트는 그곳에서 히스테리 환자들을 치료하며 심리와 신체 관계의 문제를 파고들기 시작했고, 이를 토대로 1896년에 ‘정신분석’이라는 이론을 정립한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신경증 환자들의 정신을 탐구하면서 그들을 치료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곧 정신분석학은 건강하건 병들었건 관계없이 정신 전반에 관한 지식을 탐구하는 매개 학문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어린 시절의 정상적인 성적 발달 단계를 설명하고, 주로 꿈의 해석에 근거를 두어 인간의 일상적인 생각과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적인 힘들을 발견해 냈다. 그는 인간의 정신을 분석하기 위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도구를 최초로 찾아낸 사람이다. 1938년 나치의 탄압을 피해 런던으로 망명했던 그는 1923년에 얻은 구강암이 재발하여,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1989년 9월 23일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