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꽃이 핀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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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3/02/24
Pages/Weight/Size 128*188*30mm
ISBN 9791128891656
Categories 사회 정치 > 사회비평/비판
Description
1~9권은 화성외국인센터 한윤수 소장이 기록한 895편의 외국인 노동자 상담 사례이고 10권은 이에 대한 해설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이 책은 그들을 제대로 알기 위한 리얼한 생활 현장 이야기이고 삶에 관한 생생하고 진실한 최초의 기록이다. 외국인 200만 시대! 한국 사람들이 기피하는 3D 업종에서 경제의 근간을 떠받치는 그들,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노동 인력 부족을 겪고 있는 한국 사회는 산업현장뿐만 아니라 농어업에서도 이제 외국인 노동자들 없이 지탱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그들 삶에 관한 기록이 우리에겐 없다.
Contents
노예 계약 I, 국가 브랜드에 멍이 든다
제다이는 아무것도 못 받아요?
리챠드를 재고용하려면?
스리랑카인 디네쉬, 아내 때문에
베트남 사람이 무서운 이유
철심 3개 박은 기안의 손
8년 거주한 파키스탄인의 신원 보증
태국인이 광주은행 양재지점 가기
루이와 기엔 부부의 피임
무시키 어머니의 진단서
치라운이 받을 200만 원
베트남 여성, 코피 또 나게 생겼다
돈 정말 없어
사장님이 매달 2만 원 뜯어 가다
한국 남자를 뭘로 보고!
외국인을 끌어당기는 한 사람
녹취 비용 10만 원 투자해 600만 원 받다

우락부락한 프라팁, 멋진 놈
미라의 잔꾀
14개월을 끈 수파조 재판
오토바이 질주의 결과
이름 모를 그 공무원 덕분에
투이와 함께한 기나긴 하루
역사를 바꿀 VIP
삼성만 줄 거야
랑선 사람들 센터 점령
저것들 짜고 치는구나
기름 만땅 채우고 천천히
위로금과 퇴직금 사이
5월인 것 같아요
티라랏에게 필요한 건 직권 이동
신원을 감춘다고 되나
전봇대 같은 베트남 사내
태국의 ‘무서운 놈들’
수피아의 새빨간 거짓말
시왓의 신장 결석
속이 뒤집히는 타와차이
환치기상을 믿어?
사콘을 우습게 보면 안 돼
총각 A와 처녀 B가 할 수 있는 건?
한 장 더 써서 600만 원
한글학교, 2년 4개월 만에 문 닫다
귀하디귀한 태국어 통역
입을 여는 자 퇴직금 받는다
재입국한 제롬, 퇴직금이여 안녕
이빨 무료 치료해 드립니다
외국인들의 분리수거
피리 부는 사나이, 멋졌다
시골 남자 호안 전 재산 사기 당하다
퇴직금 사수를 위한 가접수 묘책
산업연수생 I, 줄줄이 바보 사탕
산업연수생 II, 안 되는 일이 어딨니?
10만 원 상품권의 주인공은?
사장님의 벌금 I, 덤터기 쓴 싱캄
사장님의 벌금 II, 아무리 순진하다지만
1호 자원봉사자 K 양 이야기
청소 I, 공포의 사모님
청소 II, 자진 퇴사
사적인 문제는 못 도와줘
태국 대사관 본받아라
26년 짧은 생을 마친 유리
30년 전 어린 노동자들
간단하고 멋없는 홈페이지
의심쟁이도 쓸 데가 있다
센터의 투명한 회계 공개
국민연금공단 웹사이트 검색하는 태국인
피아 사례 관련자들의 인권 의식
보건소 말수 언니의 헌신
솜퐁의 위임장, <옥이 이모> 경자의 위임장
체불 임금 하루에 100만 원씩 받아 주기
최장 2년 3일 만에 받아 낸 돈
베트남에서 만난 청년의 인사
충청도 사람이 사기 사건을 처리하는 방법
사장님을 고발한 사모님
천지삐까리로 오는 전화
발안에 외국인이 몰리는 이유
친절을 바라는 건 무리데쓰
일곱 번의 구타
Author
한윤수
1948년 충북 청주에서 출생,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연미복 입은 모습이 좋아 외교관을 꿈꿨지만 외교관 월급이 적어 품위 유지하려면 부잣집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꿈을 접었다. 29살에 출판사 ‘청년사’를 차려 『판초 빌라』, 『본회퍼』, 『산체스네 아이들』, 『여공 20년 후』 등의 논픽션을 출간했다. 1978년 이오덕 선생이 농촌 아이들의 글을 모와 와 시집 『일하는 아이들』과 산문집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로 출판했다. 1980년 야학을 하던 대학생들이 10대 노동자들의 글을 모아 와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 10대 근로자들의 일기와 생활담』으로 출간했다. 계엄령하였지만 책 못 내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무려 2만 부를 찍어 200여 곳 교회 청년회를 통해 뿌렸다. 나오자마자 책은 판금됐고, 청년 사장 한윤수는 도망자가 됐다. 그해 가을 세상이 잠잠해지자 있는 돈 없는 돈 쓸어 모아 글 쓴 노동자들에게 인세를 지급하고 함께 마지막으로 북한산 등반을 했다. 이 책은 1980년대에서 21세기 초까지 대학 및 노동계 운동권의 필독서가 됐고, 원본을 구할 수 없어 복사본이 돌아다닐 정도였다. ‘청년사’ 운영을 후배에게 넘기고 경기도 고양군에 들어가 농사를 짓다가 누가 치어(稚魚)도 대 주고, 크면 다 가져다 팔아 주겠다고 해서 가물치 양어장을 차렸지만 가물치의 생태에 대한 전문적 소양의 부족으로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빚이 늘어 갚을 요량으로 ‘형제출판사’를 열어 가족들 사이의 일을 적은 일기문들을 <고부일기 시리즈>로 내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무너진 가계는 도무지 회복이 안 됐고 1997년 IMF 사태로 결정타를 맞았다. 채무는 60억 원 가까이 늘어났다. 저당 잡혔던 친구들 집 12채도 다 넘어갈 뻔했지만 다행히 가물치 양어장 터가 삼송택지개발지구에 수용돼 그 보상금으로 원금을 갚았다. 그러나 생활비는커녕 아이들 교통비도 갖다주지 못한 상황에서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곤 교회에 가서 같이 앉아 주는 것밖에 없었다. 부인과 “1. 절대로 죽지 않는다. 2. 희망을 가진다”고 합의하고 빚쟁이들을 피해 전국 안 가 본 곳 없이 도망다니다가 결국 부인에게 너무나 미안해 결혼하고도 25년 동안이나 가지 않았던 교회에 1998년 2월 어느 날 제 발로 가겠다고 나섰다. 교회에 간 동기가 일차적으로는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에 있었지만, 실제로는 빚쟁이들을 피해 보자는 도피 심리가 더 컸다. 그나마 안전하겠지 했던 교회에까지 빚쟁이들이 쳐들어왔다. 크리스마스 날 빚쟁이들이 교회로 와서 노래 부르고 있는 그에게 ‘넌 빚을 지고선 즐겁게 노래가 나오냐’고 했다. 빚쟁이들한테 몰려 마지막으로 간 데가 신학교다. 2005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도사 생활을 시작하고 안산에 오게 되었다. 1년 정도 지나 ‘안산노동자센터’에서 연락이 왔고 그때 외국인 노동자들을 처음 봤다. 새카만 모습으로 와서 도와달라고 하는데 10대 노동자들 생각이 났다. 30년 전 그 애들의 얼굴이 겹쳤다. 맨날 돈 떼이고 두들겨 맞는 것이 똑같았다. 그런데 상담이 맘대로 안 되었다. 어느 날은 상담실이 컴퓨터 교육실이 되어버렸다. 아스팔트에 비치파라솔을 놓고 상담을 했다. 컴퓨터도 전화도 없고 상담일지도 없었다. 내 식대로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던 중 2007년 4월 목사 안수를 받고 한 달 뒤 아무 연고도 없이, 단지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장 많다는 이유로 경기도 화성시로 향했다. 2007년 6월 5일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를 세우고 무료 상담을 시작했다. 전국에서 가장 돈 잘 받아 주는 센터로 통했다. ‘인생은 60부터’, ‘다시 인생이 바뀌었다’면서 2008년 11월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 일명 ‘외국인 노동자 탐구생활’ 백서라고 할 수 있는 ‘오랑캐꽃’ 칼럼 연재를 시작했다. 현재까지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 대표로 있다.
1948년 충북 청주에서 출생,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연미복 입은 모습이 좋아 외교관을 꿈꿨지만 외교관 월급이 적어 품위 유지하려면 부잣집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꿈을 접었다. 29살에 출판사 ‘청년사’를 차려 『판초 빌라』, 『본회퍼』, 『산체스네 아이들』, 『여공 20년 후』 등의 논픽션을 출간했다. 1978년 이오덕 선생이 농촌 아이들의 글을 모와 와 시집 『일하는 아이들』과 산문집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로 출판했다. 1980년 야학을 하던 대학생들이 10대 노동자들의 글을 모아 와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 10대 근로자들의 일기와 생활담』으로 출간했다. 계엄령하였지만 책 못 내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무려 2만 부를 찍어 200여 곳 교회 청년회를 통해 뿌렸다. 나오자마자 책은 판금됐고, 청년 사장 한윤수는 도망자가 됐다. 그해 가을 세상이 잠잠해지자 있는 돈 없는 돈 쓸어 모아 글 쓴 노동자들에게 인세를 지급하고 함께 마지막으로 북한산 등반을 했다. 이 책은 1980년대에서 21세기 초까지 대학 및 노동계 운동권의 필독서가 됐고, 원본을 구할 수 없어 복사본이 돌아다닐 정도였다. ‘청년사’ 운영을 후배에게 넘기고 경기도 고양군에 들어가 농사를 짓다가 누가 치어(稚魚)도 대 주고, 크면 다 가져다 팔아 주겠다고 해서 가물치 양어장을 차렸지만 가물치의 생태에 대한 전문적 소양의 부족으로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빚이 늘어 갚을 요량으로 ‘형제출판사’를 열어 가족들 사이의 일을 적은 일기문들을 <고부일기 시리즈>로 내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무너진 가계는 도무지 회복이 안 됐고 1997년 IMF 사태로 결정타를 맞았다. 채무는 60억 원 가까이 늘어났다. 저당 잡혔던 친구들 집 12채도 다 넘어갈 뻔했지만 다행히 가물치 양어장 터가 삼송택지개발지구에 수용돼 그 보상금으로 원금을 갚았다. 그러나 생활비는커녕 아이들 교통비도 갖다주지 못한 상황에서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곤 교회에 가서 같이 앉아 주는 것밖에 없었다. 부인과 “1. 절대로 죽지 않는다. 2. 희망을 가진다”고 합의하고 빚쟁이들을 피해 전국 안 가 본 곳 없이 도망다니다가 결국 부인에게 너무나 미안해 결혼하고도 25년 동안이나 가지 않았던 교회에 1998년 2월 어느 날 제 발로 가겠다고 나섰다. 교회에 간 동기가 일차적으로는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에 있었지만, 실제로는 빚쟁이들을 피해 보자는 도피 심리가 더 컸다. 그나마 안전하겠지 했던 교회에까지 빚쟁이들이 쳐들어왔다. 크리스마스 날 빚쟁이들이 교회로 와서 노래 부르고 있는 그에게 ‘넌 빚을 지고선 즐겁게 노래가 나오냐’고 했다. 빚쟁이들한테 몰려 마지막으로 간 데가 신학교다. 2005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도사 생활을 시작하고 안산에 오게 되었다. 1년 정도 지나 ‘안산노동자센터’에서 연락이 왔고 그때 외국인 노동자들을 처음 봤다. 새카만 모습으로 와서 도와달라고 하는데 10대 노동자들 생각이 났다. 30년 전 그 애들의 얼굴이 겹쳤다. 맨날 돈 떼이고 두들겨 맞는 것이 똑같았다. 그런데 상담이 맘대로 안 되었다. 어느 날은 상담실이 컴퓨터 교육실이 되어버렸다. 아스팔트에 비치파라솔을 놓고 상담을 했다. 컴퓨터도 전화도 없고 상담일지도 없었다. 내 식대로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던 중 2007년 4월 목사 안수를 받고 한 달 뒤 아무 연고도 없이, 단지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장 많다는 이유로 경기도 화성시로 향했다. 2007년 6월 5일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를 세우고 무료 상담을 시작했다. 전국에서 가장 돈 잘 받아 주는 센터로 통했다. ‘인생은 60부터’, ‘다시 인생이 바뀌었다’면서 2008년 11월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 일명 ‘외국인 노동자 탐구생활’ 백서라고 할 수 있는 ‘오랑캐꽃’ 칼럼 연재를 시작했다. 현재까지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 대표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