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문 임성주(任聖周)는 함흥 판관을 지낸 노은(老隱) 임적(任適)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 임명주(任命周), 동생 청천(靑川) 임경주(任敬周), 운호(雲湖) 임정주(任靖周), 여동생 윤지당(允摯堂)은 모두 이름난 성리학자이다. 특히나 윤지당은 여성 성리학자로, 가정에서 여성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면서도 심성을 수양하고 성리학의 이치를 터득하여 조선시대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문 삶을 지향하였다. 이들 가족은 모두 학문에 열정적이었고, 경사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며 서로 발전해 나갔다. 이러한 과정과 내용들은 모두 각자의 문집에 잘 담겨 있다. 녹문은 성리학사에서 서경덕, 이황, 이이, 기정진, 이진상과 함께 ‘조선 성리학 6대가’로 불리지만, 난해한 문집이 번역되지 않아 연구자들의 접근이 어려웠는데 이번 번역서 출간을 계기로 그에 대한 연구가 심도 있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녹문집 제16권
잡저雜著
경의 經義
대학 신축년 大學 辛丑 · 365
경 1장 經一章 · 365
전 수장 傳首章 · 391
전 2장 傳二章 · 392
전 3장 傳三章 · 395
보망장 補亡章 · 401
전 6장 傳六章 · 407
전 7장 傳七章 · 421
전 8장 傳八章 · 427
전 9장 傳九章 · 428
전 10장 傳十章 · 429
Author
임성주,이상현
1711년(숙종37)~1788년(정조12). 조선 후기의 학자로, 본관은 풍천(?川), 자는 중사(仲思), 호는 녹문(鹿門)이다. 도암(陶庵) 이재(李縡)의 문인이며, 송명흠(宋明欽)·송문흠(宋文欽)·김원행(金元行) 등과 교유하였다. 1733년 사마시에 입격하였다. 1750년 익위사 세마가 되었고 이어 익위사 시직, 공조 좌랑, 임실 현감 등을 지냈다. 1758년 공주 녹문(鹿門)에 은거하였다. 1762년 익위사 위솔이 되어 세손이었던 정조(正祖)를 보도하였다. 이후 사옹원 주부, 전주 판관, 성주 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774년 사직하고 공주 녹문, 원주 산호(山湖) 등지에서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하였다. 초년에는 스승인 이재의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에 동조하였으나, 점차 기존 학설을 비판하고 이기동실(理氣同實)의 이기론(理氣論)을 정립하여 조선 성리학 6대가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1845년 대사헌 겸 성균관좨주에 추증되었다. 저서로 《녹문집》 등이 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1711년(숙종37)~1788년(정조12). 조선 후기의 학자로, 본관은 풍천(?川), 자는 중사(仲思), 호는 녹문(鹿門)이다. 도암(陶庵) 이재(李縡)의 문인이며, 송명흠(宋明欽)·송문흠(宋文欽)·김원행(金元行) 등과 교유하였다. 1733년 사마시에 입격하였다. 1750년 익위사 세마가 되었고 이어 익위사 시직, 공조 좌랑, 임실 현감 등을 지냈다. 1758년 공주 녹문(鹿門)에 은거하였다. 1762년 익위사 위솔이 되어 세손이었던 정조(正祖)를 보도하였다. 이후 사옹원 주부, 전주 판관, 성주 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774년 사직하고 공주 녹문, 원주 산호(山湖) 등지에서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하였다. 초년에는 스승인 이재의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에 동조하였으나, 점차 기존 학설을 비판하고 이기동실(理氣同實)의 이기론(理氣論)을 정립하여 조선 성리학 6대가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1845년 대사헌 겸 성균관좨주에 추증되었다. 저서로 《녹문집》 등이 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