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韓非子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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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3/07/01
Pages/Weight/Size 153*224*35mm
ISBN 9788949708232
Categories 인문 > 동양철학
Description
『韓非子集解』와 『韓非子集釋』을 저본으로 하여 전체를 완역한 것이다. 현대 백화어 역주본도 수집하여 참고하였으며, 특히 『韓非子今註今譯』과 『韓非子全譯≫』 등은 구체적인 주석이 세밀하여 번역에 많은 참고가 되었다. 읽고 이해하기 쉽도록 역자가 임의로 총 762장으로 분장하고 매 장마다 제목을 달았으며 각 편별로 전면에 간단한 해제를 실어 이해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옛 문건에 수없이 언급되거나 널리 알려진 고사ㆍ문장ㆍ내용 등은 여러 사서(史書) 및 제자서(諸子書), 유서(類書) 등에서 일일이 찾아내어 해당 부분 말미 〈참고 및 관련 자료〉 난에 실어 대조와 연구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고, 부록으로 관련 자료를 가능한 한 모두 찾아 실어 연구에 도움을 삼을 수 있도록 하였다.
Contents
30. 내저설상(內儲說上) 칠술(七術)
257(30-1) 칠술(七術)
258(30-2) 참관(參觀)
259(30-3) 필벌(必罰)
260(30-4) 신상(信賞)
261(30-5) 일청(一聽)
262(30-6) 궤사(詭使)
263(30-7) 협지(挾智)
264(30-8) 도언(倒言)
265(30-9) 꿈에 본 임금
266(30-10) 여러 사람과 함께 하면
267(30-11) 세 사람이 함께 하여
268(30-12) 하수(河水)의 신 하백(河伯)
269(30-13) 장의(張儀)와 혜시(惠施)의 논쟁
270(30-14) 수우(?牛)의 못된 계략
271(30-15) 강을(江乙)의 재치
272(30-16) 여이(如耳)와 세희(世姬)
273(30-17) 방향만 알면
274(30-18) 삼인성호(三人成虎)
275(30-19) 아주 깊은 골짜기
276(30-20) 자산(子産)과 유길(游吉)의 차이
277(30-21) 십이월의 서리
278(30-22) 길에 재를 버려도 처벌 대상
279(30-23) 재를 버리는 자 그 팔을 자르리라
280(30-24) 위엄이 있어야
281(30-25) 공손앙(公孫?)의 법
282(30-26) 가벼운 죄일수록 더 엄한 처벌
283(30-27) 여수(麗水)의 금
284(30-28) 적택(積澤)의 화재
285(30-29) 차마 못하는 마음
286(30-30) 나의 평판이 어떻던가
287(30-31) 제나라의 후장(厚葬) 풍습
288(30-32) 죄수를 사겠소
289(30-33) 상벌은 이기(利器)
290(30-34) 시험삼아 궁실에 불을 질러
291(30-35) 수레 멍에 하나를 옮기는 자
292(30-36) 활쏘기 연습 유도
293(30-37) 상을 치르느라 죽는 사람들
294(30-38) 수레에 맞서는 개구리의 기개
295(30-39) 노한 개구리
296(30-40) 다 낡아 해진 바지
297(30-41) 장어와 뱀
298(30-42) 두 나라의 합병
299(30-43) 생황 연주
300(30-44) 하나씩 각기 연주하도록
301(30-45) 동작과 표정을 살피고
302(30-46) 두 가지 모두 후회
303(30-47) 응후의 책략
304(30-48) 방경의 행정 방법
305(30-49) 대환의 치술
306(30-50) 임금의 옥비녀
307(30-51) 시장 밖의 쇠똥
308(30-52) 잃어버린 손톱
309(30-53) 남의 밭에 들어간 소
310(30-54) 잃어버린 지팡이
311(30-55) 어사의 독직(瀆職)
312(30-56) 잃어버린 굴대 쐐기
313(30-57) 거짓 비방
314(30-58) 요치와 제왕
315(30-59) 반란을 계획하면서
316(30-60) 문틈으로 본 백마
317(30-61) 진술을 거꾸로
318(30-62) 문지기에게 뇌물을
31. 내저설하(內儲說下) 육미(六微)
319(31-1) 여섯 가지 은미(隱微)한 사안
320(31-2) 권차(權借)
321(31-3) 이이(利異)
322(31-4) 사류(似類)
323(31-5) 유반(有反)
324(31-6) 참의(參疑)
325(31-7) 폐치(廢置)
326(31-8) 묘공(廟攻)
327(31-9) 세중(勢重)
328(31-10) 상벌(賞罰)
329(31-11) 정곽군(靖郭君)의 옛 친구
330(31-12) 진나라 육경(六卿)
331(31-13) 초나라 정사를 전횡한 주후(州侯)
332(31-14) 개똥 목욕
333(31-15) 난탕(蘭湯) 목욕
334(31-16) 아내의 속마음
335(31-17) 공자들의 이웃나라 벼슬
336(31-18) 소공을 협박하는 삼환(三桓)
337(31-19) 공숙(公叔)과 공중(公仲)
338(31-20) 적황(翟璜)
339(31-21) 토사구팽(兎死狗烹)
340(31-22) 두 개의 노(魯)나라
341(31-23) 사마희(司馬喜)
342(31-24) 여창(呂倉)
343(31-25) 송석(宋石)
344(31-26) 백규(白圭)
345(31-27) 회랑에 오줌을 눈 자
346(31-28) 제양군(濟陽君)
347(31-29) 계신(季辛)과 원건(爰騫)
348(31-30) 코를 베어라
349(31-31) 정수(鄭袖)의 계략
350(31-32) 비무극(費無極)과 극완(?宛)
351(31-33) 서수(犀首)와 장수(張壽)
352(31-34) 중산(中山)의 천한 공자(公子)
353(31-35) 나이든 유자(儒者)와 제양군(濟陽君)
354(31-36) 제양군(濟陽君)의 소서자(少庶子)
355(31-37) 진수(陳需)
356(31-38) 기장 씨앗값
357(31-39) 지붕에 불을 지른 자
358(31-40) 익히지 않은 간
359(31-41) 욕조 속의 자갈
360(31-42) 머리카락이 얽힌 불고기
361(31-43) 미워하는 자의 소행
362(31-44) 동제(東帝)와 서제(西帝)
363(31-45) 여희(驪姬)
364(31-46) 부인에게 독살 당한 정(鄭) 도공(悼公)
365(31-47) 임금을 시해한 주우(州?)
366(31-48) 전국 말의 동주(東周)
367(31-49) 성왕(成王)을 시해한 상신(商臣)
368(31-50) 상신(商臣)과 반숭(潘崇)
369(31-51) 한괴(韓傀)와 엄수(嚴遂)
370(31-52) 간공(簡公)을 시해한 전항(田?)
371(31-53) 임금을 시해한 황희(皇喜)
372(31-54) 호돌(狐突)
373(31-55) 정소(鄭昭)의 대답
373(31-55) 정소(鄭昭)의 대답
375(31-57) 외국의 신임을 받는 자
376(31-58) 노나라를 떠난 공자(孔子)
377(31-59) 간상(干象)
378(31-60) 오자서(伍子胥)의 계략
379(31-61) 우(虞)나라와 괵(?)나라
380(31-62) 숙향(叔向)과 장홍(?弘)
381(31-63) 닭과 돼지 피
382(31-64) 진(秦)나라 주유(侏儒)
383(31-65) 업(?)의 현령 양자(襄疵)
384(31-66) 낡은 자리
32. 외저설좌상(外儲說左上)
385(32-1) 명석한 군주
386(32-2) 신하의 말을 듣는 방법
387(32-3) 책망을 감추고
388(32-4) 이익과 명성이 있는 곳
389(32-5) 궁행(躬行)
390(32-6) 신의(信義)
391(32-7) 선보(單父)를 맡은 복자천(宓子賤)
392(32-8) 매독환주(賣?還珠)
393(32-9) 묵자(墨子)가 만든 나무 솔개
394(32-10) 노래를 잘 하는 자
395(32-11) 양약고구(良藥苦口)
396(32-12) 대추나무 가시에 원숭이를 조각(1)
397(32-13) 대추나무 가시의 원숭이 조각(2)
398(32-14) 백마비마(白馬非馬)
399(32-15) 맞추기야 하겠지만
400(32-16) 죽지 않는 법
401(32-17) 나이를 두고 다투는 두 사람
402(32-18) 지팡이에 그린 그림
403(32-19) 그리기 가장 쉬운 것
404(32-20) 너무 단단한 표주박
405(32-21) 우경(虞卿)의 집짓기 간섭
406(32-22) 무너진 집
407(32-23) 부러진 활
408(32-24) 이론만 밝아서야
409(32-25) 소꿉놀이
410(32-26) 이익이 되기에
411(32-27) 무도한 송군(宋君)
412(32-28) 무도한 오왕(吳王)
413(32-29) 환공(桓公)과 채녀(蔡女)의 물놀이
414(32-30) 병졸의 고름을 빨아준 오기(吳起)
415(32-31) 파오산(播吾山)의 글씨
416(32-32) 화산(華山)의 박희(博?)
417(32-33) 사당을 짓는 자
418(32-34) 헌 바지
419(32-35) 주운 수레 멍에
420(32-36) 사냥을 돕는 자
421(32-37) 자라를 풀어준 사람
422(32-38) 어른들 술 마시는 모습
423(32-39) 흉내
424(32-40) 술 마시기 흉내
425(32-41) 잘못된 해석
426(32-42) 실질을 잃고 만 학자
427(32-43) 촛불을 올려라
428(32-44) 신발 치수
429(32-45) 중모(中牟)의 현령 임등(任登)
430(32-46) 숙향(叔向)의 참을성
431(32-47) 굴공(屈公)
432(32-48) 주보(主父)와 이자(李疵)
433(32-49) 보라색 옷의 유행
434(32-50) 몸소 실천하면
435(32-51) 간공(簡公)과 자산(子産)
436(32-52) 도적이 사라지고
437(32-53) 송양지인(宋襄之仁)
438(32-54) 안영(晏?)의 죽음
439(32-55) 위(魏) 소왕(昭王)과 맹상군(孟嘗君)
440(32-56) 임금은 그릇, 백성은 물
441(32-57) 갓끈 매기를 좋아한 추(鄒)나라 임금
442(32-58) 사냥 결과물
443(32-59) 한(韓) 소후(昭侯)와 신불해(申不害)
444(32-60) 열흘 치의 식량
445(32-61) 진(晉) 문공(文公)과 기정(箕鄭)
446(32-62) 오기(吳起)의 식사 약속
447(32-63) 우인(虞人)과의 사냥 약속
448(32-64) 약속대로 돼지를 잡은 증자(曾子)
449(32-65) 잘못 울린 북소리
450(32-66) 불신의 결과(1)
451(32-67) 불신의 결과(2)
452(32-68) 진술을 거꾸로
453(32-69) 뇌물을 주고 관문을 통과
Author
한비,임동석
전국시대 말기 한(韓)나라 출신으로 기원전 약 280년경 태어나 233년 세상을 떠났다. 원래 이름은 ‘한비’로 그의 이름을 높여 부른 것이 ‘한비자’이다. 그는 한나라 왕의 아들로 어머니는 후궁이었다.
한비자는 말을 더듬고 말을 잘 꾸미지 못했지만, 재주와 생각이 남다르고 글을 잘 써 중국 법가 학파를 대표하는 이름난 사상가가 되었다. 그의 법가 사상은 전국시대의 혼란과 한 나라의 어려운 처지 안에서 발전했다. 약한 나라를 구하는 방법은 오직 엄한 법으로 백성들을 다스려 나라의 힘을 한 길로 동원함으로써 부강하게 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글은 한나라의 군주에게는 주목받지 못하였으나 진왕만은 한비자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았다. 진시황이 진왕이던 시절, 한비자의 저술을 읽고는 “이 사람을 한번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감탄을 연발했다. 한을 공격하여 실제로 한비자를 만난 진왕은 자신의 통일 대업에 한비자의 도움을 얻고 싶어 했으나 그를 완전히 믿지 못했다. 그러다 진나라의 재상으로 있던 이사의 모함을 받자 마음이 돌아서 한비자에게 사약을 보내고 만다.
사마천은 한비자의 죽음을 두고 “세난(說難, 유세와 설득의 어려움) 같은 훌륭한 글을 썼으면서도 자신은 그로 인한 재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진왕은 한비자를 죽였으나 진시황이 된 뒤 한비자의 법술 이론에 큰 영향을 받고, 천하 통치의 이론적인 버팀목으로 활용했다.
전국시대 말기 한(韓)나라 출신으로 기원전 약 280년경 태어나 233년 세상을 떠났다. 원래 이름은 ‘한비’로 그의 이름을 높여 부른 것이 ‘한비자’이다. 그는 한나라 왕의 아들로 어머니는 후궁이었다.
한비자는 말을 더듬고 말을 잘 꾸미지 못했지만, 재주와 생각이 남다르고 글을 잘 써 중국 법가 학파를 대표하는 이름난 사상가가 되었다. 그의 법가 사상은 전국시대의 혼란과 한 나라의 어려운 처지 안에서 발전했다. 약한 나라를 구하는 방법은 오직 엄한 법으로 백성들을 다스려 나라의 힘을 한 길로 동원함으로써 부강하게 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글은 한나라의 군주에게는 주목받지 못하였으나 진왕만은 한비자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았다. 진시황이 진왕이던 시절, 한비자의 저술을 읽고는 “이 사람을 한번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감탄을 연발했다. 한을 공격하여 실제로 한비자를 만난 진왕은 자신의 통일 대업에 한비자의 도움을 얻고 싶어 했으나 그를 완전히 믿지 못했다. 그러다 진나라의 재상으로 있던 이사의 모함을 받자 마음이 돌아서 한비자에게 사약을 보내고 만다.
사마천은 한비자의 죽음을 두고 “세난(說難, 유세와 설득의 어려움) 같은 훌륭한 글을 썼으면서도 자신은 그로 인한 재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진왕은 한비자를 죽였으나 진시황이 된 뒤 한비자의 법술 이론에 큰 영향을 받고, 천하 통치의 이론적인 버팀목으로 활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