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유승도가 1999년에 『작은 침묵들을 위하여』를 출간한 이후 햇수로 꽉 채운 8년 만에 세상에 내 놓은 두 번째 시집. 첫 번째 시집과는 사뭇 다르게 관조적이거나 미학적이지 않고, 오히려 인간적인 친화력 없는, 도무지 인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세계로 자연을 그리는 시인의 시선은 현실감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차가운 모습에서조차도 자연의 숨결과 맥박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어 무위자연의 감칠맛이 실감나게 스며있는 작품집이다.
Contents
보름달빛
아
일출
새는 말한다
흔들지 않고 흐른다
가득하다
산에 살던 사람은 산이 되고
내 세상
당신이 오라시면
가자
비 온 뒤 아침 햇살
살랑살랑
세상의 모든 것이고 싶어라
숲가에 서서
가벼움 또는 엄숙함 혹은 고요함
그래도 나는 너를 팔지 않을 수 없다
풀벌레에게 기울다
나, 꿩이지요
낙엽
청설모에게서 잣을 빼앗다
하루 그리고 한 해
그 순간만큼은
차이
가뭄
복잡한 그러나 단순한
그것참
붉은 밤
지금, 그리고
기어이 나도 물결이 되어
나
나무에 올라 길을 보다
구더기
허공
가뭄 끝에 빗소리
미안하다
강력한 힘과 번쩍 윤이 나는 몸매에 시퍼런 독까지
아아 아아, 앞으로
돼지 잡은 날
두껍아 두껍아
바보 달
흔적
어느 날 아침, 너구리를 잡다
우수수수수
가을, 빗소리
끄덕끄덕
차가운 웃음
눈이 온 다음날
여명
시퍼런 밤
죽어서까지 둥근 몸이어야 했을까
절벽에 붙어선 산양을 보았다
아침
여우
토끼의 뒷다리는 길다
아침에 일어나 쥐를 잡다
애꿎은 꽃 한 송이만 꺾였다
또 무엇을 기다리는가
하얀 죽음
도살장에서
흐름
유월 십오일
산에는 무엇이 무엇이 사는가
칠월 십사일, 비
안개 낀 달밤
꾀가 많아서
삼월 삼일
빈 밭
낙엽송 숲 속에
예년에 비해 한 달 일찍 서리가 내렸다 한다
품
발정
다가오는 손
칠월
시월 십오일
시월 사일
한낮
나룻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