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랑스의 젊은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그의 저서『21세기 자본론』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경제성장속도보다 빠르다. 자본주의아래에서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자는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익숙한 경구이다. 지금으로부터 120여 년 전 칼 맑스가 전세계의 민중들에게 던진 말이다.
피케트와 맑스는 다른다. 피케티는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인 최고소득자와 최저소득자 간의 격차를 줄이는 방식으로 부자증세를 통하여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것이라면, 맑스는 자본주의의 모순인 상품과 화폐, 화폐와 자본, 노동과 소외 등의 관계는 사회 변혁을 통해서만 해소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맑스는 자본주의가 불평등 때문에 붕괴되는 것이 아니라 풍요의 불합리한, 반(反)인간적 관리로 말미암아 무너진다고 보았다.
오늘날 자본가들은 ‘무노동 무임금’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는 당연히 상품교환의 원칙에 따른 임금지불을 요구한다. 이 싸움은 자본의 학대에 대한 노동력이라는 상품 소유자의 정당방위이다. 노동력을 부리지 못하는 것은 자본가의 무능이고 이 무능을 노동력 판매자에게 전가하려 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투쟁기간의 임금을 지불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자본주의적 근본논리, 즉 노동력을 상품화하는 자본관계에 대한 부정으로서 자본주의의 원리에도 반하는 것이다. 동시에 ‘무노동 무임금’ 논리는 부르주아 인도주의에도 반하는 반인간적 논리이다.
21세기에도 맑스의 이론은 유효하다. 경제학자라면 누구나 맑스의 이론에서 영감을 얻고 있다. 토마 피케티 또한 예외일 수 없다. 그만큼 부의 축적은 자본주의가 강화, 확립되면서 오늘날까지도 노동자들에게 심각한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이 책은 맑스, 엥겔스 등의 저작을 통하여 한국의 시점에서 내적인 연관을 살피고 있으며 아울러 맑스의『자본론』에 기술되고 있는 상품과 화폐, 화폐와 자본, 화페의 자본으로의 진화,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임금, 자본의 축적과정 등을 주제로, 다른 모습으로 발전된 자본주의의 현단계와 사회주의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21세기의 자본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