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전列女傳』은 한漢나라 때 유향劉向이 여러 경전經傳이나 사서史書 등에 기재된 여성들의 행적을 모아 엮은 동아시아 최초의 여성 전기집傳記集으로, 여기서 ‘열녀列女’는 ‘여러 여성들’이라는 뜻이다. 저명한 학자이자 한漢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이복동생인 유교劉交의 4세손이기도 한 유향은 고전古典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열녀전』에 입전立傳하면서 기존 문헌에 기재된 것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원전에 보이지 않던 상황을 설정하거나 언행을 각색하였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그는 『시경詩經』과 『상서商書』 등의 여러 문헌에서 국가를 흥성하게 하고 집안을 현양하여 모범이 될 수 있는 여인과 제왕帝王의 총애에 기대 국가를 어지럽게 한 여인들의 사적을 모아 8편의 『열녀전』을 편찬한 것이다.
그렇다면 유향은 왜 여성들의 전기를 편찬하게 된 것일까? 유향이 활동할 당시는 주로 원제元帝와 성제成帝 때였는데, 이 당시 한나라는 조비연趙飛燕과 조합덕趙合德 자매 등 후궁과 외척 세력이 황제의 총애를 믿고 권력을 농단하던 시기였다. 유향은 『열녀전』의 편찬을 통해 당시의 이러한 현실을 에둘러 비판하고, 나아가 이상적인 유교 통치를 위해 요구되는 자질과 덕성을 갖춘 여성상을 제시하려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열녀전』은 후대로 내려올수록 바람직한 유가적 여성이 되기 위한 규범서 또는 교과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전한을 대표하는 학자로 한 고조 유방劉邦(기원전 247~기원전 195)의 후예다. 본명은 경생更生이고 자字는 자정子政이다. 황실 종친으로 30여 년간 관직생활을 했는데, 황궁의 장서고였던 석거각石渠閣에서 수많은 서적을 정리·분류·해제하는 사업을 행한 것이 그의 중요한 업적이다. 또 오경五經의 강론과 찬술에 온 힘을 쏟아 경학·사학·문학·목록학 등 각 방면에 걸쳐 많은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 유향을 가리켜 반고班固(32~92)는 “순하고 담백하며 도를 즐기는 성품으로 세속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오로지 학문에 몰두하며 낮에는 독서하고 밤에는 도리를 탐구하여 날 새는 줄 몰랐다”(『한서漢書』)고 평가했다. 타고난 학구파 유향은 역대 문헌들을 정리하고 목록화하면서 얻어낸 정보와 아이디어로 역대 여성들의 전기집을 기획해 『열녀전』을 펴낸 것이다. 그 외에 유향이 기원전 26년에 아들 유흠劉歆(기원전 53~기원후 25)과 함께 조정의 서적을 교감한 작업은 그의 사후에도 이어져 『한서』 「예문지」의 기초가 되었다. 아들 유흠은 중국 최초의 체계적인 서적 목록 『칠략七略』을 완성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전하는 유향의 저작으로는 『열녀전』 외에 자신의 정론을 담은 『신서新序』와 교훈적 이야기를 담은 『설원說苑』 등이 있다
전한을 대표하는 학자로 한 고조 유방劉邦(기원전 247~기원전 195)의 후예다. 본명은 경생更生이고 자字는 자정子政이다. 황실 종친으로 30여 년간 관직생활을 했는데, 황궁의 장서고였던 석거각石渠閣에서 수많은 서적을 정리·분류·해제하는 사업을 행한 것이 그의 중요한 업적이다. 또 오경五經의 강론과 찬술에 온 힘을 쏟아 경학·사학·문학·목록학 등 각 방면에 걸쳐 많은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 유향을 가리켜 반고班固(32~92)는 “순하고 담백하며 도를 즐기는 성품으로 세속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오로지 학문에 몰두하며 낮에는 독서하고 밤에는 도리를 탐구하여 날 새는 줄 몰랐다”(『한서漢書』)고 평가했다. 타고난 학구파 유향은 역대 문헌들을 정리하고 목록화하면서 얻어낸 정보와 아이디어로 역대 여성들의 전기집을 기획해 『열녀전』을 펴낸 것이다. 그 외에 유향이 기원전 26년에 아들 유흠劉歆(기원전 53~기원후 25)과 함께 조정의 서적을 교감한 작업은 그의 사후에도 이어져 『한서』 「예문지」의 기초가 되었다. 아들 유흠은 중국 최초의 체계적인 서적 목록 『칠략七略』을 완성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전하는 유향의 저작으로는 『열녀전』 외에 자신의 정론을 담은 『신서新序』와 교훈적 이야기를 담은 『설원說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