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지성이 열린 이래, 동아시아의 문화와 사상의 근간을 이루어 왔고 오늘날까지도 이 지역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단 한 명의 인물을 꼽으라 하면, 단연 공자(孔子)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인 공자는 문화, 사상, 교육, 윤리, 정치 등 각 방면에 심대한 영향을 미쳐 성인(聖人)으로 추앙되기도 한다.
공자와 그의 제자 간의 대화, 또는 공자와 당시 정치가들과의 대화를 훗날 공자의 문인들이 편찬한 전적이 『논어』다. 이 『논어』를 제외하면 공자의 언행과 사상은 고대의 여러 전적들에 흩어져 있는데, 이런 자료들은 너무 단편적이다. 이에 반해 『공자가어(孔子家語)』는 공자에 관해 그 어떤 전적보다도 소상히 기록하고 많은 자료들을 모아 놓았으며, 공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자세히 살필 수 있게 하는 좋은 전적이다.
Contents
6권
24. 오행의 덕에 바탕을 둔 제왕(五帝)
25. 고삐를 잡다(執?)
26. 타고난 명에 대한 풀이(本命解)
27. 예에 관한 논의(論禮)
7권
28. 향사례에 참관하다(觀鄕射)
29. 교 제사에 대해 묻다(郊問)
30. 다섯 가지 형벌에 대해 풀이하다(五刑解)
31. 형벌과 정령(刑政)
32. 예의 운용(禮運)
8권
33. 관례를 기리다(冠頌)
34. 사당을 세우는 제도(廟制)
35. 음악의 변별에 대한 풀이(辯樂解)
36. 옥에 대해 묻다(問玉)
37. 절조를 굽힘에 대한 풀이(屈節解)
9권
38. 72제자에 대한 풀이(七十二弟子解)
39. 본성(本姓)에 대한 풀이(本姓解)
40. 죽음에 관련된 기록에 대한 풀이(終記解)
41. 올바른 의론에 대한 풀이(正論解)
10권
42. 개별 사안의 예에 관한 자공의 질문(曲禮子貢問)
43. 개별 사안의 예에 관한 자하의 질문(曲禮子夏問)
44. 개별 사안의 예에 관한 공서적의 질문(曲禮公西赤問)
부록 : 공자와 공문 제자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Author
왕숙,김영식
왕숙은 자는 자옹(子雍)이고 동해군(東海郡) 담[?: 지금의 산둥성(山東省) 탄청(?城)] 출신으로, 삼국시대 위(魏)나라 사람이다. 일찍부터 유가의 경전에 두루 주를 달아, 정현(鄭玄) 이후의 유명한 경학대사(經學大師)로 일컬어졌다. 그는 미언대의(微言大意)를 주장하면서, 내용을 고려하지 않고 문자적 뜻에 집착하는 정현의 훈고학적 학문 방법에 반대했다. 벼슬길은 순조로워 황문시랑(黃門侍郞)·산기상시(散騎常侍)를 시작으로, 상시의 신분으로 비서감을 겸임하고 또 숭문관좨주(崇文觀祭酒)를 겸임했으며 광평태수(廣平太守)를 거쳐, 마지막에는 중령군(中領軍)으로 승진하고 여기에 산기상시(散騎常侍)가 더해져, 2200호의 봉읍을 받았다. 집안에 내려오는 학문을 계승하여 ≪상서(尙書)≫·≪시경(詩經)≫·≪논어≫·≪삼례(三禮)≫·≪좌전(左傳)≫·≪역(易)≫ 등을 깊이 연구했고 이들 경전에 관한 많은 저작을 남겼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에 그의 전(傳)이 기록되어 있다.
왕숙은 자는 자옹(子雍)이고 동해군(東海郡) 담[?: 지금의 산둥성(山東省) 탄청(?城)] 출신으로, 삼국시대 위(魏)나라 사람이다. 일찍부터 유가의 경전에 두루 주를 달아, 정현(鄭玄) 이후의 유명한 경학대사(經學大師)로 일컬어졌다. 그는 미언대의(微言大意)를 주장하면서, 내용을 고려하지 않고 문자적 뜻에 집착하는 정현의 훈고학적 학문 방법에 반대했다. 벼슬길은 순조로워 황문시랑(黃門侍郞)·산기상시(散騎常侍)를 시작으로, 상시의 신분으로 비서감을 겸임하고 또 숭문관좨주(崇文觀祭酒)를 겸임했으며 광평태수(廣平太守)를 거쳐, 마지막에는 중령군(中領軍)으로 승진하고 여기에 산기상시(散騎常侍)가 더해져, 2200호의 봉읍을 받았다. 집안에 내려오는 학문을 계승하여 ≪상서(尙書)≫·≪시경(詩經)≫·≪논어≫·≪삼례(三禮)≫·≪좌전(左傳)≫·≪역(易)≫ 등을 깊이 연구했고 이들 경전에 관한 많은 저작을 남겼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에 그의 전(傳)이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