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15세 시대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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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7/12/30
Pages/Weight/Size 153*225*30mm
ISBN 9788968175800
Categories 역사
Description
『루이 15세 시대 개요』는 루이 14세 사후부터 루이 15세 사망까지의 프랑스만이 아니라 유럽 전체의 역사를 생생하게 기록했다는 점에서 볼테르의 대표적인 역사저술로 남아 있다. 루이 14세 사후의 유럽 정세,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1740~1747),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7년 전쟁(1756~1763년)을 중점적으로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18세기 중반 프랑스의 국내 상황(오를레앙 공작의 섭정, 플뢰리 추기경의 내각, 루이 15세에 대한 암살 기도, 예수회 추방, 가톨릭교회와 고등법원의 갈등, 루이 15세 사망, 코르시카 합병, 부조리한 형사소송법 등)도 볼테르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문체로 기술하고 있다. 볼테르 자신이 살았던 시대인 루이 15세 시대, 특히 퐁트누아 전투를 비롯한 몇몇 전투에 대한 박진감 넘치는 묘사는 동시대의 다른 역사저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소중한 대목들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자는 1000개가 넘는 주를 달았다.
Contents
1. 루이 14세 사후의 유럽
2. 유럽 풍경 속편 1. 오를레앙 공작의 섭정기. 로 또는 라스의 시스템
3. 유럽 풍경 속편 2. 뒤부아 추기경과 플뢰리 추기경.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의 양위
4. 두 번 폴란드 왕이 되었다 두 번 폐위당한 스타니수아프 레슈친스키, 1734년 전쟁, 프랑스에 합병된 로렌
5. 황제 카를 6세의 사망. 4대 강국의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헝가리 여왕이 자기 부친의 모든 국가에서 인정됨. 프로이센 왕의 슐레지엔 합병
6. 프랑스 왕은 프로이센 왕, 폴란드 왕과 연대하여 바이에른 선제후 카를 알브레히트를 황제로 선출시킨다. 카를 알브레히트는 프랑스 왕의 국왕총대관이라고 선포되었다. 그의 성공과 급속한 파멸
7. 바이에른의 카를 알브레히트 황제의 성공과 급속한 몰락
8. 영국, 에스파냐, 사르데냐 왕, 이탈리아 국가들의 행동. 툴롱 전투
9. 콩티 공이 알프스 산맥의 통로를 확보하다. 이탈리아의 정치 상황
10.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7세의 새로운 불행. 데팅겐 전투
11. 루이 15세의 첫 번째 플랑드르 원정과 승전. 루이 15세는 플랑드르를 떠나 위협에 직면한 알자스를 구하러 간다. 그 사이 콩티 공은 계속해서 알프스의 통로를 열어 간다. 새로운 동맹들. 프로이센 왕은 다시 출전한다.
12. 프랑스 왕은 사경을 헤맨다. 그는 회복되자마자 독일로 진군한다. 왕은 프라이부르크를 포위 공격하러 간다. 한편 이미 알자스를 침략한 오스트리아군은 보헤미아를 구하러 가고, 콩티 공은 이탈리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13. 쿠네오 전투. 프랑스 왕의 지휘. 로마 부근에서 습격당한 나폴리 왕
14. 벨릴 원수 체포. 황제 카를 7세의 사망. 하지만 전쟁은 그로 인해 더욱 격렬해질 뿐
15. 투르네 공성전. 퐁트누아 전투
16. 퐁트누아 전투 속편
17. 독일의 상황.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선출된 토스카나 대공 로트링겐의 프란츠.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2세에게 패한 오스트리아와 작센 연합군. 드레스덴 점령
18.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 정복 속편. 리에주 또는 로쿠(Rocoux) 전투
19. 돈 펠리페와 마유부아 원수의 승리, 그 뒤를 이은 최악의 패전들
20. 오스트리아군과 피에몬테군이 프로방스를, 영국군은 브르타뉴를 침략하다
21. 제노바의 봉기
22. 프랑스군이 참패한 에그질 전투
23. 플랑드르의 정복자이자 승리자인 프랑스 왕은 평화조약을 제안하지만 결실을 거두지 못한다. 네덜란드령 브라반트 정복. 상황에 의해 탄생한 네덜란드 총독
24.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 왕자의 공격, 승리, 패배, 안타까운 불운
25. 찰스 에드워드 왕자의 모험 속편. 그의 패배와 불운, 그리고 지지자들의 불운
26. 프랑스 왕은 평화조약을 제안했으나 그 체결에 실패하고 라우펠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베르헌옵좀을 공격하다. 마침내 러시아군이 동맹군 지원을 위해 진군한다.
27. 앤슨 제독의 세계 일주
28. 루이부르(루이스버그) 공성전과 해전: 영국군이 획득한 막대한 전리품
29. 인도, 마드라스, 퐁디셰리. 라부르도네의 원정. 뒤플렉스의 행동 등
30. 엑스라샤펠(아헨) 조약
31. 1756년의 유럽 상황. 파괴된 리스본. 스웨덴에서의 모반과 형벌. 캐나다의 불길한 식민지 전쟁. 리슐리외 원수의 마오 점령
32. 독일 내에서의 전쟁. 오스트리아 왕가, 독일 제국, 러시아 제국, 프랑스에 맞서 싸우는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기억할 만한 사건들
33. 기억할 만한 사건들 속편. 항복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영국군. 로스바흐 전투. 격변들
34. 세계 각지에서 불운에 빠진 프랑스군. 뒤플렉스 총독의 패배. 랄리 장군 처형
35. 프랑스의 패전들
36. 프랑스 내정. 1750년에서 1762년까지의 분쟁과 뜻밖의 사건들
37. 국왕 시해 시도
38. 포르투갈 왕 시해. 포르투갈에 이어 프랑스에서 추방된 예수회
39. 교황 클레멘스 13세의 칙서와 그 결과
40. 코르시카
41. 파리 고등법원 추방과 루이 15세의 사망
42. 법
43. 루이 15세 시대에 이루어진 인간 정신의 진보

미주
해제
역자 후기
인명 색인
연표
볼테르 연보
Author
볼테르,송기형
18세기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시인, 극작가, 비평가, 역사가인 다재다능한 작가 볼테르(필명)는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Franois Marie Arouet)’라는 이름으로 1694년 11월 21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난 볼테르는 열 살에 예수회가 운영하던 루이 르그랑(Louis le Grand) 학교에 들어가는데, 이 학교에서 금세 두각을 드러내고 평생 이어갈 교유관계들도 형성한다. 한편,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대부(代父)인 샤토뇌프 신부가 그를 쾌락주의적이고 무신론적인 귀족들과 시인들이 모이는 ‘탕플(Temple)’이라는 문학 살롱에 데리고 간다. 17세에 루이 르그랑 학교를 떠나면서 아버지에게 문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이에 반대하며 법조계를 택하라고 강경하게 권한다. 그래서 법학 대학에 등록은 하지만 탕플을 계속 드나들면서 사치와 방탕을 선망한다.

이후에도 소(Sceaux)성(城)의 문학 살롱을 드나들면서 재기를 발휘하며 문학적 재능을 증명해 보이던 그는 청년 시대에 섭정 오를레랑 공을 풍자한 시의 작자로 간주되어 바스띠유에 갇혔다가 출옥한 뒤, 볼떼르란 필명으로 24세라는 아주 이른 나이에 『오이디푸스(Oedipus)』(1718)라는 비극 작품으로 유명해진다. 그 시대의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 볼테르도 존중받는 장르였던 비극과 시로써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작가로서의 볼테르는 비극 작품들과 서사시, 역사물 등을 통해 빠른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은 오늘날에는 별로 읽히지도 않거니와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반면, 나중에 재미삼아 쓰고 익명으로 출간한 콩트들이 오늘날까지 매우 잘 알려져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읽히고 널리 알려진 작품은 『캉디드(Candide, ou l'Optimisme)』(1759), 『자디그(Zadig, ou la Destinee)』(1748), 『랭제뉘(L'Ingenu)』(1767)다. 디드로의 『백과전서』 집필에도 참여하는 등 철학자로서, 작가로서,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평생 왕성한 활동을 벌인 볼테르는 84세까지 장수를 누렸지만, 프랑스대혁명은 보지 못하고 1778년 5월 30일에 죽었다. 1791년에는 국가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인물들만 들어가는 팡테옹(Pantheon)에 안치된다.

프랑스 계몽기의 대표적 철학자로 꼽히는 볼테르는 프랑스의 지성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종교적 광신주의에 맞서서 평생 투쟁했던 그는 관용 정신이 없이는 인류의 발전도 문명의 진보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저서들 속에는 당대의 지배적 종교 권력이었던 가톨릭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등장한다. 그의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가 전통적 가치들의 토대인 기독교 정신을 무너뜨리려 하고, 풍기를 문란케 한다고 비난했다. 나이가 70세에 가까웠을 때는 그 유명한 ‘칼라스 사건’을 계기로 종교적 불관용의 희생자들을 변호하고 돕는 활동들을 사재를 털어가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벌여서 오늘날까지도 관용의 상징적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생전에는 대시인으로 대접받았지만, 그의 재능의 본질은 풍자 작가, 명쾌하고 기지에 찬 프랑스적 산문 작가의 전형에 있으며, 특히 철학적 에세이와 우화 소설에 뛰어났다. 이신론(理神論), 이성론의 입장에서 초자연을 강하게 부정하고 신랄하게 성서를 비판해, 후세에 그의 이름은 회의 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계몽주의의 보급을 통해 대혁명의 정신적 기반을 형성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철학의 간』(1734), 『깡디드』(1759), 『관용론』(1763), 『철학사전』(1764) 등이 있다.
18세기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시인, 극작가, 비평가, 역사가인 다재다능한 작가 볼테르(필명)는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Franois Marie Arouet)’라는 이름으로 1694년 11월 21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난 볼테르는 열 살에 예수회가 운영하던 루이 르그랑(Louis le Grand) 학교에 들어가는데, 이 학교에서 금세 두각을 드러내고 평생 이어갈 교유관계들도 형성한다. 한편,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대부(代父)인 샤토뇌프 신부가 그를 쾌락주의적이고 무신론적인 귀족들과 시인들이 모이는 ‘탕플(Temple)’이라는 문학 살롱에 데리고 간다. 17세에 루이 르그랑 학교를 떠나면서 아버지에게 문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이에 반대하며 법조계를 택하라고 강경하게 권한다. 그래서 법학 대학에 등록은 하지만 탕플을 계속 드나들면서 사치와 방탕을 선망한다.

이후에도 소(Sceaux)성(城)의 문학 살롱을 드나들면서 재기를 발휘하며 문학적 재능을 증명해 보이던 그는 청년 시대에 섭정 오를레랑 공을 풍자한 시의 작자로 간주되어 바스띠유에 갇혔다가 출옥한 뒤, 볼떼르란 필명으로 24세라는 아주 이른 나이에 『오이디푸스(Oedipus)』(1718)라는 비극 작품으로 유명해진다. 그 시대의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 볼테르도 존중받는 장르였던 비극과 시로써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작가로서의 볼테르는 비극 작품들과 서사시, 역사물 등을 통해 빠른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은 오늘날에는 별로 읽히지도 않거니와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반면, 나중에 재미삼아 쓰고 익명으로 출간한 콩트들이 오늘날까지 매우 잘 알려져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읽히고 널리 알려진 작품은 『캉디드(Candide, ou l'Optimisme)』(1759), 『자디그(Zadig, ou la Destinee)』(1748), 『랭제뉘(L'Ingenu)』(1767)다. 디드로의 『백과전서』 집필에도 참여하는 등 철학자로서, 작가로서,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평생 왕성한 활동을 벌인 볼테르는 84세까지 장수를 누렸지만, 프랑스대혁명은 보지 못하고 1778년 5월 30일에 죽었다. 1791년에는 국가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인물들만 들어가는 팡테옹(Pantheon)에 안치된다.

프랑스 계몽기의 대표적 철학자로 꼽히는 볼테르는 프랑스의 지성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종교적 광신주의에 맞서서 평생 투쟁했던 그는 관용 정신이 없이는 인류의 발전도 문명의 진보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저서들 속에는 당대의 지배적 종교 권력이었던 가톨릭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등장한다. 그의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가 전통적 가치들의 토대인 기독교 정신을 무너뜨리려 하고, 풍기를 문란케 한다고 비난했다. 나이가 70세에 가까웠을 때는 그 유명한 ‘칼라스 사건’을 계기로 종교적 불관용의 희생자들을 변호하고 돕는 활동들을 사재를 털어가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벌여서 오늘날까지도 관용의 상징적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생전에는 대시인으로 대접받았지만, 그의 재능의 본질은 풍자 작가, 명쾌하고 기지에 찬 프랑스적 산문 작가의 전형에 있으며, 특히 철학적 에세이와 우화 소설에 뛰어났다. 이신론(理神論), 이성론의 입장에서 초자연을 강하게 부정하고 신랄하게 성서를 비판해, 후세에 그의 이름은 회의 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계몽주의의 보급을 통해 대혁명의 정신적 기반을 형성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철학의 간』(1734), 『깡디드』(1759), 『관용론』(1763), 『철학사전』(176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