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바로 노 젓지 못해? 소렌, 이 부모 없는 녀석아!”
지상이 멸망한 미래, 사람들은 이제 땅속의 발전소에서 살아간다.
사람이 땅속에서 살아가려면 빛과 공기, 물과 식량이 필요한데, 이것들은 모두 땅속에는 없는 것들이다. 빛은 전구를 켜서 얻을 수 있고, 산소는 합성 장치를 이용해 발생시킬 수 있으며, 물은 더 깊은 지하에서 퍼 올리고, 식량은 반죽을 찧어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공통적으로 하나가 필요하다. 바로 전기다.
이제 사람들은 발전소 안에서 산다. 발전소가 사람의 도시이자, 피난처고, 집이다!
지하 발전소에서 노를 저으며 살아가는 고아 노잡이 소년 소렌, 노잡이는 매일 할당량만큼 전기를 생산하지 못하면 끼니조차 때우지 못한다. 비인간적인 대우에 시달리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노를 젓는 나날들. 지칠 대로 지친 소렌은 결국 범죄의 유혹에 빠지고, 돈을 벌기 위해 더 깊은 땅속으로 떨어지는데, 발전소는 거대벌레라는 더 큰 위협에 직면한다.
생존이 불가능한 곳에서 인간다운 삶을 찾기 위한 몸부림! 소렌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그 글을 읽는 첫 번째 독자이기도 하다. 좋은 글을 읽었을 때 독자들이 작가가 어떻게 이 글을 쓰게 되었을지 상상을 하는 것처럼, 작가 또한 첫 번째 독자로서 자신이 쓴 글이 어떻게 내 안에서 탄생하게 되었는지 상상하게 된다. 그것은 무의식이 의식의 형태로 이미 한 번 변형을 거친 터라 절대 최초의 원형을 알아낼 수는 없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모든 글은 어떤 식으로든 작가가 겪은 체험의 은유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작과 감상이란 첫 번째 독자의 개인적 체험이 다수 독자의 체험으로 확장되는 과정이며, 진정한 고전이란 많은 사람이 공감할 뿐 아니라 그들이 잊고 있던, 혹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체험마저 저 어딘가에서 불러오는 것이라고 믿는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첫 번째 독자로서 운 좋게 먼저 읽은 이 글이 두 번째 독자인 여러분에게도 하나의 은유적 체험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그 글을 읽는 첫 번째 독자이기도 하다. 좋은 글을 읽었을 때 독자들이 작가가 어떻게 이 글을 쓰게 되었을지 상상을 하는 것처럼, 작가 또한 첫 번째 독자로서 자신이 쓴 글이 어떻게 내 안에서 탄생하게 되었는지 상상하게 된다. 그것은 무의식이 의식의 형태로 이미 한 번 변형을 거친 터라 절대 최초의 원형을 알아낼 수는 없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모든 글은 어떤 식으로든 작가가 겪은 체험의 은유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작과 감상이란 첫 번째 독자의 개인적 체험이 다수 독자의 체험으로 확장되는 과정이며, 진정한 고전이란 많은 사람이 공감할 뿐 아니라 그들이 잊고 있던, 혹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체험마저 저 어딘가에서 불러오는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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